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조국 독립' 도왔던 차보석·신달윤 선생 묘소 찾았다

박응진 기자 2023. 12.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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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부, 현지조사 통해 샌프란시스코 사이프러스 묘지서 확인
"유족 협의 또는 교민사회 청원 거쳐 유해 봉환절차 밟을 계획"
독립유공자 차보석 선생.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일제강점기 미주 지역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차보석·신달윤 선생의 묘소 위치가 최근 우리 정부 당국에 공식 확인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들 선생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20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가보훈부는 미국에 안장돼 있는 문양목 애국지사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지난 10월 보낸 출장단을 통해 현지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두 선생의 묘소가 샌프란시스코 소재 사이프러스 묘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훈부는 이에 앞서 미주지역 한인신문 등 자료 조사 결과와 관련 증언·제보를 토대로 차 선생 등이 사후 사이프러스 묘지에 안장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이번에 처음 현장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이번 묘소가 확인된 2명의 독립운동가 가운데 차 선생은 1892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1921년부터 중국 상하이(上海)의 재상해유일학생회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넘어가 1925년부터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 총단장, 서기·재무담당, 그리고 1931년 대한인국민회 입회 뒤엔 1932년 '3·1절' 기념식 준비위원 등을 맡았다. 차 선생은 이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국어학교의 교사, 재무담당으로 일하기도 했다.

또 신 선생은 1881년 평안남도 출생으로 역시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07년 공립협회 리버사이드 지방회 구제위원, 1908년 샌프란시스코 지방회원에 이어 1910년부터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 지방회의 부회장·총무 및 재무담당을 맡았다. 또 그는 1919년 맨티카 지방회의 총무, 1927년 샌프란시스코 지방회 총무·법무, 1943년 샌프란시스코 한인경위대원 등으로 활동했다.

특히 두 선생은 저마다 1925~32년 및 1905~45년 기간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쓰던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차 선생은 1932년 3월, 신 선생은 1956년 7월 각각 미국에서 숨을 거뒀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공적을 기려 차 선생에겐 건국훈장 애족장(2016년)을, 그리고 신 선생에겐 대통령표창(2015년)을 각각 추서했다.

보훈부는 이들 두 선생의 미국 내 묘소가 확인된 만큼 앞으로 유족 등 직계후손을 찾아 유해의 국내 봉환 여부를 협의할 계획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해외에 있는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은 일반적으로 유족의 청원을 통해 진행된다"며 "만일 생존 유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교민사회의 청원을 통해 봉환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미 캘리포니아주 파크뷰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는 문양목 지사 유해의 경우 국내 봉환을 위해 보훈부가 현지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다.

문 지사 손자가 묘지 측에 문 지사 유해 이장을 신청했으나, 주(州) 법률상 공동묘지에 매장된 유해는 그 부모나 배우자, 형제·자매의 신청이 있을 때만 이장이 가능하단 이유로 묘지 측이 이장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문 지사의 아들은 2020년 8월 타계했다.

이에 보훈부는 현지 변호사를 통해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문 지사 유해 이장을 위한 파묘 청원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청원인 1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그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1869년생인 문 지사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07년 대동보국회를 결성했고 1909년엔 네브라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하는 등 미주 지역에서 국권회복 및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문 지사는 특히 1919년 '3·1운동'의 계기가 된 파리평화회의 청원대표 파견 결정 등에도 참여했고, 이후엔 멘티카 지방에 국어학교를 열어 한인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정부는 문 지사의 이 같은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충분한 준비를 거치되, 최대한 빨리 문 지사를 국내로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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