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풀어낸 육신의 필멸과 고통… “인간의 100년은 참 쓸쓸해”

김용출 2023. 12. 1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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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등 낸 신달자
‘핏줄’ 몸 아파 뿌리인 고향 찾아 쓴 詩… 생전 모친 말씨 담아
다 마른줄 알았는데… ‘핏줄’ ‘나의 양 떼들’ 얘기할땐 눈물이…
2024년 등단 60년… 스승 박목월처럼 생애 마지막까지 대표작 써야죠

왜 이래? 처음에는 알 수 없는 불만이 터지면서 현실을 거부하는 마음이 먼저 일었다.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집을 마무리하고 죽나 보다, 하는 나약한 마음도. 한동안 베개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생각도 함께.

아직 해가 뜨지 않았던 작년 어느 가을날 새벽, 시인 신달자는 성남 심곡동 자택에서 눈을 떴다. 최근 1, 2년간 사고가 이어졌고, 수술도 두 차례나 받은 그였다. 베개를 베고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니야, 잘못의 시작은 나한테 있는 것 아닐까. 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 역시 내가 책임져야 될 일이고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자꾸 밀어내려고 하지 말자. 이미 나에게 온 것이니 다 안고 가자.
내년 등단 60년을 앞둔 신달자 시인이 17번째 신작 시집과 시선집, 묵상집을 동시에 펴냈다. 팔순의 노시인은 “지금도 저의 대표작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를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시를 설명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불현듯 성경에서 읽었던 양과 목동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양과 목동. 나의 신음과 통곡,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양 떼 아닐까. 그래, 양 떼들! 나는 목동이고. 생각은 빠르게 번져갔고 날개를 폈다. 그래, 이 양 떼들을 다 데리고 같이 잠을 자자. 나한테 왔으니까 그냥 기쁘게 받아들이자. 설령 암이라고 해도. 나의 양 떼들!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판을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글이, 시가 펼쳐졌다. 한 자도 고치지도 않고 끝까지 쭉 밀고 나갔다.

“수심이랄까 근심이랄까 상심이랄까/ 아픔과 시련과 고통과 신음과 통증들은/ 모두 나의 양 떼들이라// 나는 이 양들을 몰고 먹이를 주는 목동// 헐떡이며 높은 언덕으로 더불어 오르면 나보다 먼저 가는 양 떼들이 있지/ 아픔과 시련은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 걷고 신음과 통증은 목동의 등을 타고 올라/ 채찍질을 하기도 하지// 다시 암 진단을 받았어?/ 무섬증과 외로움이 격투를 벌이다가 서로 껴안는 것을 본다// 자 집으로 가자// 어둠이 내리면 나는 양 떼들을 모으고 목에 두르고 겨드랑이에도 끼워 집에 들어가 가지런하게 함께 눕는다// 오늘을 사랑하기 위하여 양 떼들을 달래기 위하여// 내 거칠고 깡마른 생을 어루만지기 위하여.”(‘나의 양 떼들’ 전문)
내년 등단 60년을 앞두고 신달자 시인이 시편 ‘나의 양 떼들’을 포함한 신작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민음사·사진)과 시선집 ‘저 거리의 암자’(문학사상),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를 동시에 펴냈다. 신작 시집은 그의 17번째 시집.

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세월과 함께 쇠잔해진 팔순의 육체를 다양하게 다뤘다. “정신을 고급으로 아”끼면서도 몸에 대해 오만했던 시절에 대한 반성이자, 앓는 몸을 가진 세상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쯤 되겠다.

한국시인협회장까지 역임한 팔순의 노시인 신달자가 느끼고 경험하고 바라본 육신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문학적 여로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신 시인을 지난 1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무실에서 만났다.

육신은 영원하지 않다. 젊을 때는 건강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화하면서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육신이라는 집’은 그렇게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파오는 몸을 노래한 시편이다.

“내가 나를 떠나/ 너무 많은 타향을 떠돌았지// 다 주고도 눈물만 받았던 수많은 객지들// 지금 돌아오니/ 대문 삐거덕거리고/ 기둥 삭아 내릴 듯 위태롭네/ 겉보다 속이 옴팡지게 상해 있네// 밤새 신음소리 들리지만/ 내가 나를 껴안고 소스라치네/ 내가 나를 어루만지며/ 낡은 육신 껴안고/ 그래도 계절의 신비 다 느끼며/ 남은 생명을 가장 귀한 깨끗한 자리에/ 놓아놓고/ 내가 내 손으로 쓰다듬으며/ 나, 나에게 노래 불러주네.”(‘육신이라는 집’ 전문)
―시가 조금 쓸쓸합니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새것이었다가 낡아지고 소멸하는 거잖아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순신이나 김소월만 해도 다 사라지고 없잖아요. 이름만 남아 있죠. 인간의 100년은 참 쓸쓸한 거죠. 인간에게 두려운 것은 경제적인 파탄이지만, 먹을 게 있으면 돈이 최고는 아닙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육체 탐구는 뿌리,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중한 몸을 만들어준 어머니와, 아버지와, 정서와 감정을 부여해준 고향까지.

“핏줄 속에는/ 큰 손이 있는 기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 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깡케// 핏줄 속에는/ 발자국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와 기척 없이 몸 위에 드러눕는/ 뭉클한 가슴이 있는 기라/ 그 뭉클한 가슴을 생으로 떼어 줘도 될 것 같은/ 아니 떼어준 그루터기에서 비집고 나오는/ 새순 같은 그 질긴 생명력을/ 몇 배로 키워 다시 빗줄 안으로/ 쏴아 쏴아 내려 붓고 싶다캉께//… 니 아나?/ 고향도 아버지같이 핏줄인기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고향/ 물이지만 쇠뭉치 같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 그 질긴 줄을 저릿저릿한 핏줄이라 안 카드나/ 수세기 흘러가는 줄/ 끊을 수 없는 역사라 안 카드나.”(‘핏줄’ 부문)

―마치 신이 내린 무당이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겨울에 완성한 시입니다. 몸이 아파서 엄마와 아버지, 고향 등 뿌리를 한번 찾아가 본 거예요. 만약에 제가 죽을 때 인사를 한다면 역시 고향과 엄마와 아버지와 이런 게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 거죠. 엄마는 늘 경상도 말을 썼는데, 엄마 목소리로 저한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쓴 시입니다.”

“‘핏줄’과 ‘나의 양 떼들’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신 시인은 시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훔쳤다. “제 시간이 다 가나 봐요. 생전 안 이러는데. 큰일 났네. 다른 곳에서 인터뷰할 때 안 이랬는데. 왜 이러지. 눈물도 다 말라버렸는데….”

1943년 거창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자란 신달자는 시 ‘환상의 밤’이 1964년 잡지 ‘여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재등단했다. 등단 이후 ‘열애‘, ‘종이‘, ‘북촌‘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신인여류문학상, 시와시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공초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내년이면 등단 60년이 되는데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고 싶은지요?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네요…(잠시 생각한 뒤)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다시 태어나면 다른 것 해보죠. 물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진 않겠지만.(시인으로 제일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습니까) 시를 썼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공감 같은 것 안 바란다, 시를 써놓으면 누군가는 읽는다고 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는 공감대가 필요하니까요.”

“더 좋은 시를 쓰다가 죽어야 되겠죠.” 신작 시집의 의미와 특징을 설명하는 도중, 노시인은 이번 시편이 자신의 시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0년 전의 어느 날로 기자를 끌고 갔다. 그러니까 스승이 작고하기 얼마 전, 박목월 시인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대표작은 ‘나그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 ’나그네’는 스승이 창작한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도 했고 각종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목월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아이다, 내 대표작은 오늘 밤에 쓸 기다.”

“저는 스승의 말씀을 굉장한 교훈으로 삼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귀가를 위해 택시에 오르는 신달자 시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택시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육신을 뉘일 물리적 집일까,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시의 성채일까, 아니면 쓰기 자체가 목적인 글쓰기의 감옥일까. 시인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의 말은 떠나지 않고 아리랑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도 저의 대표작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를 씁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y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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