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다깃비 [손바닥문학상]

한겨레21 2023. 12. 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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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제15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작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모다깃비는 뭇매를 치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를 뜻한다.

1.

상생의 손 위에 겨우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 호미곶은 이미 대부분이 물에 잠긴 뒤였다. 발 디딘 조형물 밑으로 엄마와 걷던 둘레길이, 은지와 회를 먹던 화봉수산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걷다 정민이 합류하면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던 노상 포차들이, 권을 처음 만나 수줍게 인사했던 카페가 모조리 가라앉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렇게나 많은 것이.

바다에 당한 거야?

폭우가 와서? 바다가 넘쳐서? 해일, 그래. 해일이 와서? 아니지. 이 정도 해일을 일으키려면 지진이 났어야 할 텐데. 아니면 태풍이 왔던 걸까? 비가 충분해서? 아니, 인류의 탄생 이래 비와 구름과 바다는 늘 충분했어. 순환하는 거니까. 그런데 ‘너무’ 충분했던 적이 있었나.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바렌’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나는 차디찬 바닥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위는 온통 바다였다. 파도가 원을 그리듯 휘몰아쳤다. 원래 육지에 하나, 바다에 하나 있는 상생의 손 조각상은 이제 육지에 있던 것이 바다 쪽으로 떠밀려옴으로써 두 손바닥이 손날끼리 맞닿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권은 반대편 손 위에서 깨어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유일한 생존자였다.

2.

우리가 여기로 떠밀려 온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권은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고 나는 계속 정정해주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이 망한 거라니까. 집도 잃어버린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너랑 헤어져도 안 망하던 세상이 왜 갑자기 망하냐고.”

“나야 모르지.”

파도 소리를 제외하면 숨 막히는 적막만이 권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생명의 모든 소리가 증발해버린 고요였다. 높게 솟은 몇몇 건물마저 가까이 다가온 안개가 인기척을 전부 거둬간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광활한 바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처참히 망가진 건물과 차량 등의 잔해가 보였다. 마치 거인이 이 마을을 통째로 성냥갑에 넣은 다음 손으로 콱 쥐었다 내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당신이야말로 뭔가 들었을 거 아니야. 태풍이 올 거라든가 하는 소식 말이야. 계시자잖아. 아까 실은 아는 게 있으니까 짐 싸고 있었던 거 아니고?”

“실직한 지 좀 됐어. 이제 어디 소속도 아니야. 짐은 그래서 싼 거야. 여행이라도 가려고.”

권이 콧잔등을 한 번도 긁지 않고 모든 단어를 말했으므로 나는 그가 한 말이 모두 진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권은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혼서류 말이야. 우편으로 주고받으면 될 걸 괜히 직접 사인하러 오라고 했다.”

“됐어. 이런 일에 휘말릴 줄 알았나.”

계시자도 몰랐던 걸 일반인이 알 수는 없다. 날씨에 관해선 그들이 전문가니까, 적어도 이런 일을 일반인의 ‘조심’ 정도로는 예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권은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만한 영악함을 지니고 있지는 못했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목에 둘렀다. 먹빛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은 부분을 노려보는 동안, 멀리서 그르렁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3.

날씨를 채집하는 사람은 곳곳에 있었다. 말 그대로 어디에나.

‘바렌’ 전에는 반려구름이 유행이었다. 하늘에 뜬 구름을 그대로 축소한 듯한 반려구름을 데려다 집에 띄워놓은 인테리어 사진들이 SNS에 도배됐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반려구름은 매일같이 변하는 날씨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기능이 있었다. 구름 위로 조그만 인공 태양이 뜨거나, 구름 아래로 비가 내리거나, 번개가 치는 날도 있었다. 주인의 기분에 영향받는 것 같기도 했다. 주머니에 넣기도 용이해서 사람들은 어딜 가든 구름을 데려갔다. 털실 뭉치처럼 부드럽고, 쓰다듬을 수 있어서 좋고, 가랑비가 내리는 날엔 귓가에 대고 있으면 ASMR을 듣는 것처럼 잠이 잘 온다는 구매평이 이어졌다.

반려구름 다음엔 바렌이 유행했다. 그날의 날씨를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압축시킨, 바렌이 처음 시작된 곳은 하와이였다. 바렌도 날씨를 언제 어디서든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반려구름과 비슷했다. 그러나 특정 날짜와 구체적인 시간대를 그대로 옮겨, ‘기억의 재현’을 가능케 한 바렌은 일종의 혁신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와이키키나 카일루아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한 나머지, 거기서 본 바다와 그날의 날씨를 집까지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바렌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양분 삼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바닥에 조형물을 놓고 그 위에 투명한 덮개를 씌워 스노볼처럼 만든 바렌은, 뚜껑을 열면 사용자가 있는 곳이 어디든 그날의 풍경과 날씨를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공간 크기별로 바렌 크기가 달라졌으므로 적정 사용 공간에 대한 안내 가이드가 있었다. 또한 돌풍이나 폭우를 동반한 날로 바렌을 만들었을 때는 ‘개봉 시 주의’ 문구를 크게 써 붙여야 하는 것도 법적 의무로 지정됐다. 사용자가 최초 개봉 시 덮개를 너무 활짝 열어버린 바람에, 주택 전체가 물바다가 된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렌은 생일과 기념일 선물로도 제격이었다.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들은 블루오션인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배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 날씨를 채집했다. 처음에는 유명 관광지로 수요가 집중됐는데,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원산지를 속여 파는 곳도 허다했다. 프랑스 니스에서 공수한 햇살과 와인병을 넣어 만들었다던 바렌이 알고 보니 국내산 재료로 만들어져 소비자원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나중엔 몰디브나 괌 같은 유명 휴양지들은 기념품용 바렌의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높이는 전략을 취했음에도 넘치는 수요를 감내할 길이 없었다.

고립되기 몇 시간 전, 나는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바렌을 직거래했다. 국내산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팝니다] 게시판을 전전한 것 같은 상품이었다. 미개봉 새 상품. 네고 사절. 즉시 입금하신 분만 거래 가능. 딱딱한 문구로 쓴 상품 판매글과는 다르게 직접 만난 판매자는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안경을 쓰고 등산복 위에 경량 패딩을 입은 아저씨는 노후한 소형 트럭을 끌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창문 너머로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 뒤 바렌을 건네주었다.

“원래 동해가 다른 바다들보다 파도가 거세고 험해요. 대신 좀 묵직한, 응. 그런 맛이 있지.”

“그래서 싸게 주시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당연하죠. 바렌은 원산지에서 제일 안 팔린다잖아요.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거지. 아가씨도 이거 사고 싶었던 건 아니잖아요? 더 좋은 걸 구하고 싶은데 마땅한 매물이 없었겠지.”

“아니에요. 전 이거 찾으러 온 거 맞아요. 그래서 제가 글도 올렸잖아요. 동해로 만든 바렌 구합니다. 잘 안 구해져서 먼저 올리신 글 보고 연락드리게 된 거예요.”

아저씨는 비닐봉지에 바렌을 담다 말고 나를 안경 너머로 흘긋 보았다. 나는 잽싸게 덧붙였다. 발언의 진위를 의심받고 있다는 직감이 들어서였다.

“이걸로 프러포즈 받았거든요.”

“요즘에 보기 드문 검소한 부부네.”

그게 아니라, 이걸로 헤어짐을 말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함구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굳이 처음 받은 것과 똑같은 것으로 골랐다고는. 프러포즈 때 받은 건 헤어진 날 버렸다. 특수 폐기물 처리 스티커를 붙인 봉지에 담아 쓰레기장에 내놓은 탓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직거래를 끝내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근방에 있던 해변으로 가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발과 양말은 벗어서 옆에 놓았다. 엉덩이로 느껴지는 백사장은 오후의 햇볕을 받아 적절히 달아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시원한 소리를 내며 큼지막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하얀 포말이 발치까지 밀려오는 것을 내려다봤다. 오늘 파고가 좀 높은 것 같다고 생각하자 곧장 머릿속에서 권의 목소리가 반박해왔다. 쭈그려 앉았을 때 무릎 높이까지 오면 괜찮은 거야. 동해가 원래 좀 그렇거든. 저만치 밀려 나갔다가 잊은 게 있다는 듯 다시 달음박질쳐 오곤 해. 그런가. 동해는 다 이런 식이구나. 밀려온 물살이 발가락 끝을 간지럽혔다. 나는 앉은 자세로 무릎을 모으고 그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자 마라톤이나 계주에서 마지막 구간을 통과하는 것처럼 눈높이쯤의 무릎선을 뚫고 물방울 몇이 휙 위로 튀어 올랐다.

나는 아프리카의 더위를 닮은 내륙지방에서 나고 자랐다. 엄마도 싫어하는 그곳의 더위로는 아무도 바렌을 만들지 않았다. 여름이면 정도가 더욱 심했다. 바깥일이 잦은 엄마는 자주 열사병에 시달리고 나는 에어컨 밑에서 냉방병으로 두통을 앓았다. 급기야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해안가로 거주지를 옮긴 뒤 뱃일을 시작했다. 30~40도를 웃돌며 사람 진을 빼놓는 곳은 질렸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낯선 도시에 내리자마자 코끝에 풍겨오는 물비린내를 맡으며 알았다. 나 또한 바다를 오래 동경해왔다는 것을.

나는 봉지를 열어 받은 물건을 확인했다. 제조사 투데이웨더, 원산지 대한민국, 21년산, 하늬바람이 부는 건들 팔월 19~21시께 채집, 적정 사용 공간 21~41㎡ 등등. 패키지에 쓰인 문구는 조밀한 글씨로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슬쩍 열어봤을 땐 흔한 백사장과 맑은 밤하늘을 담은 평범한 바렌이었다. 특이사항: 개봉 시 불꽃놀이가 펼쳐질 수 있음. 구석에 조그맣게 쓰인 문구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불꽃 축제가 있는 날 채집됐을까. 그러고 보니 판매자가 그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권과도 손을 잡고 가본 적 있는 축제였다.

굳이 이런 우연까지 겹칠 필요는 없지 않나. 이별의 언어를 고민하는 일은 나이를 먹어도 쉬워지는 법이 없었다. 갈등. 분노. 격앙. 고함. 싸움. 참회. 그리고 마침내 합의. 구두로 얘긴 다 나눈 거니까. 너도 이미 동의했고. 서명만 와서 직접 얼굴 보고 해. 권은 그렇게 통보했다. 이미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듯이. 썰물처럼 쏴 씻겨 내려가버렸다는 듯이. 평온함에 도달했다는 듯이. 그래서 나는 허탈해졌다. 유치하게 ‘이거나 먹고 꺼져라’라는 식으로 그의 얼굴에 바렌을 던져버릴 작정이었던 내 분노를 또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한 것이 권이라는 사람 그 자체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4.

축복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권과의 약혼 사실을 주변에 알리면서는 더욱 그랬다. 계시자를 만나다니 정말 복 받았다고. 반대로 권은 나를 만나는 데 평생의 운을 다 끌어 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지인들과 친인척들과 가족들의 포옹을 받으며 그런가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역할이었다.

환경 변화와 이상기후 등으로 날씨의 정확한 관측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자연스레 예보의 적중률도 떨어졌고, 그로 인한 민원이 빗발쳤다. 비슷한 시기에 전국 각지에선 이상한 소동이 일었다. 꿈에서 오로라를 봤다는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오색찬란한 빛의 장막을 보고 일어난 사람들은 날씨를 보는 눈이 트였다. 맨눈으로 구름이 부푸는 정도를 정확히 파악해 비가 내릴 때를 예측했으며, 대기의 냄새를 맡고 미세한 변화를 포착해내는 데도 능했다.

다른 이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자들. 그래서 선택받은 계시자로 분류되는 소수자들을 정부 기관에서 눈여겨보고 있다는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거짓은 아니었는지 곧 기상청에서는 이들을 특별채용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내부에서도 누군가는 비과학적이고 시대가 역행하고 있다며 불만이 제기되고 여론이 엇갈렸다. 고도화된 AI도, 진보된 슈퍼컴퓨터도 아니고 다시 인간이라니. 그러나 여름철 피해가 큰 태풍의 상륙 시기와 이동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는 등 계시자의 능력은 수치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하고 뛰어났다. 최초의 계시자이자 여전히 전국 1등의 성과를 올리는 이는 대전의 박 할머니였다. 그는 만 79세의 나이로, 계시를 받기 전에도 무릎의 시큰거림으로 비가 올 때를 남들보다 빠르게 알 수 있었다.

권이 100%의 확률을 힘들이지 않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확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둘은 어떻게 보면 반대인 거잖아. 그래서 끌렸는지도 몰라. 결혼 3개월차, 권이 외출한 사이 신혼집을 찾아온 은지와 정민은 입을 모아 말했다.

‘진영이 네가 과학교사가 된 것도 운명일지 모른다는 거지. 지구과학을 택한 것도 그래. 비는 왜 내리는지, 돌풍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갑자기 그런 게 궁금하다면서 선택했잖아. 몇 시간씩 대지랑 하늘을 본떠 만든 모형을 들여다보면서 연구하고 설명하고….’

‘그래도 말이 안 통하는 기분이긴 할 거야. 어떻게 했는데? 하면 그냥 됐는데? 라고 답해버리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거잖아. 외국어 문법 배울 때 원어민이랑 얘기해봤자, 설명은 못하겠는데 그렇다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걸.’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나는 평소보다 오래 빨래를 돌렸다. 저녁 장을 봐야 할 시간이었지만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속이 체한 것처럼 더부룩했다. 세탁기를 열어 젖은 빨래를 꺼내는 동안 나는 그간 들은 말에 대해 생각했다.

권이 정말 계시자처럼 살았다면 복 받았다는 말은 사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계시자들과 달랐다. 사회운동가처럼 굴었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 위험이 선명한데도 공사를 강행하는 건설사를, 채집 시점에 슈퍼 태풍이 휘몰아친 게 분명한데도 ‘개봉 시 주의’ 문구 하나 없이 포장에 바쁜 바렌 생산 공장을, 전례 없는 폭염을 앞두고도 방지책을 세우기는커녕 예산 감축에 들어간 일부 지자체를 고발했다. 나는 권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심으로 응원하지는 못했다. 권이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의 기온은 다르다고 믿었다. 권이 가져온 볕을 잠깐 빌려 쐬고 있을 뿐이라고.

“진영아, 우산 챙겨 가” 하는 말을 듣고 외출하면 마트에 도착할 때쯤에야 비 예보 소식이 TV에서 흘러나오는 경험을 여럿 했다. ‘오늘 오전 일찍부터 급격히 추워지니까 패딩 챙겨 입고 나가’라는 문자를 받고 길을 나서면 한파를 알리는 긴급안내문자를 받았다. 권의 한발 앞선 예보에 나는 늘 배려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변수가 많아 머리 아픈 인생에서 권은 등대처럼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건 엄마가 아프면서였다. 엄마가 배를 타다 갑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떨어지면서 뱃머리에 팔을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엄마의 팔이 부러졌다.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골절이어서 입원이 결정됐다. 입원 기간 엄마는 밤마다 기침하느라 잠을 설쳤다. 이 일을 의사에게 전했더니 퇴원 전 정밀검사를 권유받았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받는 게 좋은데 이전 검진 이력이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였다. 검진 결과에서 갑작스레 재차 조직검사를 받아야 할 일이 생기고, 최종적으로 암 선고를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림프샘 전이가 일정 부분 진행된 3기 유방암을. 거짓말이지? 야근한 권을 태우고 병원으로 가 내가 뱉은 첫 의문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다시금 입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 휴직계를 냈다. 그간 모아둔 돈과 권의 성과급은 엄마에게 쓰였다. 계시자라는 직업의 특수성 덕분에 권의 벌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모든 걸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불안을 죽이려 몰래 부업으로 학원강사 일을 겸했다. 공무원 겸직금지 조항 같은 건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눈 한번 감으면 손에 필요한 것이 쥐어졌다. 직장과 병원을 오가는 바쁜 일과가 이어지며 권도 홀로 집을 지키는 날이 늘어났다. 그해 겨울은 유달리 눈 내리는 날이 잦았다. 내가 병원에 길게 머물렀다 집에 들르는 날이면 권은 폭설의 낌새를 미리 알아채고 두꺼운 겉옷이나 목도리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잠든 후 그가 베푼 호의를 입고 병원 밖을 나가 육교 위에서 눈을 맞으며 달리는 차들의 불빛을 몇 시간이고 지켜보곤 했다.

일전에 권과 남해 고성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상족암 군립공원에 갔다가 갑작스레 비바람을 맞닥뜨려 동굴로 뛰어 들어간 때가 있었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고 그 안에는 갓 태어난 게가 드문드문 물장구치며 걷는 곳이었다. 네모난 책을 무수히 쌓아 올린 것 같은 해식절벽의 테두리 속에서, 우리는 방수가 되는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턱끝까지 지퍼를 올린 뒤 울퉁불퉁한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그 상태로 위를 올려다보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 밖은 시끄러운데 내부는 조용했다. 대화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울렸다.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것 같아.”

권은 그 말을 듣더니 팔을 움직여 내 손을 꽉 맞잡았다.

“다음에는 비 말고 별이 쏟아지는 것도 보러 가자. 강릉의 안반데기나 연천 당포성 같은 곳으로.”

나는 권의 악력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이 생각대로 흐르지만은 않을 때마다 권과 함께 동굴에 숨어서 비구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때를 회상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오늘은 왠지 모르게 잘 살았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기억은 소모되지 않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날을 바렌으로 만들어 간직했을 것이다. 쭉 미개봉한 채로 손안에서 몇 번이고 굴려봤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종종 후회했다.

우습게도 권과의 신혼 생활은 그보다 더한 우기를 지나고 있었다. 스콜처럼 예고도 없이 불행이 쏟아졌다. 날씨는 개인의 안부에 무관심했다. 괜찮지 않아도 내일이 왔다.

어느 날 피로에 찌든 얼굴로 귀가한 권은 그랬다. 현관 조명등이 꺼질 듯 위태롭게 권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권이 입은 옷에서 설익은 초여름 냄새가 났다. 진영아, 나 계시자 일 그만두고 싶어. 권은 분명 똑똑히 말했다. 그러나 내가 듣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부러진 화살 같아서, 주워든 이를 곧잘 상처 입히는 존재였다. 왜 갑자기 잘해오던 일을 그만두냐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권을 몰아붙였다. 해가 바뀌고 봄 즈음부터 병세가 악화 중이던 엄마의 병마가 짙은 먹구름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 내가 알던 가치가 다 쓸모없어지거나 무너져버린 느낌이야. 가까이서 마주한 권의 눈은 메마른 사막처럼 건조했다. 갈라진 실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나는 언성을 높이다 말고 이마 위에 뜨끈한 손바닥을 올렸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병원에선 엄마가 기다린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권에게 곧 젖을 나를 안으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권은 습기에 쉽게 찢어지는 종이 같았고 나는 그가 떠안기엔 지나치게 커버린 먹구름이었으니까, 이 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망가지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권의 말 덕에 엄마와 병원 밖으로 산책 나올 때를 대비해 우산 하나를 더 챙길 수 있었음에도, 병실 침대에 깔아줄 담요를 넉넉히 챙길 수 있었음에도, 이렇게 빨리 날이 쌀쌀해질 줄 몰랐어요. 그러게요. 담요 하나 더 드릴까요.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가 더 많이 베푸는 쪽이 될 기회를 더 많이 얻었는데도 권과 나의 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아이를 갖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권은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더니 병원 옥상에 있는 공원에 가자고 했다. 엄마에게 덮어줄 외투를 손에 드는데 문득 장마 기간인데도 우산을 들고나오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내 이동이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엄마와 함께 정자에 앉자 얼마 안 가 비가 쏟아졌다. 호쾌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나는 엄마와 율무차를 나눠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불현듯 나는 입을 열었다.

“고백할 게 있는데, 엄마. 옛날에 내가 교사로 일할 때 새로 들어온 같은 학교 후배가 있었거든.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다 초임 발령받은 그 애를 예뻐했어. 그런데 왜, 그런 암묵적인 법칙 같은 거 있잖아. 일을 잘하는 사람에겐 일이 더 몰리게 되어 있다고. 실은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닌데도 어떻게든 현상 유지가 된다면, 균형이 안 맞는 탁자처럼 뒤뚱거린다 한들 겉으론 별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버거웠을 것 같아. 얼마나 버거웠으면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경고 문구가 세 개나 붙은 바렌을 힘껏 열었을까 싶어. 헬기에서 거대한 물 폭탄을 떨어뜨린 것처럼 난장판이 된 학교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몇 년 전에 남부지방을 거세게 할퀴고 간 태풍이 담겨 있었대. 복구에만 꼬박 두 달 반이 걸렸어. 뉴스에서 봤는데 그 애도 경찰 조사에서 벌벌 떨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더라고.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어.”

“알지. 그 일 때문에 네가 한동안 마음고생 심하게 했잖니.”

빗금을 그리듯 사선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며 나는 덧붙였다. 엄마, 실은 나 알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 후배 자리에만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았어. 책상 위에 공문 서류 더미도 잔뜩이었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도 울다 나온 것처럼 붉은 얼굴이었어. 오다가다 인사하던 목소리도 점점 낮아졌는데… 다 알면서도 내 코가 석 자라 모른 척했어. 핑계지만 나도 새로 맡은 반에서 학폭위도 열리고 정신이 없었거든. 그러다 권을 만난 거지. 나랑은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 좋았던 것 같아. 버스 기사로 일할 때 빗길에 도로 노면이 미끄러워서 사고 나는 게 제일 안타까웠던 사람. 계시자가 된 후에도 종종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게 ‘내일 비 많이 오니 운전 조심해라’라고 문자를 넣는 사람. 엄마는 남은 율무차를 깔끔히 비우고 구겨진 종이컵을 내 손에 도로 쥐여주었다.

“아직도 네가 그 사람을 그렇게 모른다. 하루는 너 없는 날 찾아와서 과일도 깎아주고 얘기도 들어주며 그러더라. 장모님 제가요. 진영이 앞에선 자주 부끄러워요. 볕이 뜨거운 날 밖에 오래 내놓은 돌처럼 한 번씩 뜨끈해질 때가 있어요. 연애 때부터 진영이는 저보다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어서, 저를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어서 그런가봐요.”

5.

해무를 뚫고 들어온 빛이 보였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등대가 있는 것 같았다. 권과 나는 입고 있는 외투를 필사적으로 여미며 추위와 싸웠다. 퍼렇게 질린 서로의 입술을 보며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휴대폰은 파도에 휩쓸리며 물을 먹는 바람에 연락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권은 안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몇 번 만져보더니 다행히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이걸로 빛을 내며 기다리자. 권은 하늘로 향하도록 불 밝힌 손전등을 손에 쥔 채로,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열대기후 바렌도 있다고 덧붙였다. 적정 사용 범위보단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이 훨씬 넓어서 별 효과는 없을지라도 잠깐의 온기는 되어줄 거라고.

“그런 건 어디서 났어?”

“출장지에서 기념품으로 줬어. 안 쓰고 집에만 처박아둔 게 아까워서 갖고 다니다보면 쓸 데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됐네.”

“좋았겠네. 당신 밖에서 공짜로 뭐 받아오는 거 좋아하잖아.”

“싫진 않았지.”

“비행기 타는 것도.”

“그것도 나쁘지 않았지.”

“퇴사는 왜 한 건데?”

“좋은 날이 좋은 날이면, 나쁜 날이 나쁜 날일 수도 있어야 하니까. 그런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비가 오는데 오지 않을 거라고, 도로가 침수되고 사람들이 다칠 텐데 입을 다무는 게 이상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다야.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신도시에 완공을 앞둔 건물이며 시설이 여럿 있었어. 학교도 개교를 앞두고 있었고, 병원을 비롯한 편의시설도 대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라 투자자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었을 만큼 입지가 좋은 땅도.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거주지를 옮겼고 머지않아 일부 건설사가 계시자들에게 접촉을 시도해왔어. 대개 다가올 여름 날씨를 묻는 연락이었어. 완공 시기를 재조정해야 하는지, 공사에 큰 차질을 줄 만한 일은 없을지. 그 과정에서 선의나 호의로 포장된 금액이 여러 계시자에게로 흘러간 거야.”

동료들 중엔 그걸 여름 특별보너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권은 씁쓸하게 덧붙였다.

“괜찮습니다. 잘될 겁니다. 별 이상 없습니다.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내 말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도, 듣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점점 입을 다물었지. 결국 일이 터졌어.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준 건설사 아파트들이 완공을 며칠 앞둔 시기에 계시자들 머릿속에 동시에 빨간불이 들어올 만큼 거대한 태풍이 예측됐거든. 그런데 뒤늦게 공사를 미루기엔 감당해야 할 비용 규모가 너무 컸어. 받았던 돈을 도로 토해내도 모자랄 정도로. 당일 오전, 중부지방에 상륙한 태풍이 위로 북상하면서 논밭이며 도로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입로에 설치됐던 몇몇 지하차도가 손쓸 틈도 없이 물에 잠겨버렸어. 통제 인력도 우회 안내도 없었어. 이전에 침수 피해가 있었던 구간의 진입을 막아야 한다는 연락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던 거야. 일이 벌어지고, 인명 피해 규모가 뉴스에 보도될 시점엔 이미 늦었더라고. 애초에 뱉은 말이 있었으니까 다들 미처 예상치 못한 사고였던 것처럼 구는 데 바빴지. 그래서 내가 싹 다 고발해버렸어.”

권은 별다른 동요 없이 전부 다, 하고 한 번 더 강조했다. 그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맥박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목 부근을 한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는… 입을 다무는 쪽이었으니까. 역시 권의 이런 면모를 동경해왔던 게 아닐까. 그가 좋지 않은 날씨를 떠안은 바렌의 속내를 들춰보는 것처럼 나를 들춰보진 않을까 불안했던 게 아닐까. 나는 단단한 눈매와 곧게 뻗은 코를 가진 권의 옆얼굴을 훔쳐보며 남은 이야기를 들었다.

“제대로 미움받았지. 그 전부터도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날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결정적으로는 그 일보다도 능력이 서서히 사라져서 퇴사했어.”

“사라졌다는 게 무슨 말이야?”

“계시를 받는 사람들은 꿈에서 오로라를 본다고 하잖아. 보통 색깔이 뚜렷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오로라를 보거든. 그런데 난 좀 달랐어. 색종이를 조각조각 잘라서 엉성하게 덧붙인 것 같은 조악한 오로라를 봤어.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어서 낡은 느낌마저 들었지. 그래서 아마 내 능력은 남들보다 불완전했던 것 같아. 조금 허탈하긴 했지만, 많이 슬프지는 않았어.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던 게 어디야. 원래 오로라를 보려면 극지방까지 멀리 가야 하잖아.”

대화가 끝난 뒤 권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런 권의 옆얼굴을 조금 더 훔쳐보았다. 얼마 안 가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뚫고 희미하게 구조 헬기가 상공을 가로지르는 것이 보였다. 동굴의 천장처럼 비를 막아줄 곳은 없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손날끼리 맞닿은 상생의 손처럼 붙어 앉아 구조를 기다렸다. 맞잡을 손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담희 / 김진수 선임기자
<수상소감> ‘나’라는 사람을 계속 믿고 아껴주길

해변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바다를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풍경과 기억은 그런 곳과 때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큰 힘을 갖는 것 같아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입니다. 어느 날의 풍경에서 떠올린 이야기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또 지금까지 함께 읽고 쓴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모두가 제게 특별한 용기와 힘을 주는 존재였어요. 애정 어린 눈으로 이 이야기를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한겨레21>에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과분한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쓰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방에서 보내는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을 때까지요.
현실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일수록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나'라는 사람을 계속해서 믿고 아껴주세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그뿐입니다.
이 글을 봐주신 분들께 행복한 2024년이 기다리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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