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빈티지 미니멀 로맨스…'사랑은 낙엽을 타고'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말하자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원제:Fallen Leaves)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우리가 흔히 아는 로맨틱 코미디로 여기면 곤란하다. 아름답기로 작정한 듯한 커플이라든가 더 낭만적일 수 없을 것만 같은 풍경, 사랑이 삶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듯한 대사 같은 건 없다. 이 작품엔 고독한 일상이 있고, 비루한 노동이 있으며, 비참한 세상사가 있다. 이런 게 어떻게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있냐고? 될 수 있다. 아키 카우리스매키 감독의 손을 거치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곳에서 자라난 사랑을 담는다. 땅에 떨어져 메마른 채로 이리저리 흩날리다 기막힌 우연으로 작은 불씨가 돼 타오르는 것, 그게 이 영화의 로맨스다. 이 건조한 사람들이 툭툭 던져대는 괴팍한 유머가 곁들여지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명백한 로맨틱 코미디가 된다.
2017년 '희망의 건너편'을 내놓은 뒤 은퇴했던 카우리스매키 감독이 내놓은 새 영화는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낸 듯 간결하다. 극적 장치를 최소화해 마트에서 일하는 안사(알마 포위스티)와 공사장에서 일하는 홀라파(주시 바타넨)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미니멀하지만, 이 연출이 그들의 감정을 느끼는 덴 어떤 어려움도 되지 않는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대신 정확하다. 숱한 로맨스 영화가 보여준 과장된 말과 지나치게 포장된 그림은 진실하지 않다는 듯 두 사람 사이에 돋아난 사랑을 때로 에둘러, 때로는 여과 없이 드러낸다. 홀라파의 마음은 안사를 기다리며 피우고 버린 무수한 담배 꽁초로, 안사의 마음은 홀라파를 위해 산 식기로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무뚝뚝한 말투로 "내 신발을 봐요. 당신을 찾느라 닳았어요"라고 말하고, 또 만나고 싶냐는 물음엔 "무척요"라고 답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심플하나 단순하진 않다. 카우리스매키 감독은 영화엔 스토리 이상의 감각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이 감각은 당연히 인문학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학적으로 풀이될 여지도 있다. 먼저 인문학. 이 영화는 고독한 두 남녀가 만나 곡절 끝에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두 사람 사이에 사정이라는 것도 그리 대단할 게 없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이야기보다 중요한 게 기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생 고된 일을 해나가야 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를 처참한 일상을 묵묵히 견뎌가는 두 남녀 사이에 기적처럼 싹튼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간절함을 관객이 느끼길 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맞이하기 위해 집을 치우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멋진 옷을 빌리려는 그 기분이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보여주는 인간 관계이다.
다음은 사회학. 이건 은퇴했던 카우리스매키 감독이 복귀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에 관해 이런 얘기를 했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전쟁에 시달리던 중,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에 관해 쓰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연대, 희망,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 삶과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안사는 부당한 일을 연달아 겪으며 점점 더 고된 노동 현장에 투입된다. 홀라파는 알코올 중독 문제로 일자리를 잇따라 잃고 노숙자 신세가 된다. 그들은 사회 주변부로 점점 더 밀려난다. 라디오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나라 안에선 생존을 위한 개인의 전쟁이, 나라 밖에선 국가 간 전쟁이 벌어져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 이때 카우리스매키 감독은 안사와 홀라파의 로맨스와 그들을 지지해주는 친구들의 우정에 관한 영화로 잠시나마 주위를 환기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러닝 타임은 80분이다. 이 작품은 120분이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인 최근 영화들을 향해 길게 늘여 놓는다고 더 깊어지지도 그렇다고 더 넓어지지도 않으며, 영화라는 예술을 하기엔 1시간20분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예술은 그렇게 복잡하게 꼬아 놓거나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고 한 수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20일 국내 공개된다. 크리스마스와는 무관한 영화이지만, 온기가 필요한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거라는 점에서 크리스마스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작품도 없다. 때론 세련된 것보다 빈티지한 게 더 끌리는 법. 이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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