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풍경] 해피드러그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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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매년 이 무렵 '올해의 혁신'을 선정해 발표한다.
25년 전인 1998년 발기부전 치료제 실데나필(제품명 비아그라)이 등장해 엄청난 화제가 됐지만, 당시 올해의 혁신에는 뽑히지 못했다.
그런데 2023년 올해의 혁신은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로 알려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이 차지했다.
요즘은 비만이 질병으로 인식되는 추세지만 대부분 당장 몸에 큰일이 나지는 않기에 그 치료제는 해피드러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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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풍경]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미국의 주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매년 이 무렵 ‘올해의 혁신’을 선정해 발표한다. 25년 전인 1998년 발기부전 치료제 실데나필(제품명 비아그라)이 등장해 엄청난 화제가 됐지만, 당시 올해의 혁신에는 뽑히지 못했다. 아무리 대중성이 커도 학문성은 못 미친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불치병 치료제가 아니라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해피드러그’(happy drug)라 저평가된 것일까. 참고로 1998년 올해의 혁신은 우주 가속 팽창 발견에 돌아갔다(201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그런데 2023년 올해의 혁신은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로 알려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이 차지했다. 요즘은 비만이 질병으로 인식되는 추세지만 대부분 당장 몸에 큰일이 나지는 않기에 그 치료제는 해피드러그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올해의 혁신으로 뽑힌 건, 비만이 발기부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촌 보건에 심각한 문제라서일까.
혈당을 조절하는 지엘피-1이라는 인체 호르몬을 모방한 구조를 지닌 이 약물 가운데 하나인 리라글루타이드는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돼 2009년 승인받았고(제품명 빅토자), 임상시험 과정에서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줄이는 효과가 발견돼 2014년 비만 치료제로 허가가 났다(제품명 삭센다). 효과 대비 부작용이 컸던 기존 치료제들과 달리 삭센다는 효과가 확실하고 부작용은 미미해 빠르게 시장을 넓혔다. 다만 매일 주사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 뒤 효과는 더 높이고 안정성을 개선해 일주일에 한번 주사하는 새로운 지엘피-1 약물 세마글루타이드가 개발돼 2017년 당뇨병 치료제(제품명 오젬픽)로, 2021년 비만 치료제(제품명 위고비)로 승인받았다. 출시 2년이 지난 올해 위고비는 비만 치료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임상시험 결과 16개월 동안 몸무게가 평균 15%나 줄었다. 최근에는 세마글루타이드보다 감량 효과가 더 좋게 나온 지엘피-1 약물도 승인받았다.
지엘피-1은 비만 치료제로서뿐 아니라 다른 질병에도 꽤 효과가 있다. 심장마비와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 위험성을 낮추는 것으로 밝혀졌고, 심지어 알코올(술)과 담배 의존성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는 생체호르몬인 지엘피-1의 기능이 단순히 혈당 조절에 그치는 게 아님을 시사한다.
지엘피-1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사용자 다수에게는 부작용이 없거나 미미하다지만, 일부는 메스꺼움 등 소화계의 불편함으로 투약을 중단했고 장폐색, 췌장염을 일으킨 사례도 보고됐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약물은 없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다는 말이다. 한달에 1천달러(약 130만원)가 넘는 비용도 문제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위고비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계층을 나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만 경쟁 제품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약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므로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다.
우리나라는 2017년 삭센다를 승인해 처방하고 있지만, 지엘피-1 약물 돌풍의 주인공인 위고비는 아직 상륙하지 않았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사람이 해피드러그의 혜택을 받기를 바란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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