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 vs 한총련… 민주당 운동권 공천 내전
더불어민주당의 친명 외곽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19일 정의찬 당대표 특보가 민간인 고문치사 논란으로 최근 공천 적격 판정이 번복된 것과 관련, “정치 신인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고 반발했다. 이 조직은 강위원 이재명 당대표 특보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강위원·정의찬씨는 199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한총련의 핵심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이광재·기동민·송갑석 등 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실명과 비리 논란을 거론하며 “현역 의원은 프리패스”라고도 했다.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80년대 전대협 세대와 90년대 한총련 그룹이 정면 충돌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야권 관계자는 “한총련 그룹이 정의찬 사태를 계기로 선배 세대에게 ‘이제 자리를 내놓으라’고 도전장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 단체는 논평에서 “정의찬 특보는 문제의 고문치사를 지시하지도,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며 “그럼에도 검찰의 강압 수사와 당시 학생 대표의 책임감으로 멍에를 짊어졌다. 이런 사정을 김대중 대통령이 감안하여 사면 복권을 통해 정 특보의 명예와 권리를 복원시켰다”고 했다. 정 특보는 법원에서 고문치사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그렇다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강도죄나 방화죄 등으로 처벌받은 현역 의원들의 검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했다. 86 운동권 상당수가 1980년대 민주화 시위를 하다가 강도나 방화로 유죄를 받은 전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하다가 방화 혐의 등으로 사법 처리됐다. 이학영 의원은 운동권 시절 혁명 자금을 모금하겠다며 재벌 회장 집에 침입, 강도 상해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최근 국회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 내년 총선 출마를 검토 중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뇌물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했다”며 “이 경우에도 사면권의 효력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무시하고 부적격으로 판정할 것인가”라고 했다. 대법원은 2011년 이 전 지사가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만5000달러를 받은 혐의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었다. 2019년에 특별사면됐다.
이 단체는 또 “고가의 양복을 받은 것을 인정한 기동민 의원이나 지방의원 공천 장사를 한 의혹이 있는 송갑석 의원은 아무런 제재 없이 검증위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기 의원은 ‘김봉현 로비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송 의원은”공천 장사를 한 적도 없고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이를 의식한 듯 수시간 뒤 두 의원의 실명을 뺀 수정본을 배포했다.
이광재·기동민·송갑석 모두 80년대 학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총련 그룹이 전대협 세대의 도덕성을 거론하며 ‘너희는 좋은 자리 다 차지하면서 우리는 왜 안 되느냐’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논평 발표 이후 당내엔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당 일각에선 “정치 도의가 없다”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등 목소리도 나왔다.
1973년생으로 동갑인 강위원·정의찬씨는 1997년 각각 한총련과 남총련(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 의장이었다. 조선대 총학생회장이기도 했던 정씨는 1997년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강위원씨는 ‘이석 치사 사건’ 직후에 한총련 의장에 취임했다. 전대협 세대는 2004년 탄핵 총선을 계기로 중앙 정계에 다수 진출했고 문재인 정부의 내각 경험까지 쌓으면서 야권의 거대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전대협보다 주사파 색채가 강했고 대법원 이적 단체 판결(1998년)까지 받았던 한총련 출신들은 정치권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춥고 배고픈 곳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어서 사납다”고 했다. 한총련 출신들이 더민주혁신회의 등을 통해 ‘친명 호위 무사’를 자처하며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가결 시 “정치 생명을 끊어 놓겠다”고 위협한 것도, 내년 총선에서 ‘운동권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과거의 치사 사건 등이 발목을 잡아 한총련 출신들의 국회 입성 자체가 위태로워지자 아예 전대협 세대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한 것이다. 1999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곽대중 새로운선택 대변인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정치적 노선으로 보면 진보당 같은 곳에 가는 것이 맞는데 진보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길은 불투명하니 ‘확실한’ 민주당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의원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던 비명계 인사들이 당 예비 후보 심사에서 줄줄이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사자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며 “비명계, 친이낙연계에 대한 공천 학살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는 최근 예비 후보 등록 신청을 한 김윤식 전 시흥시장을 부적격으로 판정했다. 김 전 시장은 조정식 사무총장 지역구인 경기 시흥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시흥을에 조 사무총장을 단수 공천하자 김 전 시장이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했는데, 이를 ‘경선 불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 전 시장은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 사무총장이 사무총장직을 이용해 경쟁 상대를 제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반발했다.
지난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캠프 부본부장을 맡았던 최성 전 고양시장도 한준호 의원 지역구인 경기 고양을 예비 후보로 지원했다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고양시장 재직 당시 당정 협의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수석 사무부총장이자 검증위원장을 맡은 김병기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동작갑 출마를 준비하던 친문계 이창우 전 동작구청장도 비슷한 사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시장은 “음주 운전 등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적격 판정을 받았다”며 “지자체장을 지낸 유력 경쟁자들을 자격 심사에서부터 배제한 것”이라고 했다.
☞전대협·한총련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중추로 1987년 결성됐다. 이인영·오영식·임종석·송갑석 등 1~4기 의장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국회의원이다. 1980년대 학번, 60년대생으로 86세대로도 불린다. 이들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총선 때 정계에 대거 진출, 현 야권의 거대 주류로 자리 잡았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전대협의 후신으로 1993년 출범했다. 1990년대 학번, 70년대생이 주축이다. 북한 주체사상 추종 경향이 강했고, 대법원은 1998년 한총련을 이적 단체로 규정했다. 1997년 이석·이종권 치사 사건을 일으키며 학생운동의 몰락을 촉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대협과 달리 국회에 진출한 한총련 의장 출신은 아직까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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