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인데 부항뜨고 보약 한첩?…진료비 0 하나 더붙이는 한방병원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2023. 12.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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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등 4대 손보사 분석
4주이상 치료 ‘추가 진단서’
양방의 3배 수준에 달해
같은 진단명도 진료비 제각각
“보험금 누수 바로 잡아야”
첩약 처방등 내년1월 구체화
[사진 = 연합뉴스]
40대 운전자 김 모씨는 작년 7월 차량 후미 추돌 사고로 상해급수 중 가장 낮은 14급을 받았다. 김 씨는 사고 당시 동승자와 함께 올 초까지 7개월간 한방과 양방병원을 다니며 총 진료비로 2720만원이 나왔다며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 중 한방 치료비는 1999만원으로 양방 치료비(721만원)보다 2.7배 많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타박상 등 경미한 부상에도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마다 약침술, 부항, 추나요법 등 다수의 치료를 동시에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 보험 경상환자에 대한 한방 진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방병원에서 교통사고 경상환자에게 약침, 부항, 첩약 등 6가지 이상의 진료를 한꺼번에 시행하는 ‘세트 청구(복수·동시 진료)’가 많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과잉 진료로 이어지기도 해 차 보험금 누수를 부르고 보험료 인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19일 매일경제신문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4대 손해보험사(삼성·현대·DB·KB)의 자동차 사고 발생 건수 기준으로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급) 중 추가진단서를 발급받은 비율을 집계한 결고 한방병원이 23.1%로 양방병원(8.1%)의 3배 수준에 육박했다. 특히 여러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달고 운영하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네트워크) 한방병원의 추가진단서 발급률은 33.3%로 3명 중 1명꼴로 발급받았다.

정부는 교통사고 경상환자에 대한 과잉진료를 방지하기 위해 올 1월부터 진료 기간이 4주를 초과할 경우 의료기관의 ‘추가 진단서’를 보험사에 제출해야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제도를 바꿨다.

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교통사고가 줄어드는 추세 속에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교통사고 건수는 코로나 사태로 이동량이 감소하고 운전자를 보호해주는 안전 기술이 발전하면서 2020년 20만9654건에서 2021년 20만3130건으로 3.1% 줄었고, 작년엔 19만6836건으로 1995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작년 전체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1조4636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2018년(7139억원)과 비교하면 2배 증가했다. 반면 양방 진료비는 같은 기간 1조850억(2021년)에서 1조506억원(2022년)으로 3.2% 줄었고, 2018년(1조2623억원)대비 16.8% 감소했다. 보험업계는 한방 세트 청구가 진료비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4대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를 보면 한방병원은 108만3000원으로 양방병원(35만5000)의 3배에 달했다. 한 대형 네트워크 한방병원은 117만9000원으로 더 높았다.

같은 상해급수와 진단명이라도 세트 청구로 인해 1일 진료비가 크게 차이나기도 한다. 올 초 A한의원을 찾은 60대 박 모씨는 ‘경추와 요추의 염좌 및 긴장(상해등급 12급)’이란 진단명을 받고 경혈침술, 투나법침술, 부항술 등 5가지 치료 등에 총 3만8950원이 나왔다. 반면 박 씨와 동일한 진단명과 상해등급인 30대 이모 씨는 B한방병원에서 하루 동안 한방첩약을 포함해 경혈침술, 약침술, 투자법침술, 침전기자극술, 구술(뜸), 부항술, 온냉경락요법 등 11개의 치료를 받고 총 22만2850원을 썼다.

최근 양방과 협진 체계를 갖추고 입원 치료도 가능하도록 1인실부터 다인실 병상도 마련하는 한방병원이 늘고 있다. 교통사고 접수부터 치료비 수급까지 모두 처리해주고 다양한 한방 진료를 묶은 ‘교통사고 치료 플랜’을 권하는 한방병원도 있다. 입원실의 절반 이상이 교통사고 경상환자로 채워지는 한방병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다양한 한방 치료가 교통사고 경상환자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첩약과 약침의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에 관련 규정 개선에 착수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는 ‘자동차보험진료수가에 관한 기준’을 행정 예고했다.

여기에는 경상환자의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를 기존 10회에서 7회(환자 동의 및 한의사 소견이 있으면 10일)로 조정하고, 경상환자에 대한 약침 횟수를 구체화 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아울러 한의원 등이 진료비를 청구하는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첩약·약침 조제내역서를 의무제출 하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방에서 상당한 규모의 보험금 누수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연간 300억~500억원의 자동차 보험 진료비가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경된 기준은 현재 국무조정실 규제심사가 진행 중인데, 관련 절차가 마무리 되면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당국도 한방병원에서 일어나는 자동차보험금 누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까지 자동차손해율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자동차보험료 인하까지 이뤄졌다”며 “내년에 손해율이 올라가거나 자동차보험에서 적자가 날 수 있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한방병원을 포함해 보험금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국토부와 지속적인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안정화하고 있는 만큼 과잉 진료가 줄면 보험사의 보험료 인하 여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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