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뼈 금 간 채 마지막까지 뛴 악바리
프로농구 원주 DB 강상재(29)가 얼굴에 검은 테이프를 잔뜩 붙이고 인터뷰를 위해 나타났다. 전날이었던 12일 서울 SK전에서 상대 선수 안영준(28)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에 금이 갔다. 올 시즌 유독 몸을 아끼지 않는 강상재는 “뛰다 보면 얼마든지 이럴 수 있다. 그만큼 올 시즌은 간절하다”고 했다.
DB는 올 시즌 18승 5패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19-2020 시즌 이후 23경기 기준 첫 1위다. 처음으로 사령탑에 앉은 김주성 DB 감독의 전술,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디드릭 로슨(26) 등이 DB의 약진 로 꼽히지만, 첫 주장을 맡은 강상재를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SK와 경기에서 강상재가 잠시 코트를 떠나자 DB는 수비에서 허점을 보이며 동점을 허용했다. 강상재가 응급처치를 마치고 돌아오자 다시 점수를 벌려 91대82로 승리했다. 강상재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인데, 주장이 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하게 된다”며 “선후배 가리지 않고 ‘FM(교범)’으로 하자고 말한다”고 했다.
강상재는 고려대 시절 큰 키(200㎝)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슛 터치로 한국 농구 미래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16년 프로에 데뷔한 뒤 더딘 성장으로 ‘트위너’로 전락했다는 평을 들었다. 트위너는 ‘비트위너(Betweener)’에서 유래한 말로, 골밑을 맡기에는 키가 작고, 가드로 뛰기에는 속도가 느린 선수를 일컫는 농구 용어다. 특히 같은 팀 걸출한 센터 김종규(32·207㎝) 탓에 입지가 더 어정쩡해졌다. 오히려 잊을 만하면 나오는 거친 파울로 유명해졌다. 강상재는 “반칙을 하고 나면 ‘아, 또 저질렀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몸이 마음처럼 안 따라주니 그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잊힐 듯하던 강상재가 올 시즌 김주성 감독 체제 DB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강상재는 김 감독에게 체중 감량을 지시받아 106㎏에서 97㎏으로 줄였다. 그렇게 가벼워진 몸으로 코트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뛰어난 도움 수비를 펼친다. 공격에서는 감각적인 스크린(상대 수비수 동선을 가로막아 활로를 뚫는 기술)과 날카로운 외곽슛을 뽐낸다. 강상재는 올 시즌 한 경기 평균 13.4점 5.8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득점과 어시스트는 데뷔 이후 가장 좋다. 3점슛도 1.7개를 42.5% 확률로 꽂아 넣는다. 성공 개수와 성공률 역시 경력 최다. 그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다.
강상재는 성장 비결을 “잘해야 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절실하다는 의미다. 그는 “김주성 감독님이 주장으로 임명해 주시고 힘을 실어주는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었다”며 “스스로 승부욕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올 시즌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더 이기고 싶다”고 했다.
‘FA 로이드’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앞두고 마치 약물인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처럼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농담 섞어 부르는 말이다. 강상재는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14개월 된 딸이 있다. 좋은 계약을 해서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고 했다. 그래서 ‘분유로이드’라는 말도 나온다. 강상재는 올 시즌 3점슛을 넣으면 뺨에 손을 갖다대는 세리머니를 펼친다. 그는 “딸의 ‘예쁜 짓’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상재는 시즌 최우수 선수(MVP) 유력 후보로도 꼽힌다. 주장으로서 팀을 단독 선두로 이끌고 있는 덕이 크다. 강상재는 손사래를 치면서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선수 생활 내내 개인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무엇보다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MVP는 그다음 생각할 일”이라고 했다.
/원주=이영빈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