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인문은 사람만의 힘
제목은 나의 묘비명에 딱 한 구절만 새겨 넣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새겨 넣을 문구다. 여태껏도 그러했지만 세상을 떠날 그날까지도 인문은 내 삶의 동력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 위에서 3년간 연재해오던 ‘행로난’을 갈무리하는 이번 글의 제목을 “인문은 사람만의 힘”으로 잡았다. 여기서 인문은 순수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크고도 넓은 개념이다. 예컨대 이러하다. 조선의 선비들이 자신을 닦는 수기(修己)와 세상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되먹임 구조’로 파악했듯이, 다시 말해 수기는 치인의 시작이며 치인은 수기의 완성이라고 여겼듯이, 인문은 세상 속에서 나를 경영하는 몹시 미더운 터전이다.
더구나 인문은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원초적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원초적 불안이란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존재인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게 됨으로써 지니게 된 것이다. 사람이 미래를 생각할 줄 앎은 양날의 검이다. 미래를 생각할 수 있기에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지만, 동시에 미래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는 걱정을 안고 살게 된다. 인간답게 살려면 남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저마다 자신의 미래를 품고 있으니, 사회가 내 미래를 중심으로 돌아갈 리는 만무하기에 그러하다.
우리는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사회를 일구었는데 그로 인해 내 뜻대로 미래를 실현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안게 된다. 인문은 이런 딜레마로부터 우리를 제법 벗어나게 해준다. 인문 안에는 이를테면 역사가 들어 있고, 거기에는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길이, 또 딜레마를 안고 살지만 그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았던 삶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그래서 역사는, 또 인문은 미래를 위한 자산이다. 인문의 힘으로, 미래로 인한 불안을 극복해갈 수 있는 까닭이다.
인문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인문은 주로 현실을 초월한 궁극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여기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부터 가정과 사회, 국가, 문명을 빚어온 것 또한 인문이다. 인문을 적극 활용했던 이들의 얘기다. 하여 인문은 내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를 살뜰하게 챙겨줄 쏠쏠한 밑천이 되어준다. 그것도 지속 가능하게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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