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보던 기와집이… 서울 도심 한옥 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옥마을 지나 진관사로 향하는 언덕길. 커다란 기와의 한옥 한 채가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였다. 콘크리트 기둥 몇 개가 연면적 470여 평짜리 건물을 받치고 있었다. 필로티 공간인 1층은 카페,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2층은 공양간(사찰의 부엌), 탁 트인 3층은 명상실이었다. 지하 1층·지상 3층, 높이만 13.81m다. 위로 오를수록 속세에서 부처님 영역에 가까워지도록 설계했다. 조계종 진관사가 현대식 한옥으로 지은 ‘한문화체험관’이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의 우수 한옥’으로 선정한 9곳 중 하나다.
서울 도심에 ‘한옥’ 붐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까다로운 한옥의 기준을 완화하고 건축비와 수리비 등 지원을 늘리자 현대식으로 새로 짓는 이른바 ‘퓨전 한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통 한옥은 누수와 단열 등에서 불편한 점이 많은데, 한옥에 콘크리트와 철재 등 현대식 자재를 섞어 쓰도록 허용하면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한옥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한옥 등 건축 자산 진흥 조례’에 따라 2001년부터 한옥 등록 제도를 통해 한옥 수선 및 신축 지원을 하고 있다. 집을 지을 때 필수 요건인 건축 기준과는 별개다. 서울시에 등록된 한옥은 예부터 있던 전통 한옥과 현대식 한옥을 포함해 모두 1166채. 지난 한 해 48건에서 올해 13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등록 제도가 시작된 이후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시 한옥지원센터에 접수되는 상담 건수도 폭증했다. 한옥을 새로 짓는 방법에서부터 행정 절차, 규제, 지원 방법 등에 대한 문의가 연간 300~400건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1147건으로 3배가량 늘었다.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에 있는 갤러리 ‘호경재’도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한옥’이다. 안채와 사랑채, 별채가 작은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창호를 통유리로 바꾸고 내부를 아파트처럼 고쳤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무 창틀과 한지로 창문을 만들어야만 한옥으로 인정됐다.
동대문 한양도성박물관 뒤 한옥스테이 ‘지금’은 한옥의 낮은 층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닥을 낮춰 석재 타일을 깔았다. 내부는 침대와 싱크대, 식탁을 배치해 호텔 내부처럼 꾸몄다.
이런 퓨전 한옥의 등장은 서울시의 지원 조건 완화가 큰 몫을 했다. 그동안 서울시로부터 한옥으로 인정받고 건축·수리 지원을 받으려면 처마 길이에서부터 지붕 높이 등 73가지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5월부터 가구 배치, 창틀, 출입문 등에 대한 기준 12가지를 폐지하고, 구조와 처마 길이, 창호 등 기준 33개를 완화했다. 한옥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구로구 독산동의 ‘문화정원 아트홀’ 빌딩은 오피스텔 천장을 한옥의 서까래로 꾸몄고, 6층 사무실 내부는 안채와 사랑채가 나눠진 듯 ㄷ 자 형태로 만들어졌다. 바닥은 육송 마루를 깔았고, 벽지는 한지를 썼다. 실내에 황토방도 만들었다. 이곳 역시 ‘우수 한옥’으로 뽑혔다.
현재 서울에는 북촌과 익선동, 인사동, 은평구 등 13개의 한옥마을이 조성돼 있다. 내년부터는 강동구 암사동, 도봉구 방학동 등에 6개 한옥마을을 추가로 조성한다. 암사동 한옥마을은 광나루 한강공원 인근에 위치한 ‘수변 한옥마을’로, 동대문구 제기동 한옥마을은 인근 전통시장 안에 있는 옛 건축물들과 어울리게 만든다. 한문화체험관을 설계한 조정구 건축가는 “전통 한옥이 가진 아름다움에 현대적인 요소가 더해지면 지속 가능한 한옥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건축 양식이 미래 지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금까지 한옥의 보전과 보급, 현대화를 위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한옥이 가진 매력과 가치를 끌어내 서울의 매력을 높이는 중요한 자산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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