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종합병원 의사 1만2532명이 부족하다
[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붕괴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그가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서울=뉴스1) =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으라고 주장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우리나라 의사 수는 단순한 비교라 의미가 없고,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과 서울대 교수들이 앞으로 의사가 부족해진다고 한 연구 결과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 수십명의 응급환자들이 의사가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고 소아 환자들이 입원 안 한다고 약속해야 진료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의사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우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으라는 의협 주장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길 바라며, 우리나라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지난 글에는 최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중소도시와 군 지역에 사는 국민들이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려면 동네의원 의사가 1만5000명~2만2000명은 더 있어야 함을 보여줬다. 동네의원 의사를 이만큼 늘리면 매년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는 2만명 줄어들고, 건강보험 진료비는 약 6조원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됐다.(12월5일자 <의사 부족 근거?…동네 의원 수에 답 있다> 참조)
이번 글에선 종합병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종합병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지 알아보려면 환자들이 입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멀리 있는 병원까지 이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큰 종합병원을 이용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중진료권을 설정할 수 있다. 중진료권 간에 의사 수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큰 종합병원이 부족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은지, 큰 종합병원과 의사가 부족한 진료권에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지를 비교해보면 종합병원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뢰로 '분야별 의료공급체계 개편방안 연구 2021~2023'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이 글에 인용된 통계와 그래프 등은 이 연구를 근거로 한 것임을 밝혀둔다.
우리나라는 모두 55개의 중진료권으로 나눠지는데, 전체 입원환자 중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자기 지역 병원에서 치료받는가를 나타내는 '자체충족률'을 기준으로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서울시와 광역시, 전주, 창원 같은 지역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한 중진료권은 자체충족률이 높은 지역(75% 이상)으로 분류된 반면 구리, 평택, 서산, 논산, 김천, 구미, 고성 중진료권은 자체충족률이 낮은 지역(60% 미만)으로 분류됐다. 강원도 속초와 동해, 충남 당진과 홍성, 충북 제천, 경북 문경, 경남 사천과 거제 중진료권은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큰 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이다.
자체충족률이 높은 대도시 지역의 자체충족률은 81~85%로 매우 높았던 반면 큰 병원이 별로 없는 지방 중소도시의 자체충족률은 36~50%에 불과했다. 큰 종합병원이 없는 의료취약지의 자체중촉률은 26~47%로 더욱 낮았다. 우리나라 국민의 15%가 큰 종합병원이 없거나 부족한 중진료권에 살고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응급환자나 제대로 치료를 못 받으면 사망할 수도 있는 중등증 환자의 절반 가량이 자기 지역에서 입원하지 못하고 다른 진료권을 이용해야 했다.
이렇게 큰 종합병원이 없거나 부족한 지역에서 치료받은 입원환자는 대도시 종합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에 비해 중증도 보정 사망률이 15~30% 더 높았다. 이는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질병의 중증도를 모두 보정한 사망률이기 때문에 대도시와 중소도시 및 군 지역 병원의 진료 수준에 따른 사망률 격차를 의미한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사는 국민들이 대도시 수준의 입원의료를 누리려면 의사가 얼마나 더 필요할까? 대도시 중진료권 수준인 81~85%의 자체충족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종합병원에 약 1만2532명의 의사가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큰 종합병원을 확충하면서 의사를 함께 늘리면 대부분의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들이 자기 사는 곳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고, 병원 진료의 질이 좋아지고, 대도시에 비해 높은 입원환자 사망률도 낮아진다.
동네의원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도 큰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수 격차는 나아지지 않았다. 2015년~2019년 사이 큰 종합병원이 많은 대도시 지역이나 큰 종합병원이 부족하거나 없는 의료취약지나 종합병원 의사 수는 비슷하게 증가했다. 의사 배출을 늘리면서 동시에 종합병원이 없거나 부족한 지역에 의사를 배치하기 위한 정책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의사가 부족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가 부족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의사 수는 동네의원 의사 1만5000~2만2000명에 종합병원에 부족한 의사 수 1만2532명을 더하면 모두 2만7500~3만9500명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대란이 일어나는 이유고, 지방에서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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