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동성애 커플 축복 허용” 가톨릭의 변신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 이야기는 동성애를 보는 부정적 시각이 담겨 있다. 소돔은 동성애가 만연한 도시다. 이 도시 남자들은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성폭행까지 시도한다. 분노한 창조주가 불로 소돔을 멸망시켰다. 동성애는 지금도 기독교에서 허용할 수 없는 금기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동성애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다고 발표하며 이 금기에 스스로 도전했다. 반발을 부를 게 뻔한데도 이렇게 결단한 데는 교회가 세상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고민이 담겨 있다. 동성애 합법화 추세를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동성 결혼엔 반대한다는 원칙은 유지하되 동성애자도 하느님의 자녀이니 축복받을 수 있다는 절충적 입장을 취했다.
▶가톨릭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수용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가톨릭의 상징인 교황 자체가 시대에 따라 역할을 바꿔 왔다. 중세 많은 교황이 지금과 같은 종교적 자애의 상징이 아니라 엄혹한 군주였다. 16세기 교황 식스토 5세는 교황령에 사는 주민을 교수형으로 다스렸다. ‘교황은 교회 권력과 정치 권력에 더해 사치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이를 상징하는 삼중관을 머리에 쓰고 다닌 이도 있다. 지금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교황의 권세는 1870년 이탈리아 통일에 나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교황령을 빼앗으며 끝장났다.
▶이후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선 교황청이 주목한 것이 유럽을 강타한 산업혁명이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아동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신의 뜻에 반하는 악덕으로 규정하는 회칙 ‘노동 헌장’을 반포했다. ‘새로운 사회 경제 질서의 대헌장’으로 불리며 가톨릭교회가 세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로 꼽혔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는 더 나아가 “교회가 너무 덥다. 환기를 해야 한다”는 말로 교회가 세상 변화에 발맞출 것을 역설했다.
▶동성애자 축복에 이어 가톨릭교회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여성 사제 인정 여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세계 각국 주교를 뽑는 심사위원에 교황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3명을 임명하며 변화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 ‘장미의 이름’은 신의 진리는 고정불변이라고 믿는 성직자가 변화를 추구하는 다른 성직자들을 연쇄살인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윌리엄 수사는 범인을 잡은 뒤 “진리에 대한 집착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진리”라고 외친다. 가톨릭교회가 교리를 지키면서도 세상 변화를 슬기롭게 수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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