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라 요시토모 “40년 작가활동 ‘감성의 시작점’은 바로 고향”

류수연 기자 2023. 12.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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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본 미술가 나라 요시토모
日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서 회고전…내년 2월25일까지
겉만 보고 편견 갖지 말길
보이지 않는 깊은 곳 들여다보도록
선적 묘사 줄이고 색깔·터치에 집중
입체작품은 단순화…해석 여지 넓혀
고향에서 회고전 연 까닭
그림 그리도록 몰아친 힘은 ‘망향심’
감성 키우고 예술 시작한 뿌리 의미
설국의 풍경 속에서 만나는 작품들
이전과 확연히 다른 느낌 선사할 것
고교시절 만들었던 ‘록카페 33 ⅓’을 복원한 건물 앞에 서 있는 나라 요시토모. 코노 유리카

큰 눈에 순수함과 반항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큰 머리 소녀’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일본 미술가 나라 요시토모.

2000년 작품인 ‘등 뒤에 품은 칼(Knife behind Back)’이 2019년 당시 320억원(1억9570만 홍콩달러)에 입찰되며 아시아 ‘최고 몸값’을 기록했다. 그는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작가다. 특히 올해 9∼10월 열린 두번째 국내 개인전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이 관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2만4583명의 관객이 모였다.

그런 그가 고향인 일본 본섬(혼슈) 최북단인 아오모리현에서 자신의 작가생활 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나라 요시토모: 더 비기닝 플레이스, 여기서부터(奈良美智: The Beginning Place ここから)’다. 내년 2월2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10월14일 시작해 최근 관람객 3만명을 돌파했다.

아오모리는 연간 적설량 600㎝, 최대 적설량이 149㎝에 달하는 ‘호설(豪雪) 지대’이자 일본 최대 사과·마늘 주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년 1월20일부터 인천-아오모리 직항편 운항이 재개될 예정이어서 한국에서도 설국의 정취 속에 펼쳐진 전시를 직접 찾아갈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본지가 국내 언론 최초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인전 3건을 포함해 8건에 달하는 전시로 분주한 작가를 만나진 못했지만 아오모리현립미술관 측 협조로 서면 인터뷰가 성사됐다. 자신의 예술이 시작된 곳에서 지난 40년의 활동을 돌아보는 작가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드나잇 티어즈(Midnight Tears·한밤중 흐르는 눈물, 2023년)’. 세로 240㎝, 가로 225㎝ 화폭에 담긴 대형 작품으로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수십년 동안 ‘큰 머리 소녀’들을 그리고, 조각해오셨습니다. 그동안 작가님의 소녀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 그림을 보면 모티브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세대든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분들의 지식이나 감수성에 따라 의미를 깊게 혹은 얕게 읽을 수 있습니다. 초기 작품은 언뜻 보면 표면적으로 강한 주장을 하는듯 보여 그러한 겉부분만을 보고 (제가) 팝아트의 계보 속에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게다가 몇년 전부터 제 그림에 영향을 받은 듯한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표층에 영향을 받은 반면 정신성까지는 보려 하지 않는 듯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 최근 제 그림에선 이미지를 결정해버리는 선(線)적인 묘사를 억제하고 색깔이나 터치를 중시하게 됐어요. 기호적이고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바꿔왔습니다. 또한 대형 입체 작업을 할 땐, 그림과는 반대로 매우 단순화한 형태를 구현해 감상할 때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도록 노력했습니다.

눈모자를 쓴 ‘아오모리개’. 높이 8.5m, 가로 6.7m에 달하는 강화콘크리트 설치작품으로 2005년 만들어졌다. 아오모리현립미술관

-폭설을 넘어 ‘호설’로 유명한 아오모리에서, 눈 내리는 가을과 겨울을 주된 전시 기간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나요. 특히 ‘순회하지 않는 전시’를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순회는 안하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죠. 저는 ‘감성을 키우고, 예술을 시작한 장소’를 이번 전시 테마로 잡았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지금 계절의 공기와 눈 쌓인 풍경을 느끼며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실 거라고 믿어요. 물론 느낌을 받는 건 감상하시는 분들의 몫이겠지만요. 지금까지 계속 작품을 봐주신 분도, 아직 만나보지 않은 분도 많이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고교시절 만들었던 ‘록카페 33 ⅓’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목조건물(2023년). 실제 건물은 1980년대 철거됐다.

-이번 전시는 ▲집 ▲시공(時空)의 적층 ▲여행 ▲NO WAR(전쟁 반대) ▲록카페 33 ⅓과 작은 공동체 등 5개 주제로 구성돼 있는데요. 관람객들이 가장 집중해서 봤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연 전시회 중에 제가 지닌 전시구성 능력을 가장 잘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하나하나보다도 전체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각종 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전 작품에서부터 ‘반전·반핵(NO WAR, NO NUKE)’이란 문구를 활용하셨는데, ‘사랑과 평화(LOVE&PEACE)’를 강조하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습니까.

▶제가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중학생 때까지 계속된 베트남 전쟁은 (종군기자만이 아닌) 일반 언론이 처음으로 취재하러 간 전쟁이었습니다.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나 사진작가의 행동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의 현실을 전해줬습니다. 성장기였던 저는 당시의 대중음악과 문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나고 자란 아오모리현 내 있던 미국 공군기지와 일본 최초의 원자력선 모항 등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래전 쓰신 책 ‘나라 노트(NARA NOTE)’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나를 몰아친 것은 ‘망향심(望鄕心)’이다’는 구절을 봤습니다. 온 세계를 다니며 작품과 사진 등으로 기록을 남기고 계신데, 고향에 관한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산야와 자연이 지금도 그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리운 고향은 기억과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에요. 일본이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고향도 그 풍경이 수차례 바뀌었기 때문이죠. 요즘은 홋카이도나 대만의 농촌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그리운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국 팬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은 일찍부터 제 작품에 흥미를 많이 보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일본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경제 부흥을 경험했고, 또 같은 아시아권에 있어 감수성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새로운 물결을 거치며 가치관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제 초기 작품은 그런 시대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결국, 시대나 유행이 아니라 뭔가 변하지 않는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핵심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이런 점을 알아주시는 분이 한국에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라 요시토모는 1959년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출생. 1987년 아이치현립 예술대학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듬해 독일로 건너가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를 1993년 졸업했다. 쾰른에서 작품활동을 펼치다 2000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세계 각국에서 4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한국의 리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또한 엑스(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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