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달 밖에 안 지났는데 여권조차 우려 쏟아내는 '박민의 KBS'

노지민 기자 2023. 12. 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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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폐지 사태 이어 '노조 차별' 녹취 파장
수신료 수입 급감 현실화 앞두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방안 전무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박민 사장 취임 한 달, 시사 프로그램 폐지와 진행자 퇴출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특정 노동조합 소속은 진행자로 쓸 수 없다는 녹취까지 공개됐다. 박 사장이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들며 선언한 '1000억 원대 인건비 감축' 계획은 여권에서조차 우려의 입장을 냈다.

지난 18일 2022회계연도 KBS 결산승인을 위해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녹음파일을 틀었다. 라디오센터 한 간부가 “'하드한 시사에 2노조 진행자를 쓰는 건 아니다' 이런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거거든요. 임원이나 간부들 사이에”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2노조'는 KBS 내의 노동조합 중 가장 많은 조합원을 보유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를 의미한다.

▲사진=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녹음파일에 등장한 KBS 라디오센터의 부장급(CP) 간부는 최근 '배종찬의 시사본부' 출연자 하차 사태와도 관련된 인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라디오센터 CP가 '시사본부' 제작진에게 일부 고정 출연진을 하차시키라고 지시하고, 이를 거부한 제작진에게 기존 담당이 아닌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을 지시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KBS라디오센터에선 '주진우 라이브' '최강시사' 진행자 하차가 부당하게 이뤄졌다는 내부 반발이 터져나온 바 있다. 앞서 사실상 폐지된 두 프로그램 시간대에는 '특집1라디오 저녁' '특집1라디오 오늘' 등이 편성됐는데, 공교롭게도 각 프로그램 진행자 모두 '2노조'에 속하지 않은 인사들이다. 박 사장 취임 이후 특정 시사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제작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던 차에, 실제 차별적 조치가 이뤄진 정황이 공개되며 법적 처벌까지 가능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윤석열 정부판 언론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민정 의원은 “문화예술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블랙리스트의 악령이 KBS를 배회하고 있다. 방송법 4조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며 “(녹취는) KBS 2노조 출신을 해당 노조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 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현행 노조법 제81조에서는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준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이번 발언은 명백한 노조법 위반에 해당한다. 또한 '공사는 조합원의 정당한 조합활동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분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KBS 단체협약 제9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명백한 헌법, 노조법 위반 나아가 노조파괴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박민 KBS 사장 취임 후 진행자 교체, 프로그램 폐지, 패널 퇴출 등이 이뤄진 프로그램 이미지

박민 사장 취임 후 한 달간 사라진 시사 프로그램이나 진행자는 라디오 부문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박 사장 취임식이 있던 11월 13일 '뉴스9'를 비롯한 주요 뉴스 프로그램 앵커가 교체됐고, 2TV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가 편성 삭제를 거쳐 폐지됐다. 특히 한국갤럽 최근 조사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사교양프로그램 1위로 꼽힌 '더 라이브' 일방 폐지는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이 '더 라이브' 폐지 반대와 박민 사장 사퇴 청원으로 들끓는 결과를 불렀다.

총선을 앞둔 여권에서는 박 사장 취임 후 행보가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18일 과방위 회의에서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저도 선호하지 않는 편향된 진행자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국민 보시기에 납득이 가야 하고 명분이 있어야 된다. 봄 개편이라든가 가을 개편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나”라며 “남들이 봤을 때 '하나회' 척결하듯이 군사작전 하듯이 하면 정부 여당에 상당히 부담될 거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 사장이 재정 위기를 명분으로 꺼내든 '구조조정' '인건비 감축' 계획 또한 현실성이 있느냐는 여권의 지적으로 이어졌다. 박 사장은 5000억 원가량의 KBS 전체 인건비 가운데 20%에 달하는 1000억 원가량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명예퇴직, 연차휴가 촉진, 구조조정, 신규채용 중단 및 자연감소분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종합한 규모라는 설명이다.

▲박민 KBS 사장 ⓒ연합뉴스

이에 국회 과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내년 한 해 인건비를 1000억원을 줄이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제가 좀 당황스럽다”며 “1년 만에 1000억 원이라는 인건비를 줄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굉장히 저는 충격적”이라면서 인적 구조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궁극적인 문제는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재정 위기에 봉착한 KBS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KBS는 광고수입과 콘텐츠 경쟁력 하락에 TV수신료 분리징수로 인한 수신료 수입 급감이 겹쳐 전례 없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수신료 분리징수 유예기간 수신료 수입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97억 원 줄었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에 따른 관련 수입 결손이 30%에 달할 경우 내년 34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할 거라 예상하고 있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한 대책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때 KBS 일각에서 김의철 전 사장이 물러나고 상대적으로 정권과 가까운 사장이 취임하면 새로운 활로를 뚫을 수 있지 않겠느냐던 전망이 현실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수신료 징수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한국전력이 남은 계약기간(2024년 12월)까지 수신료 관련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지지만, 수신료와 전기요금 분리고지가 현실화하면 수신료 납부액 감소폭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아파트 관리비에서 수신료를 통합 징수해온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12월부터 수신료 징수 협조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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