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서울의 봄’ 정우성
- ‘비트’부터 함께한 김성수 감독
- 캐스팅 때 연락올 거라 믿었죠
- 완강한 요청에 이태신 役 수락
- 실제 인물과 캐릭터 달라 진땀
- 황정민과의 대척점 연기 부담
- 몰입 위해 대화도 자제했어요
- 역경속 책임 다하는 이들 응원
- 주말 ‘1000만 관객’ 돌파 전망
데뷔 30년 차를 맞이한 정우성에게 올해는 특별한 의미가 있겠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이래 수많은 흥행작을 내놓았지만 아직 1000만 관객을 돌파하진 못했다. 그런데 지난달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으로 드디어 1000만 배우에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이후 겨울 개봉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서울의 봄’은 지난 18일 9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이번 주말 즈음 1000만 관객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의 봄’은 영화 ‘비트’(1997)로 자신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김성수 감독과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아수라’(2016)에 이어 다섯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여서 정우성에게는 더욱 뜻깊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김 감독님이 ‘서울의 봄’으로 큰 호응을 얻고 기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기분 좋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의 주축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주도하여 일으킨 군사 반란을 소재로,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신군부 세력의 책동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 9시간을 그렸다. 영화에서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했으며, 정우성은 신군부 반란 세력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맡았다. 이태신을 연기하면서 인물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던 정우성에게서 ‘서울의 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 이태신이 되다
김 감독과는 아주 친한 사이고, 평소에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기 때문에 정우성은 김 감독이 ‘서울의 봄’을 연출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서울의 봄’의 캐스팅이 돌아가는 것을 들어보니 언젠가 저에게 전화가 오겠다는 예상은 했다”며 웃었다. 전두광 역은 이미 황정민이 맡기로 한 상태에서 김 감독은 가장 신뢰하는 배우 정우성에게 연락한 것이다. 정우성은 “뭐, 김 감독님이 하자고 하면 마음이 50%는 넘어간 상태가 된다”며 자신 또한 가장 신뢰하는 감독이 김 감독임을 밝혔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덥석 출연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당시가 절친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헌트’ 촬영을 마쳤을 때였는데, ‘헌트’의 국정원 요원과 ‘서울의 봄’ 군인 역이 다른 캐릭터이긴 하지만 어떤 대척점에 선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관객이 볼 때는 비슷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우성은 “그래서 일단 ‘좋은 배우들 많은데 다른 배우 찾으시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는데 씨알도 안 먹히더라. 오히려 ‘네가 안 하면 영화를 확 엎겠다’고 하시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서울의 봄’의 출연을 결정하고 나니 이태신 역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가 걱정됐다.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태신 역은 실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성격도 다르고, 사건의 성격도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님이 이태신은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허구적 인물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12· 12 군사반란이라는 사건 무대 위에서 이태신 캐릭터를 만들 때는 모든 것을 다 배척해야 했다. 처음에는 막연했다”고 이태신 캐릭터의 구축이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정우성은 군사반란이 벌어졌을 때 전두광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감정적이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불같은 무리라고 봤다. 그들을 대하는 이태신은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군인이라는 본분을 지키기 위해 이성적 사고와 차분함 같은 물 같은 모습이 보이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역할을 진심을 다해 준비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현장에 임했던 배우 정우성의 모습이 군인정신에 투철하고, 책임감이 강한 이태신에게 투영됐다.
이태신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반란군의 서울 진출을 막기 위해 수도권 부대들의 지휘관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부대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이 연기를 ‘앵벌이 연기’라고 칭하는 정우성은 “이태신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사람이다. 답답해서 화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계속 외면당하고 상황은 더 안 좋은 쪽으로 내몰리지만 자신의 직위와 책임감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돌파할지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이태신을 봐도 답답했겠다고 생각을 할 정도인데, 관객분들도 ‘혼자 고군분투하네’라고 평가해 주시는 것 같다”며 “‘이태신이 멋지다’라고 표현해 주시는데, 사실 이태신이 멋있어야 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직 본분과 책임을 다하려는 이태신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 전두광의 황정민을 만나다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의 숙제 중 하나는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이었다. 전두광 자체가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강한 캐릭터고, ‘신세계’, ‘아수라’, ‘수리남’에서 봤듯 황정민이 악역을 연기할 때 더욱 존재감을 보이기에 그와 상대편으로 연기한다는 것은 부담이었다. 정우성은 “대본을 읽으며 상상하게 되는데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대해야 하기 때문에 ‘타 죽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담이 엄청났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어 “하지만 또 정민이 형이 만드는 전두광의 대척점에 있을 때 받는 에너지가 있다. 그걸 잘 해냈을 때 대립감이 얼마나 쫀쫀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마 극 중 이태신과 전두광이 육군본부 복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쫀쫀함의 예가 아닐까 싶다. 정우성은 이 장면에 대해 “촬영장에서는 각자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을 섞지 않게 됐다. 또 리허설 때도 진짜 자기 연기를 안 하고, 이런 느낌으로 오는구나를 봤다. 그리고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다 잊어버리고 이태신이 돼서 연기했다”며 “테이크가 끝나면 상대방의 표정에서 느껴진다. 그 장면에서 정민 형이 이태신을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고 황정민과 함께한 연기를 즐거워했다.
정우성이 육체적으로 고군분투한 장면도 있다. 후반부에 100여 명의 수도경비사령부 군인들과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돌진하다 대치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무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7월 촬영했는데, 정우성은 높은 바리케이드와 위험한 철조망을 계속 넘어 전두광에게 다가가야 했다. 그는 “김 감독님이 농담으로 ‘우성이 키 크잖아. 잘 넘어가겠지 뭐. 그래서 만들었어’라고 하시더라”라며 웃었다. 이어 “철조망 장면 촬영에서는 장갑을 꼈어도 가시에 찔리고, 옷도 찢겼다. 이태신이라는 사람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장애물이 있어도 느리지만 꿋꿋하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넘어져도 일어나면서 말이다. 이태신이라는 사람의 성격이 그렇게 구현된 것 같다”라고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지난 30년간 쉼 없이 꾸준히 영화·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동했다. 또 최근에는 감독·제작자로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꾸준함과 일에 대한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정우성은 “최근 드라마 촬영을 다 마치니까 지치더라.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사실은 작품에서 얻은 피로감을 다음 작품을 하며 푸는 것 같아서 이 직업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제가 평가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가치는 굉장히 크고, 흡족하고, 감사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워커홀릭의 모습을 보였다.
정우성은 “이태신은 자기 본분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는 눈치도 보고 힘이 센 쪽에 붙으려고 한다. 그래서 힘든 상황에서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이태신에게 공감하고,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힘들지만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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