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양육비, 법은 멀고 현실은 가혹하다
지난 11월 법원에서 대낮 추격전이 펼쳐졌다. 양육비 4천만원을 미지급한 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법원 출입문 앞에 나선 순간이었다. 취재진이 모여들며 질문을 하려 하자 남성은 뒤따르는 카메라를 뒤로한 채 전력질주하더니 성인 허리 높이의 법원 담장을 훌쩍 뛰어넘으며 도망친 것이다.
필자는 이 남성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지난 10월 결심공판을 마친 후, 방송국 카메라를 향해 “간이라도 팔아서 애들하게 해주고 싶어요. 못 해주는 제 심정을 아시냐고...”라며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성형외과의 ‘비포 앤 애프터’를 보듯 판결 전후로 달라진 남성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든 중형을 피하고자 낮은 자세를 보이다가도 막상 목적을 달성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책임을 회피하는 파렴치한의 전형이다.
특히 양육비를 줄수 없는 현실이 괴롭다는 변명은 악어의 눈물을 연상케 한다. 법원 담장을 단번에 뛰어넘는 정도의 체력이면 일을 해서 줄 수 있음에도 뭐가 그리 억울한지 의문이다. 이는 마치 스스로를 양육비 독촉에 고통받는 선량한 피해자인 것처럼 포장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스라이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2017년 남성의 외도로 이혼한 뒤 식당 일을 하며 홀로 세 자녀를 양육해온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한 건 역설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의 공(?)이 크다. 양육비 역시 금전 문제이기에 굳이 분류하자면 횡령·배임과 같은 재산범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액수의 돈을 횡령·배임했다면 실형 선고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것은 물론 ‘낳아 놓고 책임지지 않는’ 나쁜 부모에 대한 것이기에 더욱 엄중한 처벌이 필요함에도, 현실은 정반대인 것이다.
양육비 수천만원을 주지 않아도 실형은 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시그널이 세상에 전파됐다. 일부의 문제겠지만 악질적인 양육비 미지급자의 세계관에서는 ‘이대로라면 실형을 받지 않을까’ 하는 가장 큰 고민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양육비 미지급자를 고소하기 위해서는 감치명령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는 걸 고려한다면 사실상 형사고소의 실효성은 미약해졌다. 그래서인지 지난 2021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제재조치를 받은 양육비 미지급자 772명 중 실제 양육비를 지급한 사람이 고작 69명이라는 여성가족부 통계는 뼈아프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의 역할이 절실한 지금 ‘법은 멀고 현실은 가혹하다’고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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