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농구 '국보급 센터' 박지수 "공황장애 겪으며 인생을 배웠다"
지난 시즌 공백기 통해 '즐기는 농구' 깨달아
득점 1위 등 리그 맹폭 중이지만 "팀 지면 무의미"
"WNBA서 FA신분... 재진출 의지 여전"
“웃픈(웃기고 슬픈) 얘기지만 지난 시즌에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았어요. 뛰는 자체로 행복했습니다.”
한국 여자농구의 ‘국보급 센터’ 박지수(청주 KB스타즈)는 지난해 겪은 아픔을 얘기하면서도 특유의 밝은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지난 시즌 그는 공황장애와 손가락 부상 탓에 여자프로농구(WKBL) 정규리그에서 단 9경기만을 소화했다.
박지수는 19일 본보와 전화통화에서 “지난 시즌 리그에 복귀하자 주변인들이 ‘성적에 대한 부담을 내려 놓으라’고 계속 조언했는데, 정작 나는 애초부터 성적과 관련한 생각을 안 했다”며 “인생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박지수는 코트를 떠나 있던 시기의 심리적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줬다. 그는 “지난해 여름 처음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후부터 같은 해 12월 복귀전을 치르기 전까지는 (몸이 힘들어) 팀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그러다 문득 ‘내 인생, 내 건강이 더 중요한데 왜 그렇게까지 아등바등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좀 더 즐기면서 농구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공황장애가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치유되는 병은 아니다. 박지수는 “공황장애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거나 음악을 듣는 등 소소한 행복거리에 집중했다”며 “이렇게 하니 공황장애가 약하게 온 뒤 지나가는 일이 잦아졌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공황장애를) 극복해 낸 것 같다”고 전했다.
평정심을 찾은 박지수는 그야말로 리그를 맹폭 중이다. 그는 올 시즌 13경기에 모두 출전해 득점(평균 19.85점)·리바운드(16.46개)·블록슛(1.69개)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공백기를 갖기 전 리그를 제패했던 박지수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온 셈이다. 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팀도 11승 2패를 기록, 한 경기를 덜 치른 아산 우리은행(11승 1패)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개인성적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박지수는 “현재 (선두 경쟁이 치열해) 1패가 치명적인 상태”라며 “개인성적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날 치른 용인 삼성생명전 패배(59-67)로 이 같은 생각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는 이 경기에서 21점 24리바운드로 맹활약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박지수는 “내가 아무리 잘해도 팀이 지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상대팀들이 우리 팀의 공격패턴에 대처하는 수비전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앞으로 허예은, 강이슬 등 동료들과 함께 상대 수비를 깨는 방법을 더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인만큼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도 남다르다. 위기에 처한 대표팀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농구대표팀은 올해 7월 열린 2023 국제농구연맹 여자 아시아컵 4강 진출에 실패하며 2024 파리올림픽 진출권을 따내지 못했다. 곧이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박지수는 “아시아컵에 나가기 전 라트비아와 평가전을 치른 게 연습경기의 전부였다. 대표팀의 부족한 면을 찾을 시간과 기회가 현저히 적었다”며 “앞으로는 국제 대회가 없는 해라도 일본, 중국처럼 대표팀을 소집해 손발을 맞추면 좋겠다”고 소신발언을 했다. 이어 “국내선수들도 리그에서의 이름값에 안주하지 말고 현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며 "외국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수 스스로도 기량발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3점슛 연습에 몰두 중인 그는 실제로 이달 9일 삼성생명전과 13일 하나원큐전에 각 2개씩의 외곽 슛을 던져 모두 성공시켰다. 박지수는 “사실 국내리그만 생각하면 골밑 플레이만 하는 게 나에게도, 팀에도 이득”이라면서도 “그러나 체격이 좋은 외국선수들과 치르는 경기에서는 국내에서처럼만 플레이할 수 없다. 새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대항전뿐 아니라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의 경기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는 2018시즌부터 2021시즌까지 WNBA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선수로도 활약했다. WKBL과 WNBA의 경기일정이 달라 두 리그를 병행할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팀내 상황과 개인사정이 겹쳐 최근 두 시즌은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WNBA에서의 활약을 꿈꾼다. 박지수는 “WNBA에서는 현재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라며 “아직 정해진 게 없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미국 무대 도전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귀띔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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