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액체납 명단 공개 20년, 문제는 실효성이다
2023년은 역대급 세수 펑크로 국가와 지자체의 곳간 사정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국세청은 2억원 이상 고액체납자 7966명의 명단을 국세청 누리집을 통해 공개했다. 이들의 총 체납액은 5조1313억원으로 1인당 평균 무려 64억원을 체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15일 행정안전부도 지방세 1000만원 이상 체납자 8795명(총 체납액 3820억원)을 행안부 및 각 시도 누리집, 위택스 등에 게시했다.
고액체납자 명단 공개는 성실납세자가 존경받고 성숙한 납세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로 국세는 2004년부터, 지방세는 2006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공개 내용은 체납자 성명·상호(법인명 및 법인 대표자), 나이, 직업, 주소, 체납액, 세목, 체납요지 등이며 매년 말 각 기관별로 1회 공지한다.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세금 납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금 납부 여력이 있음에도 고액 세금을 체납한 채 각종 공공서비스와 사회기반시설 이용 등 혜택만 누리는 비양심 고액체납자가 적지 않다. 고액체납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이들의 인적사항 등을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세금 체납에 대한 경각심과 도덕적 수치심을 느끼도록 함은 물론 사회적 압박과 비판을 가해 성실납세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 가수 박유천(4억원)과 배우 박준규(3억원)가 고액의 세금을 체납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쏟아진 가운데 이들이 체납 세금을 적극 납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명단 공개 제도의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액체납자 명단 공개 제도가 20년 차에 접어든 상황에서, 당초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법에 따라 매년 형식적인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공개된 체납자 명단을 확인하고자 국세청이나 행안부, 각 지자체 누리집을 방문하는 국민이 과연 몇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어쩌다 누리집에 접속해 공개 자료를 찾으려 해도 공개 메뉴 위치가 기관별로 제각각이어서 찾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명단 자료를 좀 더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 메뉴 이름과 공개 위치 등을 통일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개 자료를 보면 단독주택 체납자는 주소지가 정확하게 노출되고 있으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 체납자는 동·호수 없이 토지 지번만 기재돼 있어 공개 내용에 형평성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공동주택 체납자의 경우 거주지 동·호수까지 공개되도록 내용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세청이나 각 지자체에서는 체납자 명단 공개 자료 등을 토대로 체납자가 제3자 또는 친·인척 등 명의로 숨겨놓은 재산을 신고하도록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바, 체납자 사진 게재는 물론이고 명단을 여러 매체를 통해 수시로 홍보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공개로 체납자 은닉재산 신고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매년 수조원 체납 세금이 징수되지 못한 채 소멸되고 있다. 정부나 각 지자체에서는 재산을 숨기고 5년만 버티면 된다는 양심불량 악성체납을 반드시 근절하고 시효소멸되는 세금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향후 비양심 고액체납자를 대상으로 자동차면허증 발급 불허, 정부(지자체) 사업 입찰 참가 제한, 시효소멸 임박(6개월) 체납자 명단 별도 공개 및 민간 탐정협회나 채권추심 기관을 통한 징수촉탁 방안 도입, 법원을 통한 체납자 재산 명시 제도 활성화, 공공보조금 및 소셜 보안 혜택 제한 등 다양하고 새로운 체납 징수 제도 시행과 강력한 징수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촉구한다.
이병욱 전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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