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줄이려면…이웃끼리 함께 사는 동네공동체 되살려야”[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사회적 고립과 이에 따른 고독사에 대해 현장을 중심으로 연구해왔다. 2010년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남성 노인의 노동 생애경로와 일의 의미’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4년부터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2021년 고독사 위험 현황 연구’ ‘지속가능한 돌봄SOS센터 사업 발전방안 연구’ ‘소규모 요양시설 발전방안 연구’ 등이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고독사 실태조사 설계연구’에 참여했다. 사각지대 발굴 및 고독사 예방 관련 다양한 교육활동을 병행 중이다.
개인 파편화로 늘어나는 고독사
국가복지 확대도 중요하겠지만
개인과 지역사회 연결망이 시급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이 ‘나는 고독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답했다. “가족·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되는 ‘고독사’가 남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이 2022년 34.5%로 높아진 데다 혼자 밥 먹고(혼밥), 혼자 술 마시고(혼술), 혼자 여행하니(혼행) 죽음도 홀로 맞는 게 당연한 것일까. 이 같은 현상의 기저에는 파편화되는 공동체와 고립되고 소외되는 개인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고독사에 대해 연구해온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을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단절된 도시 공간에서 이웃끼리 연결되는 방식을 잊어버리며 개인들의 안전망이 되어줄 동네 공동체가 희미해졌다”면서 “국가복지도 중요하지만 이웃끼리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산다’는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 ‘고독사’는 인류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연사회론’이 일본에 등장한 게 1970년대였는데, 한국도 올해 고독사 고위험군이 152만명으로 진단될 정도로 심각해지자 2027년까지 20%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죠. 가족해체가 심화되고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죽음의 형태로서 고독사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걸로 봐야 할지요.
“1인 가구 집단이 워낙 구성이 다양하고 이질성이 높기 때문에 ‘혼자 살면 고독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짓는 건 무리입니다. 1인 가구가 홀로 죽는 것은 대체로 ‘독거사’로 불러야 합니다. 반면 ‘고독사’는 혼자 죽음을 맞은 뒤 일정 기간 이후에 발견된다는 점에서 독거사와 다르다고 봐야죠.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완전히 단절된 채 혼자 살았던 ‘고독생’의 결과로서의 죽음이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고독사를 자신의 미래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만큼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단절감과 고립감이 깊다는 뜻으로 봐야겠지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런 막막함이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요.”
- 고독사는 1인 가구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고요.
“실질 1인 가구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치매환자나 장애 가족을 돌보던 이가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한 경우 어느 곳에도 알리지 못한 채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웃들은 ‘그 집에 그런 사람이 사는 줄 몰랐다’고들 말하고요. 최근 뉴스에 많이 나오는 사례이죠. 고독사는 육체적인 죽음 이전의 사회적 단절부터 죽음 이후에 방치된 상태까지 포괄하는 ‘사회적 죽음’이자 현재의 문제를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유효합니다.”
- 고독사는 5년간 8.8% 증가 추세인 걸로 2021년 기준 집계됩니다. 어느 세대가 가장 심각합니까.
“고독사가 가장 많은 연령층은 중장년 남성입니다. 고시원·다가구 등에 거주하는 중에 고립상태로 발견돼서 방문해보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상해 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노인들의 경우에는 공적 지원망을 통해 도움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입니다만, 40~50대 남성들은 ‘내가 이 정도로 망가져서 이웃들과 국가 복지시스템에 의존하는 상태가 됐다’는 낙인감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한국 성인 남성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술값 내는 ‘주는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감이 있을 뿐,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거든요. 세상을 떠난 이들의 거처에서는 건강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월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도움받지 않고 살아보려 애썼던 흔적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이 재기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 사회에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21년 고독사 위험 현황연구> 사례의 A씨는 1970년대 초반생의 남성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한 사업이 실패하고 이혼한 뒤 가족과 연락을 끊은 경우였다. 창고관리직으로 일하던 그는 건강 악화로 재기하지 못한 채 기초수급자가 됐고, 사망한 지 10일쯤 뒤에 발견됐다. 집주인에게는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줄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남긴 채였다. 지역사회와 교류하며 삶의 마지막을 보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인 사례다.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 B씨의 경우 30여년간 의류공장에서 옷 다리는 일을 하던 노동자였다.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집에 고립된 이후 쓰레기가 쌓일 정도로 자기방임을 하다가 월세가 밀린 이후에야 사망 사실이 인지된 경우였다. 동 주민센터가 개입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폐 끼치기 싫다’ 지원 거부 경향
자존감 낮거나 경제약자가 강해
이웃에 곁 내주는 상호작용 퇴색
- 어쩌면 현대사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미덕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하류지향>에서 “자기결정·자기책임은 벌거벗은 개인으로 고립무원인 사회에 맞서는 것이다. 리스크를 100% 안는 대신 획득한 이익 역시 모두 독점하겠다고 선언하는 주체가 ‘늠름하면서 유연한 개인’으로 칭찬받는 구조”인데 사실 이 같은 개인은 ‘자립한 인간’이 아니라 ‘고립된 인간’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강자밖에 없는데, 사실 사회적 강자들은 다들 상부상조·상호지원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고도 분석했죠.
“말씀대로, 우리는 서로 의존해야 되는 존재인데도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사회적인 역할을 내면화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일 수 있지만, 고립된 분들마저 ‘나는 폐 끼치기 싫다’면서 지원받길 거부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한국뿐만이 아니라 영미권도 마찬가지인데, 자존감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안정적인 이들이 오히려 국가의 복지지원을 꺼리지 않고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 고독사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들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도시 공간의 속성에서 고독사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고시원이나 아파트나 한결같이 좁은 지역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효율성 중심으로 디자인됐을 뿐,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접촉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과거엔 동네 어귀의 평상이 그런 기능을 했어요. 사람들이 오가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경로당에서 어르신들끼리 만나고, 아파트 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끼리 접촉하는 정도가 고작이에요. 직장에 출퇴근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이웃들과 관계망을 좀처럼 만들지 못하고, 앞집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거의 알지 못해요. 그런 상태에서 개인이 실직이나 질병 같은 위기로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되면 지역사회는 나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마을도서관서 운영 ‘수다방’처럼
돌봄 공동체의 대안적인 시도가
시민사회의 자생적 활성화 첩경
-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예의 바른 무관심’이 이웃 관계의 기본값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입니다.
“이웃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지나치다 못해 서로 곁을 안 내주고 상호작용을 잊어버리고 있어요. 저도 어느 날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엘리베이터 같은 동네의 공유공간에서 이웃에게 ‘오늘 춥네요’ ‘몇 층 가시나요, 버튼 눌러드릴게요’ 이런 식으로 먼저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색하긴 하지만 그럼 이웃끼리 잠깐 얼굴이라도 보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실생활보다는 온라인상의 ‘취향 공동체’에서 서로 간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동네에서의 활동도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에서 취향이 동질적인 이들끼리 모여서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취향을 함께 소비하는 공동체는 내가 경제적, 신체적 어려움에 놓여서 더 이상 소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소속감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공동체가 아예 없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개인들의 안전망이 되어줄 공동체는 취약해지고 사회적 자본도 낮아졌다고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 그런 지적은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의 샹뱌오 소장이 말한 ‘주변의 상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원자적인 개인으로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큰 관심을 갖다가도 때로는 거대한 사건에 대해 갑자기 거창한 논평을 해댄다. 반면 이 둘의 중간 지점, 즉 자신의 부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현대인이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구축할 능력과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면서 “한 개인은 스스로 사람의 존엄성을 추구할 수 없다. 대신 부근을 세우고 이 관계를 재고하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도 조언했습니다.
“서울을 보면, 동네를 중심으로 돌봄 공동체를 만들려는 대안적인 시도들이 있어요. 지역을 돌보고 상호작용을 통해 나를 돌보게 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거죠. 일례로 마을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수다방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의제를 만들어서 강연이나 토론을 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죠. 동네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도 하고요. 분절된 사회에서 시민사회가 자생적으로 활성화되는 방법인 셈입니다.”
- 정리해보면, 파편화된 개인들이 ‘사회적 죽음’을 맞지 않도록 공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지역사회가 서로를 지지해주는 연결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이군요.
“주고받고 상호작용하는 게 인간의 삶이고 그렇게 상호작용할 때 ‘함께 산다’는 느낌을 받는 건데, 우리는 이 같은 경험이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가족과 개인의 파편화가 심화될수록 우리는 사람끼리 연결되는 본연의 감각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서비스, 원스톱으로 이뤄져야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해피인’은 성공적인 주민 공동체 활동 사례로 꼽힌다. 고시촌 공동체 활동을 하던 박보아 상담사는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사전 등록이나 상담 없이 무료로 밥을 나눴다. 2017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일평균 17명에 불과하던 이용자는 현재 수백명으로 늘어났다. 고립됐던 이용자들은 밥을 매개로 사회와 다시 연결됐고, 가게 앞에 붙은 일자리 정보들도 부담 없이 살피면서 재기의 기회를 얻는다. 공동체 활동이 커지면서 지역쉼터도 마련됐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고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업들이 그들이 사는 골목 안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서비스가 ‘원스톱 지원체계’로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국의 복지 지원은 여전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기초수급 신청, 심리지원, 파산 및 회생, 서민대출, 1인 가구 지원 등은 신청기관이 달라 분절돼 있고 절차도 복잡하다. 이용자는 어딜 가서 무엇을 신청해야 할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지원이 거절되는 경험이 누적되면 무기력에 빠져 자기방임에 이를 위험도 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복지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분절이 더 심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라면 누구든 동 주민센터에서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필요한 지원을 연결받을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 운용을 위해 충분한 인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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