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효과는 10년 뒤, 입시 부작용은 당장 눈앞에 [수요논점/서정보]
● OECD 평균과의 비교
2000년 의약분업 추진 이후 정부는 의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2004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3409명에서 3058명으로 줄였다. 이후 지금까지 동결된 상태다. 의대 증원 논의의 출발점은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라는 두 키워드가 설명해준다. 국민들이 의사 부족을 체감하는 현실에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내놓은 의사 인력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58% 수준이다. 2025학년도부터 전국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1500명 늘려 매년 4558명을 뽑는다면 2035년 진료 의사는 2.99명이 된다. 그런데 OECD 31개 회원국의 경우 연평균 의사 증가율을 유지한다면 평균 4.45명이 된다. 1500명씩 늘려도 OECD 평균의 67.2%에 그친다는 것이다.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수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기준 10만 명당 7.26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평균은 13.5명. 독일은 12.4명인데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5000명 늘릴 계획이다.
OECD 평균과의 비교법은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맹점도 있다. 각국의 의료 환경이 달라 의사 수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OECD 내 동유럽 국가의 경우 국가 공무원인 의사가 대부분이어서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과 미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6명 수준이어서 우리와 차이가 크지는 않다.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수도 미국(10만 명당 8.54명), 일본(7.32명)과 비슷하다. 의협의 의료정책연구소는 인구 감소 등으로 2047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5.87명으로 OECD 평균 5.82명을 넘어선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OECD 평균과의 단순한 숫자 비교는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하다는 근거로 삼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의 경우 미국 일본 유럽 등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늘려 왔고 우리처럼 완전 동결한 것과는 다르다. 또 미국 등은 합법화된 PA간호사 등이 의사 일을 일부 대신하고 있어 한국의 의사 수가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 의사 수입으로 본 공급 부족
건강보험 진료비나 이용률, 인구 추계 등을 통해 적절한 의사 규모와 비교하는 연구도 많다. 대부분의 결론은 의사 부족이다. 현재 의대 정원을 유지하면 2050년에 2만2000∼2만8000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050년 이전까지 의사 부족이 이어지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 탓에 이후에는 의사 수가 남아돈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박 교수는 5년간 한시적으로 정원 500명을 늘린 뒤 선진국처럼 의료 수요와 의사 수를 비교 검토하는 위원단 등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의사 소득 수준으로 의사 부족을 가늠하기도 한다. OECD ‘2023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 봉직의(페이 닥터) 수입은 2020년 19만여 달러로 10년 새 42% 증가했다. 구매력과 환율까지 감안해도 OECD 최고 수준이다. 국가 내부에서 비교해도 우리나라 의사 소득은 전체 근로자 평균 소득의 4.6배로 OECD 평균(2.9배)을 훌쩍 뛰어넘는다. 의사 소득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면 분명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 이공계 이탈과 N수생 양산
의대 증원을 한다면 의료계에만 파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대학 입시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입시 업계에선 최상위권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공계 이탈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입시학원에는 의대 진학을 위해 재학생과 N수생, 직장인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입시업계에서는 정원 1000명이 늘면 의대 준비생은 최소 6000명 이상 늘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뜩이나 심각한 의대 블랙홀이 더 심화되면 이공계 인재 부족과 대학 교육의 위기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대 증원을 통한 의사 증가 효과는 10년 뒤에 보는데 입시 부작용은 지금 바로 나타난다는 얘기가 나온다. 급격한 증원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매년 정원의 5%씩 늘려 2030년에 1000명이 증원되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 필수·지역의료 과연 나아질까
가장 큰 논란거리는 의사 수가 많아지면 과연 시급한 필수 및 지방의료 공백 사태가 해소될 수 있는지 여부다. 의대생을 늘리면 심각한 전공의 미달 사태를 빚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에도 지원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의대 졸업생들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원하는 전공 분야를 가려 하고 있고, 졸업 후 일반의로 개업하는 추세가 확대되면서 낙수효과가 별로 없을 것으로 본다. 최근 5년 내 개업한 일반의의 80% 이상이 피부과 진료를 내걸었다.
더 심각한 것은 필수의료 분야의 기존 의사까지 대학병원을 떠나 개원하면서 전공과 무관하게 편하게 돈을 버는 분야로 바꾼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혈관 흉부외과 의사가 하지정맥류나 신장 투석 등을 하는 병원을 차리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의 경우 서울 강남 성형외과를 돌면서 마취를 하는 것이 고난도 중증환자들의 마취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대학교수보다 월 기준 3, 4배를 더 벌 수 있다. 이로 인해 서울 대형병원은 물론이고 경기 부산 충청권 대학병원 등에서 의사들의 줄사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진료가 급성장하면서 빚어진 보상 체계의 왜곡 탓이라고 지적한다. 건강보험 위주의 필수의료는 수가가 오르지 않으면서 수입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고된 야근과 비상 상황 등 힘든 여건이 계속되니까 이탈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건강보험 환자 진료 시 비급여 진료를 금지하거나 독일처럼 진료 과목당 동네병원 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와 필수의료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의대 증원을 해도 필수의료 분야로 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가피한 의료 사고로 인한 법적 보호도 아직 미흡하다. 의사 1000명당 연간 기소 건수는 우리나라가 2.58명으로 일본의 0.01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역 의료도 마찬가지다. 지역 의대의 전공의들은 절반가량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 대학병원 응급실이나 상급병원도 진료 과목을 매일 운영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의사난이 심각하다. 고통 받는 것은 중증 응급 상황에서 의사를 찾아 수백 km를 달려가야 하는 지역 주민들이다. 열악한 지역의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증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대 증원분의 3분의 2를 지역 국립대 의대에 주고, 지역 인재 선발 위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해야 지역 의료의 숨통이 그나마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의협은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하다가 철회한 뒤 의협과 이른바 ‘9·4합의’를 맺었다. 의대 증원 문제는 정부와 의협이 참가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한 것이 골자다. 이를 근거로 의협은 현재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이 9·4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협은 협의체 논의를 별로 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의대 증원 문제는 단순한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건강보험 수가, 의료보상 체계, 지역의료 균형은 물론이고 입시 영향까지 함께 풀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의대 증원 문제는 그간 국내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 병폐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의협은 이를 위해서라도 논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정부도 의대 증원 목표에만 매달려 다른 문제들을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된다. 또 의사 외에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과 소비자인 환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을 필요가 있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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