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사랑의 집 짓기’ 1년 1개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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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앞두고 지난 주말 반가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개신교 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펴낸 ‘한국교회, 사랑의 집 짓기’ 백서입니다. ‘사랑의 집 짓기’는 지난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 54가구에 한국 교회가 집을 지어 선물한 프로젝트입니다. 기사로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번에 359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사랑의 집 짓기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를 꼼꼼히 정리한 백서가 나온 것입니다. 백서에는 ‘선의(善意)’ ‘나눔’ ‘의견 조율’ ‘갈등 조정’ 등 우리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사항이 다 녹아있었습니다.
한교총의 ‘사랑의 집 짓기’ 캠페인은 최근 개신교계가 사회적 재난에 공동으로 대처한 모범 사례입니다. 비근한 사례는 16년 전인 2007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고는 삼성중공업의 대형 크레인을 인천에서 거제로 예인해 가던 중 태안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면서 기름 1만 2547Kℓ가 유출됐습니다. 사상 최대의 해양 오염 사고였지요. 이때 한국 개신교계는 대대적인 봉사에 나섰습니다. 교회 교인들이 단체로 태안을 찾아 흡착포를 들고 해안을 오염시킨 기름을 제거했지요. 당시 봉사에 나선 개신교인이 연인원 약 100만명에 육박한다고 개신교계는 보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 사진을 보면 해안가를 가득 메운 흰 옷 차림 행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고는 개신교계가 연합한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이 출범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도 개신교계는 당시 한마음이 돼 봉사활동을 벌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한국 교회가 한마음으로 봉사에 나서 가시적 성과를 낸 경우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재민들에게 집을 지어준 것도 대단하지만 그 과정을 백서로 펴낸 것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입니다.
이번에 백서를 펴보면서 그 꼼꼼함에 놀랐습니다. 백서는 ‘1부. 울진 산불과 한국교회의 대응’ ‘2부. 사랑의 집 짓기 사업 추진’ ‘3부. 모금과 건축 대상자 선정’ ‘4부. 시공과 민원 그리고 준공’ ‘5부. 공사의 완료’ 순으로 정리됐습니다.
2022년 3월 4일 오전 11시 14분.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시작된 울진산불은 무려 9일 동안 계속 타오르다가 3월 13일 오전 9시에야 주불이 진화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213시간 43분만에 진화된 이 산불로 산림 2만여 핵타르가 불에 탔고 주택 369채를 비롯한 총 693개 시설이 잿더미가 되고 33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많은 국민이 TV로 산불 상황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지요.
당시 류영모 대표회장 등 한교총 대표단이 현장을 찾은 것은 3월 15일이었습니다. 발화지점과 지역 교회를 돌아보고 귀경하는 차 안에서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류 목사는 “35개 교단이 한 채씩만 담당해도 10%는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답니다. 3월 23일 열린 상임회장회의에서도 교단들은 뜻을 모았지요.
백서에는 이후 추진위원회 구성, 사업계획서 작성, 세부 실행 계획 수립 등의 과정이 낱낱이 적혀 있습니다. 백서에는 시공업체가 제출한 견적서와 표준도급계약서도 실려 있습니다. 사업 기획과 모금은 한교총이 담당하고, 대상자 선정 및 건축주들과의 의견 조율은 울진군기독교연합회(울기연)이 맡는 등 역할도 분담했습니다. 당시 울기연 서기 황성욱 목사는 “솔직히 이 큰 일을 이뤄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했답니다. 산불 피해 이재민을 위한 집을 개신교 단체가 지어준 사례는 거의 없었으니 그런 우려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모금과 건축보다 대상자 선정이 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는 구절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한교총은 이 문제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울기연에 요청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6월 9일에는 ‘견본주택 개관 감사예배’가 열렸습니다. 견본주택은 12평을 기본으로 하되 입주할 가구의 형편에 따라 16평, 20평, 24평까지 실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견본주택을 방문한 이재민들의 신청도 받았습니다. 접수 완료 결과 모두 55가구가 신청했고, 한교총은 “신청자 전원에게 집을 제공하자”고 결론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54채를 짓게 되었습니다.
첫 입주식은 9월 16일 울진군 북면 덕구리의 네 가구에서 열렸습니다.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1호 주택 입주를 앞두고 입주민의 요구를 반영해 바닥 등을 재시공했답니다. 소문이 나자 다른 입주예정자들도 이런 저런 민원을 제기했고요. 주택단지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울진군 각지에 흩어진 주택을 하나씩 재시공해야 하니 공사기간도 연장됐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입주민의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예산은 증액됐고요. 주민설명회를 열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민원사항도 해소했습니다. 그렇게 12월에 들어서 공사 현장은 정상을 찾았답니다. 재시공에 맞먹는 공사를 한 주택들도 완공됐고요. 백서에는 1호부터 54호까지 주택의 도면과 사진이 모두 실려있습니다. 해를 넘겨 2023년 4월 14일 드디어 울진제일교회에서 54채 모두의 완공을 기념하는 감사예배가 열렸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지 1년 1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한교총 류영모 대표회장 당시에 시작해 이영훈 대표회장으로 이어지며 이룬 업적입니다.
백서 뒷부분엔 2022년 3월 15일 대표회장단의 첫 현지 방문부터 2023년 12월 7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교총 정기총회에서 백서 출서 보고까지 모든 추진 과정이 낱낱이 적혀있습니다. 또 결산 내역도 항목별로 다 적혀 있고, 교단별 지원액수 등도 투명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마지막엔 언론보도 스크랩이 정리돼 있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한 류영모 목사는 ‘기념사’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위기의 세상을 향해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이 백서의 내용은 한국교회의 어떠한 자랑도 아니요, 어떤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많은 이웃이 위기 속에서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때에 한국교회가 사회와 이웃의 곁을 지키고 함께하고 있다는 기록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가 앞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속 실천하겠다는 고백이며, 세상의 희망이 되고 사회를 치유하고 이웃을 위로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입니다.”
‘사랑의 집 짓기’를 마무리한 이영훈 목사는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이웃을 향한 한국교회 사랑의 실천을 기억하고 기록한 ‘역사’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 나가겠다는 거룩한 선언입니다. 이 백서를 통해 먼저 한국교회가 과거에 행한 일들을 보람으로 삼고 다음으로는 새롭게 추진할 유사한 사업의 참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개신교계는 이 백서를 통해 좋은 나침반을 얻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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