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연말에 돌아보는 시골살이 회한

관리자 2023. 12.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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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올 한해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한해 동안 현장에서 보는 농업과 농촌의 사정은 어떠한가? 그동안 정부는 식량안보를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해 논콩과 밀·가루쌀(분질미) 생산을 확대하거나 농업구조 개선과 농가경영 안정을 위해 농지이양 은퇴직불제 도입, 호우와 태풍 피해 시 지원기준 상향 조정,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을 확대했지만 달라진 정책을 체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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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농업·농촌 발전 위해 고민
퇴임후에도 이래저래 애써보지만
큰 도움 못되는 것 같아 무력감
정부 정책 역시 현장에선 괴리감
새해엔 농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에 더 많은 관심을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올 한해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누구나 이맘때가 되면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숙연한 마음으로 한해를 돌아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퇴임 후 8년째 고향 집에서 아내와 함께 어머니 모시고 텃밭을 가꾸며 소일하고 있다. 올해는 여름 장마로 병충해가 많아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땀 흘려 일하면 쌀이며 채소와 과일 등 가족들이 먹을 식량은 내 손으로 직접 생산할 수 있으니 시골생활의 낙이라 하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해가 갈수록 들일이 힘에 부치고 처음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음먹은 자료정리와 어쩌다 시작한 농촌살리기운동이 여의치 않았다는 점이다.

몇해 전 경북도청에서 지방행정의 일하는 방식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농촌살리기현장네트워크’라는 협동조합 형태의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지인들과 ‘지역농협의 새로운 역할과 비전 연구’와 ‘사과를 중심으로 한 6차산업 아카데미’ 운영은 계획대로 마쳤으나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또 인근 사과 주산지에 애플밸리를 조성해보겠다는 계획은 엉거주춤한 상태이다. 모두 내 정성이 부족한 탓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평생 공부가 현장에 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해 동안 현장에서 보는 농업과 농촌의 사정은 어떠한가? 그동안 정부는 식량안보를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해 논콩과 밀·가루쌀(분질미) 생산을 확대하거나 농업구조 개선과 농가경영 안정을 위해 농지이양 은퇴직불제 도입, 호우와 태풍 피해 시 지원기준 상향 조정,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을 확대했지만 달라진 정책을 체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오히려 이상기온으로 인한 병충해 발생과 농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생산비가 크게 늘어났지만 물가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저율관세할당(TRQ)을 적용해 농가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더구나 예산이 늘어났다지만 정작 정책 만족도가 높은 친환경농산물이나 과일간식 지원사업 등은 폐지하고 치유농업·반려동물산업·해외원조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어서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흑사병보다 더 심각하다는 저출산·고령화의 위기 속에서 농업·농촌이 살아남으려면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고 우선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행복하게 지내는 법을 찾아야 한다. 새해에는 청년들이 농업법인 취업이나 제3자 승계 등을 통해 농사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거나 마을 또는 들판 단위로 공동경작을 하는 경영체를 육성하고, 탄소중립을 위해 친환경농업과 에너지 자립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농촌에 산재한 낡은 슬레이트 지붕 교체와 빈집 정리, 마을 단위 LPG 배관망 구축, 초고속통신망과 공공와이파이시설 확충 등에 속도를 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지역 실정에 맞는 프로젝트를 골라 고향사랑기부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농협을 비롯한 주민들의 참여를 촉진해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하면 어떨까?

농사꾼 집에서 태어나 평생 이 분야에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농업과 농촌에 대한 걱정은 내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누가 퇴직한 지가 언제인데 이젠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물어도 도연명의 시구절을 읊으며 웃고 만다. ‘청춘은 두번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이 다시 오기 어렵다. 때를 맞추어 열심히 일하라.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歲月不待人).’ 독자 여러분께서도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마무리 잘하시고 희망으로 가슴 뛰는 새해를 맞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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