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1480억, 나도 충격이었다"... SF '단장 한국 파견' 진심, 금액으로 보여줬다
이정후는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사실 샌프란시스코가 첫 오퍼였다. (계약 규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계약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앞선 15일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정후와 2027시즌 종료 후 옵트 아웃 조건을 포함하는 총액 1억 1300만 달러의 6년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세부적으로는 계약금 500만 달러(약 65억 원)에 계약 첫해인 2024년 700만 달러(약 92억 원), 2025년 1600만 달러(약 209억 원), 2026년과 2027년 각각 2200만 달러(약 288억 원)를 받고 2028년과 2029년에는 2050만 달러(약 268억 원)를 받는다.
지난달 28일 계약을 위해 출국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이정후의 미국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에 따르면 포스팅 도전을 선언하자 메이저리그 절반에 가까운 팀이 문의했으나, 1억 달러가 넘는 금액은 쉬이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번 오프시즌 FA 최대어는 일본인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29·LA 다저스)와 일본프로야구(NPB) MVP와 사와무라상 3연패의 야마모토 요시노부(25·오릭스 버펄로스)였고, 이정후는 MLB.com으로부터 FA 10위권 밖의 선수로 평가를 받았다. 자연스레 금액대도 5000만 달러(MLB.com)부터 9000만 달러(CBS 스포츠)로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책정됐다.
하지만 이정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는 과감하게 처음부터 1억 1300만 달러를 제시해 자신들의 진심을 보여줬다. 이에 KBO MVP 출신에 강심장인 천하의 이정후도 놀란 마음에 머리를 감싸며 다리가 풀렸다는 후문. 이정후는 계약 당시의 상황을 확인해 주면서 "선배들에 비해 계약이 일찍 마무리된 거라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이정후를 향한 샌프란시스코의 관심은 꾸준했고 집요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정후를 영입 후보군에 올려 놓고 있었고 메이저리그 도전 직전 시즌인 올해는 시즌 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부터 팀장급 스카우트들을 여럿 파견해 이정후를 살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훈련이 열린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에서도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의 모습은 보였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텍사스 레인저스, 뉴욕 양키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카고 컵스 등 9개 구단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이들 중 다수가 이정후가 경기 도중 교체된 후 구장을 떠나면서 가장 큰 목적이 누구였는지를 짐작케 했다.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들의 방문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키움 관계자에 따르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고척스카이돔을 6차례 방문했고, 심지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까지 샌프란시스코 고위급 스카우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점은 10월 10일 키움의 2023시즌 마지막 홈 경기인 고척 삼성 라이온즈전이었다.
이미 그 전부터 한국에 입국해 있던 피트 푸틸라 샌프란시스코 단장은 직접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이정후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경기와 타석을 지켜봤다. 이정후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열화와 같은 응원과 스타성을 확인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매체 'NBC 스포츠 베이에어리어'의 담당 기자 알렉스 파블로비치는 지난 5일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소식을 전하면서 "샌프란시스코 간부들은 올해 몇 번을 이정후 보러 갔다. 그들은 이정후 영입에 매우 깊이 관여할 것"이라며 오랜 관심을 확인해 줬다.
선수들에게 제시하는 금액은 자신들이 얼마나 원하는지 진심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을 막론하고 대형 FA 선수를 영입할 당시 선수의 감성적인 부분을 자극하거나 구단주, 사장, 그 구단의 전설적인 선수 등을 보내 정성을 다하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자신에게 가장 높은 금액을 불러주는 팀을 택했고, 금액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확실한 증표가 된다는 걸 매번 증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이후에도 이정후에게 제의가 있었으나, 그들만큼 적극적이지 못했고 이정후는 비교적 손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정후는 "많은 구단이 제의를 했지만, 피트 푸틸라 단장님이 한국에 오는 등 협상하는 데 있어서도 샌프란시스코가 날 가장 원하는 기분이 들어서 빨리 결정한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영입한 후에도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를 향한 각별한 애정은 이어졌다. 미국 현지에서 이정후를 향한 오버페이 논란이 있음에도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사장은 16일 입단식에서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역사에 남을 날이다. 우리는 팀의 공격력 강화를 위해 콘택트 능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번 오프시즌 동안 영입할 수 있는 후보를 봤을 때, 이정후를 제외하면 우리가 원하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가 없었다"고 추켜세우길 주저하지 않았다.
SNS에서는 이정후의 반려견 까오를 전면에 내세워 최고의 라이벌 LA 다저스가 얼마 전 영입한 오타니와 그의 반려견 데코핀에 맞불을 놓는 등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스타로서 대우를 확실히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구단 SNS에 "당신은 이정후와 함께 온 플러스 원(반려견)을 몰랐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는 훈훈한 메시지를 남겼다.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된 이정후의 체이스 센터 방문도 샌프란시스코가 배려해준 것이었다. 이정후는 입단식 다음날인 17일 샌프란시스코 연고 미국프로농구(NBA) 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구장 체이스 센터를 방문했다. 골든스테이트 구단이 관중석의 이정후를 소개하자 기립박수를 포함해 폭발적인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에 이정후는 "내가 농구를 보고 싶다니까 구단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입단식 전날에는 운동하고 싶다고 하니까 시켜줬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셨다"며 "내가 동양인이라 그런가 생각보단 많이 알아 보셨다. 체이스 센터에서도 팬들이 너무 환영하고 반겨주셔서 감사했다"고 답했다.
이렇듯 진심이니 이정후의 마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라는 명문 구단에 가게 돼 영광이다.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고 나도 구단에서 투자해 주신 만큼 기대에 걸맞은 플레이를 보답해 드리려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인천국제공항=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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