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라 요시토모 “40년 작가활동 ‘감성의 시작점’은 바로 고향”
日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서 회고전…내년 2월25일까지
겉만 보고 편견 갖지 말길
보이지 않는 깊은 곳 들여다보도록
선적 묘사 줄이고 색깔·터치에 집중
입체작품은 단순화…해석 여지 넓혀
고향에서 회고전 연 까닭
그림 그리도록 몰아친 힘은 ‘망향심’
감성 키우고 예술 시작한 뿌리 의미
설국의 풍경 속에서 만나는 작품들
이전과 확연히 다른 느낌 선사할 것

큰 눈에 순수함과 반항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큰 머리 소녀’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일본 미술가 나라 요시토모.
2000년 작품인 ‘등 뒤에 품은 칼(Knife behind Back)’이 2019년 당시 320억원(1억9570만 홍콩달러)에 입찰되며 아시아 ‘최고 몸값’을 기록했다. 그는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작가다. 특히 올해 9∼10월 열린 두번째 국내 개인전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이 관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2만4583명의 관객이 모였다.
그런 그가 고향인 일본 본섬(혼슈) 최북단인 아오모리현에서 자신의 작가생활 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나라 요시토모: 더 비기닝 플레이스, 여기서부터(奈良美智: The Beginning Place ここから)’다. 내년 2월2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10월14일 시작해 최근 관람객 3만명을 돌파했다.
아오모리는 연간 적설량 600㎝, 최대 적설량이 149㎝에 달하는 ‘호설(豪雪) 지대’이자 일본 최대 사과·마늘 주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년 1월20일부터 인천-아오모리 직항편 운항이 재개될 예정이어서 한국에서도 설국의 정취 속에 펼쳐진 전시를 직접 찾아갈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본지가 국내 언론 최초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인전 3건을 포함해 8건에 달하는 전시로 분주한 작가를 만나진 못했지만 아오모리현립미술관 측 협조로 서면 인터뷰가 성사됐다. 자신의 예술이 시작된 곳에서 지난 40년의 활동을 돌아보는 작가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십년 동안 ‘큰 머리 소녀’들을 그리고, 조각해오셨습니다. 그동안 작가님의 소녀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 그림을 보면 모티브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세대든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분들의 지식이나 감수성에 따라 의미를 깊게 혹은 얕게 읽을 수 있습니다. 초기 작품은 언뜻 보면 표면적으로 강한 주장을 하는듯 보여 그러한 겉부분만을 보고 (제가) 팝아트의 계보 속에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게다가 몇년 전부터 제 그림에 영향을 받은 듯한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표층에 영향을 받은 반면 정신성까지는 보려 하지 않는 듯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 최근 제 그림에선 이미지를 결정해버리는 선(線)적인 묘사를 억제하고 색깔이나 터치를 중시하게 됐어요. 기호적이고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바꿔왔습니다. 또한 대형 입체 작업을 할 땐, 그림과는 반대로 매우 단순화한 형태를 구현해 감상할 때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도록 노력했습니다.

-폭설을 넘어 ‘호설’로 유명한 아오모리에서, 눈 내리는 가을과 겨울을 주된 전시 기간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나요. 특히 ‘순회하지 않는 전시’를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순회는 안하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죠. 저는 ‘감성을 키우고, 예술을 시작한 장소’를 이번 전시 테마로 잡았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지금 계절의 공기와 눈 쌓인 풍경을 느끼며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실 거라고 믿어요. 물론 느낌을 받는 건 감상하시는 분들의 몫이겠지만요. 지금까지 계속 작품을 봐주신 분도, 아직 만나보지 않은 분도 많이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는 ▲집 ▲시공(時空)의 적층 ▲여행 ▲NO WAR(전쟁 반대) ▲록카페 33 ⅓과 작은 공동체 등 5개 주제로 구성돼 있는데요. 관람객들이 가장 집중해서 봤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연 전시회 중에 제가 지닌 전시구성 능력을 가장 잘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하나하나보다도 전체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각종 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전 작품에서부터 ‘반전·반핵(NO WAR, NO NUKE)’이란 문구를 활용하셨는데, ‘사랑과 평화(LOVE&PEACE)’를 강조하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습니까.
▶제가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중학생 때까지 계속된 베트남 전쟁은 (종군기자만이 아닌) 일반 언론이 처음으로 취재하러 간 전쟁이었습니다.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나 사진작가의 행동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의 현실을 전해줬습니다. 성장기였던 저는 당시의 대중음악과 문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나고 자란 아오모리현 내 있던 미국 공군기지와 일본 최초의 원자력선 모항 등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래전 쓰신 책 ‘나라 노트(NARA NOTE)’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나를 몰아친 것은 ‘망향심(望鄕心)’이다’는 구절을 봤습니다. 온 세계를 다니며 작품과 사진 등으로 기록을 남기고 계신데, 고향에 관한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산야와 자연이 지금도 그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리운 고향은 기억과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에요. 일본이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고향도 그 풍경이 수차례 바뀌었기 때문이죠. 요즘은 홋카이도나 대만의 농촌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그리운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국 팬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은 일찍부터 제 작품에 흥미를 많이 보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일본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경제 부흥을 경험했고, 또 같은 아시아권에 있어 감수성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새로운 물결을 거치며 가치관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제 초기 작품은 그런 시대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결국, 시대나 유행이 아니라 뭔가 변하지 않는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핵심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이런 점을 알아주시는 분이 한국에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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