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뉴욕의 한인 셰프’]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 중 유일한 미슐랭★… NYT “이 장르의 1등석” 격찬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23. 12.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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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꽃’의 김시준 셰프
미국 뉴욕의 한국식 스테이크하우스 레스토랑 ‘꽃(COTE)’의 김시준(왼쪽) 대표와 데이비드 심(한국명 심주영) 셰프가 소고기를 앞에 두고 포즈를 취했다. 교포인 심 셰프는 ‘꽃’ 오픈 때부터 계속 주방을 맡고 있다. /Gary He 제공

19세기부터 미국의 콜로라도나 텍사스, 네브래스카 등에서 기른 소들은 기차로 캔자스시티나 시카고까지 이동해 도축됐다. 뉴욕이 스테이크의 최대 소비 시장이기는 했지만 이동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시카고에서 스테이크 하우스가 많이 성업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고 레스토랑들은 당연히 자본이 몰리는 뉴욕에 생겨났다. 시카고와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의 차이는, 서울로 비교하자면 마장동과 청담동 고깃집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뉴욕 최초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자 ‘델모니코 스테이크’라는 메뉴를 탄생시킨 ‘델모니코(Delmonico’s)’,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스미스 앤드 월렌스키(Smith & Wollensky)’, 그리고 ‘킨스(Keen’s)’와 같은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들은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렇게 스테이크의 전통이 탄탄한 뉴욕 한복판에 ‘한국식 스테이크 하우스(Korean Steakhouse)’라는 새로운 장르의 레스토랑 ‘꽃(COTE)’이 있다. 대표는 김시준(41)이다. 13세 때 미국으로 이민, 네바다 주립대학교(UNLV)에서 접객 경영(Hospitality Management)을 전공했다. 졸업 후 라스베가스 MGM호텔에서 일을 했고, 2007년 뉴욕으로 와서 장 조지(Jean George) 그룹의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일과 외의 시간에 틈틈이 시간을 쪼개며 오랫동안 준비한 끝에 2013년 자신의 레스토랑 ‘피어라(Piora)’를 열어 미슐랭 별 하나를 받았고, 이후 2017년 ‘꽃’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들을 준비하면서 김시준 대표는 한식당의 위상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프랑스에는 레스토랑(Restaurant), 비스트로(Bistro), 브라세리(Brasserie) 등급이 있고 이탈리아 식당에도 리스토란테(Ristorante), 오스테리아(Osteria), 트라토리아(Trattoria), 이노테카(Inoteca) 등이 구분되어 있는데, 뉴욕의 한식당은 오랫동안 대중식당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식당 수준이 그러하니까 당연히 한식도 열등한 음식으로 취급되어 왔다. 뉴욕타임스 등의 매체에도 돌아가면서 여러 나라 음식을 소개할 때 한번 등장하거나, 가격이 저렴한 맛집으로 소개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비행기로 비유한다면 이코노미 할인석이었던 셈이다. 당시 한식당 주인들은 아무도 이코노미석 이외에는 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한식당의 퍼스트 클래스를 원했다.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장르를 생각하면서 기존 한국식 바비큐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고민했다. 꼭 필요한 것은 뉴욕 고급 레스토랑의 기준이 되는 훌륭한 와인 리스트였다. 이를 위해서 한국계 마스터 소믈리에인 미아(Mia Van de Water)와 와인 및 음료를 총괄하는 디렉터 빅토리아(Victoria James)를 고용, 어느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보다도 잘 구성한 와인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2017년 오픈하자마자 “스테이크 하우스의 퍼스트 클래스”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가 뒤따랐다. ‘꽃’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미슐랭 원 스타를 받은 곳이다. 뉴욕의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인 ‘피터 루거(Peter Lugar)’도 미슐랭을 잃어버린 지 몇 년 됐다. 그래서 현재 뉴욕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중 유일한 스테이크 하우스다. 2021년 문을 연 마이애미의 2호점도 개점 첫해에 미슐랭 별을 받았다.

‘꽃’의 코리안 스테이크와 내부 인테리어 모습. 분홍색 ‘꽃’이라는 한글 간판은 유명 디자인회사 펜타그램(Pentagram)이 디자인했다. /Gary He 제공

주방(BOH·Back of the House)에서 경력을 쌓은 한인 셰프들과 다르게 김 대표는 홀(FOH·Front of the House) 관리를 책임지던 경영자다. 항상 홀에서 테이블을 지켜보던 경험으로 손님이 원하는 걸 예측하고 챙겨주는 서비스가 몸에 익었다. 그러면서 음식과 메뉴 개발 못지않게 레스토랑을 유기적인 조직으로 인지, 체계적 경영과 시스템에 큰 비중을 둔다. 두 도시의 ‘꽃’과 새로운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위해서 인사 담당, 마케팅 담당, 재무 담당 등을 책임지는 본사 직원 십여 명이 까다로운 뉴욕의 법규, 소송, 회사 운영, 임금과 세금 등을 책임지고 있다.

김 대표는 레스토랑이 지역사회의 일부로서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봉사,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래서 본인의 레스토랑이 있는 매디슨 파크에서 해마다 ‘아시아의 맛(Taste of Asia)’을 주관한다. 아시아계 저소득층 어린이를 돕는 단체(ADEX)의 모금을 위한 행사다. 그리고 음식 나눔 단체인 ‘시티 하베스트(City Harvest)’에도 기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한식당 주인들이 상대적으로 인색했던 부분으로, 미래의 레스토랑 경영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행보다.

‘꽃’은 현재 뉴욕에서 예약하기 몹시 힘든 레스토랑 중 하나다. 매일 밤 옷을 잘 차려입은 유명인과 멋쟁이 뉴요커들이 한국식 불판 앞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다. 식사를 마친 후 고객들은 예외 없이 분홍색 ‘꽃’이라는 한글 사인(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펜타그램이 디자인했다)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김 대표는 싱가포르에 ‘꽃’을 또 하나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달 뉴욕에 ‘꼬꼬닭(Coqodag)’이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한국 바비큐를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한 경험이 한국식 ‘치킨’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지 기대되는 프로젝트다.

김 대표는 ‘피어라’를 운영하던 시절 ‘꽃’을 구상하면서 힘들 때면 간혹 내가 예전에 운영했던 레스토랑 ‘곳간’을 찾아왔다. 그러곤 경영자로서 사업의 수익성과 이루고 싶은 꿈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창의성과 열정, 그리고 영혼이 있는 레스토랑이 목표라고 하면서 숫자와 이상 두 가지를 이룰 수 있는 프로젝트가 ‘꽃’이라고 했다. 대화 중 내 손가락의 반창고를 보고는 일하다가 생긴 상처 아니냐고 묻더니 멍이 든 자기 손가락을 들어 보여줬다. 그러곤 사람들은 레스토랑 주인들을 우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궂은 일을 손수 해야 하는 직업 아니냐며 서로 동감하고 크게 웃었다. 얼마 전 ‘꽃’에서 김 대표를 만났을 때 예전 대화를 기억하느냐며 물었다. “이제 숫자와 이상을 모두 이루었는가?” 망설임 없이 그가 대답했다. “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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