[인사이드 스토리]태광산업 새 수장 선임에 담긴 함의
친정체제 구축…이 전 회장 복귀 위한 포석
태광그룹이 최근 내년 임원 인사를 발표했습니다. 발표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태광그룹 모회사인 태광산업 신임 대표에 합류한지 6개월 된 '뉴페이스'가 임명됐다는 것인데요. 이를 두고 업계에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복귀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뉴페이스' 대거 등장한 태광
태광그룹이 지난 17일 2024년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대한화섬 신임 대표와 티캐스트 대표 등 굵직한 계열사들의 수장이 바꼈죠.
태광그룹 관계자는 "ESG 중심 경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미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최근 ESG경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등 그룹 전체의 체질 개선에 힘쓰고 있다"며 "앞으로도 ESG경영 강화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조직의 체질과 사업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이번 임원인사에선 태광그룹 73년 역사상 최초로 내부 승진 여성 임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바로 티캐스트 이충효 상무보죠. 앞으로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태광그룹의 의지가 담긴 인사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번 임원 인사 내용 중엔 눈에 띄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태광그룹의 모회사 태광산업의 신임 대표로 선임된 성회용 티캐스트 대표입니다. 성 대표는 올해 6월 태광그룹에 합류한 '뉴페이스'입니다. 그룹에 합류한 지 반년도 안된 시점에 모회사의 대표 자리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성 대표는 현재 태광그룹 계열사 대표 협의체인 경영협의회 부의장과 더불어 지난 10월 출범한 미래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미래위원회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의 경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태광그룹의 비전과 사업 전략을 수립하는 핵심 협의체입니다.
당초 미래위원회 위원장은 성 대표가 아닌 김기유 티시스 전 대표가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김 전 대표는 이 전 회장이 사법리스크로 태광그룹을 떠난 이후 그룹 경영협의회 의장을 맡는 등 '실세'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지난 9월 내부감사 과정에서 해임됐습니다.
태광그룹은 지난 8월 이 전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내부 단속에 나섰습니다. 티시스를 시작으로 강도 높은 내부감사를 실시했죠. 이 과정에서 주요 계열사 인사들이 해임 또는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습니다. 김 전 대표도 이 과정에서 태광그룹을 떠나게 됐죠. 당시 일각에선 김 전 대표가 최근 롯데홈쇼핑 사옥 매입 과정 등에서 이 전 회장과 갈등이 깊어졌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결국 김 전 대표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 바로 성 대표인 셈이죠. 태광그룹은 성 대표의 선임에 대해 회사의 미래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태광산업은 실적 부진에 빠졌습니다. 반등을 위해 회사가 내놓은 대책이 바로 대대적인 신사업 투자입니다. 그룹에서 밝힌 투자금만 10조원이죠. 사업 대전환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새로운 인물을 통해 분위기 쇄신과 사업 전환에 집중하겠다는 해석입니다.
태광그룹은 성 대표의 선임 배경에 대해 "(성 대표는)경제 및 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깊이 있는 식견을 갖고 있다"며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돌파하고 그룹의 새로운 비전과 사업전략을 수립할 적임자"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호진 전 회장 복귀 임박했나
하지만 업계에서는 성 대표 선임이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성 대표가 태광그룹 합류 전부터 이 전 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전 회장이 우호 세력인 성 대표를 모회사 대표로 선임하고 '친정 체제'를 구축한 뒤 경영에 복귀할 계획이라는 분석입니다.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이 전 회장의 태광산업 지분율은 29.48%입니다. 여기에 친인척과 계열사 등 우호지분을 더하면 지분율은 54.53%로 늘어납니다. 이 전 회장이 주주총회 등 태광산업의 경영활동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죠. 이 전 회장이 언제 경영 일선에 복귀해도 절차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선 이 회장의 경영 복귀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직 사법리스크를 온전히 떨쳐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경찰은 지난 10월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등 배임·횡령 혐의로 태광그룹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태광그룹 계열사를 통해 수십억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고 태광CC를 통해 계열사 공사비를 부당하게 지원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세 번의 압수수색을 진행했죠.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과 경찰의 압수수색은 관련성이 업다는 입장입니다. 태광그룹 측은 경찰 수사에 대해 "이 전 회장의 공백 기간 동안 그룹 경영을 맡았던 전 경영진이 저지른 비위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압수수색 사유가 이 전 회장과 연관돼 있다는 점은 경영 복귀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광산업의 대규모 신사업 투자가 진행되기 위해선 이 전 회장의 복귀가 필요합니다. 태광그룹은 경영협의회 등 이사회를 두고 있지만 이사회가 오너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사회 입장에선 오너 승인 없이 진행한 투자가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다만 태광그룹 측은 이 전 회장의 복귀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10조원 투자 계획도 내부적으로 검토를 마친 이후 밝히겠다고 설명했죠.
이 전 회장과 같은 시기 복권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최근 경영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과연 이들처럼 이 전 회장도 사법리스크를 끊어내고 태광그룹의 운전대를 다시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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