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쓰면 남는 '질퍽' 하수 찌꺼기, 연료·시멘트로 재탄생 고군분투
서울 시민이 하루에 만드는 오수 441L 달해
정화 후 '하수 찌꺼기'로 고체연료 만들지만
화력 발전 제한에 연료 수요 줄어 처치 곤란
가스화 기술·시멘트 대체재 등 새 대안 모색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물을 씁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감고, 주방에서 식사 준비에 설거지, 양치, 손 씻기 등등. 이렇게 '물 쓰듯 써서' 서울을 기준으로 한 사람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오수량은 441L(리터)에 달합니다. 음료수 1.5L 페트병 300개에 가까운 양이니 엄청나죠.
이 많은 폐수는 어디로 갈까요. 각종 오염 물질이 섞인 더러운 물을 곧바로 바다와 하천에 쏟아낼 수는 없겠죠. '하수처리장'에서 물을 다시 깨끗하게 정화하다 보면 오수 속 폐기물, 음식물 쓰레기 입자, 미생물, 미량 화학 물질 등이 뒤섞인 '하수 슬러지(찌꺼기)'가 남습니다.
악취가 심하고 부패하기도 쉬운 유기물을 다량 포함하는 슬러지는 그야말로 '쓸모'를 찾기 힘든 폐기물처럼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 질퍽이는 진흙 덩어리를 건조하고 열을 가해서 재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노력과 연구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늘어나는 하수 찌꺼기, 14년 새 60% 증가
하수 슬러지 발생량은 매년 증가 추세입니다. 2008년에는 281만7,000톤이었지만 2021년 말 기준 452만7,000톤으로 대폭 늘었죠. 생활 수준이 향상되며 물 사용량이 늘기도 했지만, 하수처리구역 확대, 수(水) 처리 및 방류 기준 강화 등 폐수 처리 고도화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질 개선을 할수록 '처리 곤란' 찌꺼기도 늘어나는 것이죠.
과거에는 하수 슬러지를 그냥 바다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각종 폐기물이 해양오염의 주범이라는 문제의식하에 국제사회는 해양투기 금지를 강화하는 '런던협약 1996의정서'를 체결했고, 한국 정부도 이에 가입해 2012년부터 슬러지 해양투기가 금지됐습니다. 육상에서 처리할 방법을 찾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죠.
지금껏 슬러지는 고형연료나 퇴비 등으로 주로 재활용됐습니다. 찌꺼기를 건조한 뒤 화력발전소에서 보조 연료로 쓰거나,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 과정을 거쳐 부숙토나 비료로 사용하는 것이죠. 다만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슬러지 기반 퇴비 활용 이후 토양 미세플라스틱과 화학 오염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도 토양과 직접 맞닿는 퇴비로 사용하려 할 때는 환경부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사용처도 제한적이라, 대량으로 발생하는 슬러지를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죠.
슬러지 연료, 화석 발전 제한에 수요 줄어
그간 주된 슬러지 재활용 방법은 '고형 연료'였습니다. 수분 함유량이 80%인 슬러지를 잘게 분쇄하고, 800도 넘는 고온열풍으로 건조해 함수량을 10%까지 낮춥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형 연료는 kg당 발열량이 3,000~4,000kcal로 저급 석탄과 성능이 비슷한 수준입니다.
문제는 기후위기 심화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19년 '석탄발전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공공 화력발전소에서 점점 슬러지 기반 고형 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7월 발간된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전국 하수 슬러지 건조 연료 생산량은 26만4,000톤이었지만 사용량은 17만1,000톤에 그쳤습니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재활용은 필수지만, 못 쓴 고형연료가 쌓여가고 재활용 시설 가동에 따른 적자도 누적되는 상황인 것이죠.
대표적으로 환경부 산하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도 2·3단계 슬러지 자원화 시설을 운영해 고형연료를 생산 중인데요. 2021년 말 기준 수도권(서울·경기·인천) 하수 슬러지 양은 221.8만 톤으로 전국 발생량의 절반(48.9%)에 달하고, 공사는 이 가운데 12~14% 정도를 처리 중입니다. 하지만 사용처가 줄면서 남아도는 고형연료를 임시로 땅에 묻는 실정입니다.
공사 관계자는 "하수 슬러지도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이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현실적 대안 마련을 위해 공사에서도 연구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공 석탄화력발전소 사용량이 줄면서, 민간 열병합발전소로 판로를 개척 중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일부 있어 자원 재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공사는 또 슬러지를 열처리하는 가스화 기술을 통해 발전에 쓰는 혼합가스를 만들거나, 광물인 제올라이트 원료를 만드는 기술개발 연구도 추진 중입니다.
지역 발생 슬러지로 시멘트 만들어 재사용
민간에서도 하수 슬러지의 '대변신'을 위한 연구 개발이 진행 중인데요. SK에코플랜트는 폐기물 소각재와 하수 슬러지 건조재를 이용해, 시멘트를 대체할 수 있는 'K 에코바인더' 시제품 생산에 성공한 상황입니다. 생활 폐기물 소각재의 산화칼슘(CaO), 이산화규소(SiO2) 성분과 하수 슬러지 건조재의 산화알루미늄(AI2O3) 성분을 조합, 시멘트 주원료인 석회석(CaCO3)과 광물 구성은 다르지만 성질은 유사한 물질을 만드는 것인데요. 생산 원료들은 폐기물 처치에 곤란을 겪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확보하고 있습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대량의 공공 폐기물을 매립하는 대신 시멘트 형태 제품을 생산해 보도블록, 경계석 등 공공 시설물로 재활용하자는 계획"이라며 "화력발전 연료 전환과 2026년부터 생활폐기물 수도권 직매립 금지 등으로 향후 폐기물 재활용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K 에코바인더는 석회석 사용 절감, 소성(가열) 온도 저감을 통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도 일반 시멘트 대비 최대 70% 절감할 수 있다네요.
제때 처리되지 못하고 쌓이는 하수 슬러지는 보관시설 인근 주민들이 겪는 '악취 공해'로 이어질 수 있고, 매립도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대안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물,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공짜로 얻어지는 자원은 없죠. 쓰고 남은 하수 찌꺼기까지 알뜰하게 환경적으로 다시 쓸 방법을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이유입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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