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소녀 머리 위로 떨어진 원자폭탄..."일본인처럼 피난 못 가 더 가혹"

윤샘이나 기자 2023. 12.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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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거주 재일동포 2세 박남주 할머니
"재일동포는 일본인처럼 피난할 곳 없었다"
"아침에 공습경보가 해제됐는데 전투기가 왜 또 날아오지 생각하고 있는데, 폭발음이 들렸고 불기둥이 솟아올랐어요."

78년 전, 12살의 재일교포 2세 여학생 박남주(91) 할머니는 동생들과 전차를 타고 일본 히로시마시 외곽의 친척 집으로 가던 중 눈앞이 깜깜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해가 쨍쨍한 한여름의 맑은 날씨였던 아침이 순식간에 검은 안개가 자욱한 암흑천지가 된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8월 6일, 미군 전투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3일 일본 히로시마 현지에서 진행된 우리 외교부 공동취재단과 만난 박 할머니는 현재 피부암과 유방암 등을 앓고 있는 원폭 피해자입니다.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찾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재일동포로서, 원폭 피해자로서 이런 날을 맞이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박남주 할머니가 지난 3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서 기자단과 인터뷰하고 있다.

히로시마 상공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로 반경 1.6km 이내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됐다는 기록이 남았는데 박 할머니와 동생들은 폭발 중심지로부터 1.9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박 할머니는 폭발 직후 장면을 '불바다', '히로시마 자체가 없어졌다'고 기억했습니다. "제방 위에서 보니 히로시마가 없어져서 겁이 났어요. 아무것도 없어서. 그때 마음은 너무 공포심이 가득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포에 찼어요. 히로시마는 완전히 불바다였고 남은 건물이 없었어요."

재일동포로 원자폭탄이 터진 그 땅에 그대로 남아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했습니다. "재일동포는 일본인처럼 피난할 곳이 없어서 원폭 진원지로부터 2km 이내에서 활동해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당시 히로시마에 살던 조선인 8만 명 가운데 5만 명이 피폭됐고, 이 가운데 4만 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 중 상당수도 암을 앓는 박 할머니처럼 피폭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인 원폭 피해자들은 치료비 지원 배제나 차별적 시선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일본 대법원은 한국으로 이주한 한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치료비 전액 지원 판결을 2015년에야 내놨습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1970년 공원 밖에 세워졌다가 29년 뒤인 1999년에야 공원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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