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사운드 파트너… “새로운 소리 만들기 위해 직접 좀비 성대모사도”
봉준호 감독에게는 모든 작품을 함께해 온 ‘사운드 파트너’가 있다. 영상 음향 전문 스튜디오 라이브톤의 최태영(52) 대표다.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내년 개봉 예정인 ‘미키17′까지 모두 최 대표가 소리를 맡았다. 천만 영화 30편 중 ‘명량’ ‘부산행’ 등 11편이 최 대표가 만든 소리를 입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천만 영화 등극이 유력한 ‘서울의 봄’ 사운드 디자이너도 최 대표다. 첫 작품 ‘비트’(1997) 이후 26년간 그를 거친 영화와 드라마는 250여 편. 최근 서울 마포구 라이브톤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 대표는 “세상 모든 영상에 감정이 살아있는 소리를 입히는 게 사운드 수퍼바이저의 역할”이라며 “감독의 심장에 있는 귀를 관객과 이어주는 매개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사운드 디자인이 들어간 초기작이 ‘친구’(2001)다. “마이 무웃따 아이가, 고마해라”라는 대사로 유명한 장면에서 장동건은 칼침을 서른 번 넘게 맞는다. 최 대표는 서른 번의 칼침 소리를 다르게 했다. 서너 번은 실제 소리지만 이후에는 북소리 같다. ‘푹푹’이 아니라 ‘웅웅 둥둥’이다. 칼 소리가 장동건의 시점으로 옮겨 가 심장 고동처럼 울린다. 업계에서는 “최 대표는 사운드 하나만으로도 작품이 되는 창의적인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한다. 그의 창의성은 ‘최종병기 활’(2011)에서도 발휘됐다. 직선으로 ‘휙’ 날아가는 화살 소리가 아니라, 휘어졌다 꽂히는 ‘후르리릭’ 음향을 만들었다. 철물점에서 사온 고무패드 가운데에 칼집을 내고 낚싯줄을 엮었더니 회전이 잘 먹히는 소리가 났다.
최 대표는 영화 ‘기생충’(2019)을 한국적인 정서와 기술력이 숨쉬는 ‘K사운드’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원래는 생활 소음 위주라 그리 어렵지 않게 봤다. 하지만 봉 감독이 ‘돌비 애트모스로 해달라’고 하면서 난감해졌다. 전후좌우 위아래 360도로 소리가 관객을 휘감는 ‘돌비 애트모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주로 쓴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기생충’에 돌비는 과하다고 말렸다”며 “봉 감독이 ‘지하실에 숨어 사는 가족이 박 사장 식구 발걸음을 마루 아래에서 조마조마하게 듣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고 해 고민에 들어갔다”고 했다. 특히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듯한 수직적 느낌의 사운드가 관건이었다. 최 대표는 지하 식구들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녹음한 소리는 모두 지우고 발걸음부터 새로 작업해 넣었다. 촬영 세트장은 목재(木材)지만 설정은 부잣집이니 대리석 바닥에 닿는 발소리가 나야 했다. 2020년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최 대표도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이 됐다.
직접 녹음도 한다. 영화 ‘부산행’(2016)에서 좀비 떼가 사람에게 달려들 때 내는 ‘우어우어 꾸르륵 끽끽 꽉꽉’ 소리는 최 대표 목소리다. 어떤 소리가 믹싱하기에 좋은지 알고 있어 소리도 잘 낸다. 괴수(크리처) 소리는 의외로 까다롭다. 울부짖기만 해선 안 되고 정서가 담겨야 한다. ‘괴물’(2006)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괴물의 단말마 비명에 메시지를 넣어달라는 봉 감독의 주문 역시 고민이었다. 봉 감독은 ‘나 억울해, 너희들 어리석음 때문에 난 희생됐어’라고 느끼게 해달라고 했다. 최 대표는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바다사자 소리에 배우 오달수의 목소리를 얹어 새 소리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옥자’(2017) 때는 상상 동물인 옥자가 토라지는 듯한 장면에 뉴질랜드 돼지와 하마, 코뿔소 소리를 섞고 여배우 목소리를 가미해 내성적이고 소심한 옥자의 성격을 드러냈다.
최 대표는 “이제 한국 영화 사운드는 할리우드가 참고해야 할 수준이 됐다”며 “앞으로도 쉬지 않고 조련해 한 차원 높은 사운드 비법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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