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마음까지 얼어붙는 연말… 詩에 기대어 손 잡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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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이런 벌써 연말이다.
타인도 자신처럼 나약함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만드는 건 그 어떤 첨단 기술의 힘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기승을 부리는 북극 한파 탓인지 몸은 얼어붙고 유난히 마음까지 추운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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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뜨는 해도 다 보고/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죽을 때가 지났는데도/나는 살아 있지만/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천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
나눔을 실천하며 무애(無礙)의 삶을 살았던 ‘선(禪) 시조’의 대가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1932∼2018)의 ‘아득한 성자’다. 만해축전을 계기로 무산 스님과 오래 인연을 맺었던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산문집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푸른사상)에서 스님을 ‘내 마음속의 큰 산’에 비유했다. 스님 앞에서 시 ‘아득한 성자’를 평론가로서 분석하자 스님은 그냥 듣더니 이내 묻더란다. “권 박사는 ‘하루살이’를 아느냐?” 시를 읽다 보면 ‘하루살이는 하루에도 제 할 일을 다 하는데, 나는 하루라도 제대로 살았던가, 올해는 어땠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무산 스님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이 1918년 발간(1∼3호)했던 잡지 ‘유심(惟心)’을 2001∼2015년 시 전문지로 다시 발간했다.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올 9월 ‘유심’을 재창간했고, 이달 1일 2호를 냈다. 시는 둘째 치고 활자 매체 자체의 인기가 시들한 요즘 같은 시대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호 권두에는 최근 세상을 뜬 김남조 시인(1927∼2023)에 대한 문현미 시인(백석대 교수)의 추모 글이 실렸다. 문 시인은 “자신의 고독과 추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도 그러함을 알아서 같이 울어주는 사람, 그가 진정한 시인이며, 바로 김남조 선생님이시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고(故) 김 시인의 시 ‘시인’을 인용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춥고 무섭고 외로웠다/자라면서/다른 사람들도/춥고 무섭고 외로워함을 알았다/멈추지 않는 눈물처럼/그에게/말과 글이 솟아났다”
기술적으로는 인류사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만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고립돼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타인도 자신처럼 나약함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만드는 건 그 어떤 첨단 기술의 힘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기승을 부리는 북극 한파 탓인지 몸은 얼어붙고 유난히 마음까지 추운 연말이다. 시의 힘에 기대어 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등의 시집을 낸 박준 시인은 유심 2호에 게재한 산문 ‘고요의 힘’에서 이렇게 썼다. “시에 기댈 때만 말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시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삶에 기대는 것이다. 만약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해 말보다 더 긴 침묵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향하는 혼잣말도 거두게 될 것이다”라고.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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