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손쉬운 팬덤 버리고 聯政 택한 독일
지난 13일(현지 시각) 독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의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기금 전용을 이유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지 4주 만이다.
독일 매체들은 예산안 합의가 빠른 시간 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립 정부를 이루고 있는 각 정당이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은 사회복지 확대를, 자유민주당은 시장주의를, 녹색당은 기후 문제 해결을 내세운다. 그간 가족 수당, 에너지 정책 등 주요 사안마다 각 정당은 팽팽히 맞섰고, 매번 연정 붕괴 위기라는 말이 따라 나왔다. 사민당(빨강), 자민당(노랑), 녹색당(초록)의 정당을 상징하는 색 덕분에 붙은 ‘신호등 연정’이라는 별명은 엇갈린 신호와 정책 혼선을 비꼬는 표현으로도 쓰였다.
그럼에도 한 달 만에 합의안이 나왔다. 물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협상이 200시간가량 이어졌고 밤샘 회의도 열렸다. 올라프 숄츠 총리를 포함한 관계자들이 총리실 건물 8층의 총리 관저에 모여 끼니를 때우며 회의를 이어가는 모습도 독일 언론에 포착됐다. 이렇게 내놓은 합의안에는 서로 타협점을 찾느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에 해당하는 시민 소득 인상 정책은 지켜내면서, 직업교육 참여만으로 수당을 주는 ‘시민 수당 보너스’는 폐지했다. 전기차 보조금을 내년 조기 중단하는데, 대신 기후 보호를 위해 그간 농업용 경유 등에 적용된 면세 혜택을 폐지했다.
합의문을 읽으며 각 정당이 정치적 유불리를 먼저 따졌다면 협치가 불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추진하던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연정 탈퇴를 선언하거나 다른 당을 탓하며 악마화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사설에서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에 정부가 뭉쳤다’고 평가했다. 이미 신호등 연정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숄츠 총리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고, 최근 지방의회 선거 결과 세 당 모두 득표율이 하락했다. 전기료, 난방비 인상이 예상되는 정책이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경제 부담으로 인기를 잃을 게 뻔하지만 감수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팬덤 정치로 점철된 상황에서 정치적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정당이 있을까.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말까지 나온다. 무조건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뜻일 거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 조금 양보하고 타협하는 일이가능할 리 없다. 예산 합의안 발표 후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 기후부 장관(녹색당)은 인터뷰에서 “인기는 없지만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부담이 결정된 것”이라며 “우리(연정)는 이것을 함께 감당하고 있고 아무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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