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바흐 무반주 첼로 소나타

정두환 문화유목민 2023. 12.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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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문화유목민

창밖 바람이 차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올해 겨울이 유난히 많이 힘들다. 경기는 꽁꽁 얼어 있고, 주변에선 힘들다는 소리만 들려온다.

겨울은 늘 춥고 힘든 계절이다. 나무들은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차디찬 겨울바람과 씨름하고 있다. 혼자서 맞이하는 겨울바람이지만, 주변엔 같은 나무들이 맨몸으로 응원하며 같은 운명을 당당하게 맞서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젊은 날 아무도 없는 눈 덮인 하얀 산을 혼자서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모하다 못해 무지한 젊은 날이었다. 그냥 산이 좋았고, 혼자가 좋았다. 잘 갔다 올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다. 결과적으론 살아있으니 잘 갔다 온 것이지만,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 무모함이었고 객기였다. 겨울이 되면 가끔 떠오르는 젊은 날의 초상이다.

이런 겨울에 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즐겨 듣는다. 첼로의 중후한 소리도 좋지만, 무엇보다 혼자서 이렇게 풍부한 소리를 내는 음악이 있다는 것이 좋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평균율이라는 음악으로 세상에 승부를 던져 성공한 음악가이다. 바흐는 당대의 음악적 양식은 물론 그의 이전 시대의 음악 양식까지 모두 섭렵하여 내면으로 숙성시켜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 어법을 만들어 냈다. 결과물이 바로크 음악 형식의 완성이며, 음악의 아버지로 남게 된 것이다.

혼자일 때 우리는 힘들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은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에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기는 너무 힘든 일이다. 겨울이 힘든 이유는 세상이 혼자인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날씨도 추운데 나 혼자 같다는 생각이 외롭고 힘들게 만든다. 이러한 생각이 들면 다른 방향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혼자의 넉넉함과 풍성함을 느껴보자.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가 작곡될 당시에 첼로는 저음을 조금 더 풍성하게 보충해 주는 악기였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저음을 보강해 주는 악기로 여길 때, 첼로의 풍부한 저음에 매료된 바흐는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작곡했다. 처음에는 첼로를 위한 곡이 아닌 비올라 다감바의 명연주자 아벨과리니히케를 위해 작곡하였으나 현재는 ‘첼로 음악의 성서’로 자리매김하는 곡이 되었다.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혼자서 중후한 소리를 아주 넉넉하게 들려준다. 세상에 이렇게 고요함 속에 풍성함이 있다니…. 바흐의 첼로 음악은 혼자서 세상과 노래하는 넉넉한 자유로움을 들려준다.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혼자만의 텅 빈 자유를…. 창밖엔 찬바람 소리가 세찬데 방안은 첼로가 들려주는 바흐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바흐 음악을 세상에 다시금 빛을 보게 한 사람은 파블로 카잘스(1876~1973)다. 카잘스는 연습곡이던 바흐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다듬고 다듬어 첼로의 구약성서로 만들어냈다. 그러니 세상은 혼자 같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첼로 연주자 카잘스는 그 자신 또한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였다. 결국 최고의 작품을 알아본 이 또한 최고의 연주자였다. 자신의 음악 세계를 충분히 익힐 수 있는 혼자의 시간, 이러한 것이 어디 음악뿐일까! 세상살이도 같을 것이다. 자신을 충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딴생각하는 사이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겨울이 깊어져 가면 밝은 봄 또한 가까워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 우리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로 조급해한다. 올해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세상은 오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다. 아니 내일이 영원히 안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깊으면 깊을수록 나무들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져 간다. 겨울이 깊을수록 혼자의 시간이 깊어져 나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올해가 가기 전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들으면서 선인들의 지혜를 되새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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