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中企사업장 83만곳 중대재해법 유예, 대비 시스템 지원해야” [세계초대석]
일자리 사라지면 지역경제도 연쇄 충격파
고위험 사업장 8만곳… 교육·컨설팅 필요
오래된 기업, 법인세 납부·고용·투자 기여
기업승계 지원법 ‘부 대물림’ 인식 바꿔야
14년 만의 ‘납품대금 연동제’ 법제화 성과
저성장에 脫중국화… 수출 다변화 모색 앞장
중소기업계 현안은 이뿐 아니다. 주 52시간 근로제 유연화, 외국인 근로자 고용, 기업 승계 지원 등 정부와 국회의 논의 방향에 따라 중소기업계 경영 환경이 크게 달라진다. 새해 중소기업들의 운명이 정부 당국자와 국회의원들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현안에 대한 김 회장의 답변은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견해의 깊이는 그간 쌓인 경험의 양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올해 3월 4번째로 중기중앙회장에 당선돼 13년 동안 729만개 중소기업을 대표하고 있다. 다음은 김 회장과 일문일답.
―중대재해법 2년 유예와 관련해 노동계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50인 미만 기업 현장은 83만개에 달한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성급하게 법을 적용했다가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으면 사업장도 폐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무너지면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는다. 지역 경제도 연쇄적으로 활력이 사라지는데, 노동계가 바라는 결과는 아닐 것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를 바라는 이유다.
단순히 ‘유예’만 외치는 게 아니다. 정부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발표되고 국회에서 예산이 뒷받침돼 현장에서 안전 보건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당정에서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조건부 찬성 입장을 내비친 만큼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법 취지대로 중대재해가 예방될 수 있도록 중앙회 역할을 확대할 것이다. 전문 인력 채용 지원, 업종별 맞춤형 컨설팅 확대 및 사후 관리 지원 등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게 지속해서 정부와 소통하겠다. 중앙회 자체적으로 중대재해 예방 교육을 확대할 계획도 있다. 현재도 50인 미만의 중대재해법 시행 준비를 위해 전국 순회 설명회를 하고 있다. 올해만 43회를 열어 약 5000개사가 참여했다.”
―기업 승계 지원법 관련해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는데.
“맞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시선으로 제도 개선 때마다 어려움을 느껴 왔다. 이제는 업(業)의 승계, 장수 기업 육성이라는 인식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업력 30년 이상 기업은 10년 미만보다 법인세 납부액이 32배나 높다. 원활한 기업 승계는 장수 기업을 육성하고 세수 증대에 기여한다는 의미다. 또 기업 업력이 오래될수록 고용·투자도 증가한다. 업력 40년 이상 기업은 10년 미만보다 고용은 8.42배, 기술 투자는 9.53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대로 승계가 불발되면 전문경영인이 부재한 중소기업은 폐업하기 쉽다. 폐업은 곧 사회·경제적 피해로 돌아간다. 인식 개선을 위해 중앙회 차원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기업 승계 인식 개선 공모전을 열었다. 7∼9월에 진행했는데 열기가 뜨거웠다. 15점을 선정하는데 1389점이 접수됐다. 앞으로도 이런 행사를 계속 고민해 기업 승계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겠다.”
“올해 중소기업의 인력난 문제에 대한 해법 중 하나로 외국 인력 제도 개선을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 양적인 측면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다만 질적인 면에서 숙제도 많이 남아 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입국 전 기본적인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사소통 어려움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16개 송출국에서 운영되는 세종학당의 한국어 보급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또, 4년10개월 취업 기간 중 5번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는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고, 현장에서는 인력 관리에 애를 먹는다. 중앙회는 사업장 변경을 3회로 줄이는 내용을 건의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을 위해 악의적으로 태업, 무단결근 등의 행위를 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강제 출국 조치할 수 있게 하는 등 제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23·24대, 26대에 이어 올해 4번째 중기중앙회장직을 맡았다. 지난 임기 가장 큰 성과는.
“지난해 법제화한 ‘납품대금 연동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동제는 중소기업의 숙원이었다. 원도급업체와 하청업체 간 하도급 거래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변동되면 이를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여·야 협치로 단 한 명의 반대 없이 국회를 통과해 14년 만에 법제화에 성공했다.”
“올해 연말까지는 계도 기간이어서 중소기업의 제도 체감도는 아직 낮은 상황이다. 깊게 뿌리내린 기존의 거래 관행을 바꾸는 일인 만큼 제도 도입만으로 단번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도 시행 6개월 이내에 현장 점검이나 실태조사를 할 생각이다. 모니터링도 계속하고 있다. 위탁기업이 소기업이거나 1억원 이하 소액 계약, 90일 이내 단기 계약은 연동제 적용에서 제외되는 점을 악용하는 대기업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소기업의 현장 체감도를 분석해 개선 방안을 발굴하고 제도 보완에도 앞장설 것이다.”
―납품대금 연동 대상에 전기료 등을 포함하는 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전기료·가스 요금도 연동 대상으로 포함하는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용 전기료가 지난해 27% 급등했다. 그런데도 올해 1월 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7.1%는 인상된 전기료를 납품대금에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형·표면처리·열처리 등 뿌리 중소기업은 원가 대비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더 상황이 어렵다. 전기료, 가스 요금 등 경비도 원가의 10% 이상을 차지할 경우 납품대금 연동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으로 보완이 절실하다.”
“기업들이 탈(脫)중국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중간재를 사들여 제품을 제조해 팔아 왔는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자체적인 중간재 수입이 줄어들어서다. 이제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기업들이 탈출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내년 중국 경제 성장률을 5% 이하, 4%대로 보는 관측이 많다. 지금까지 10%대 성장하던 나라였던 것을 고려하면 큰 뉴스다. 이 연장선에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예상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회 차원에서는 수출 다변화에 힘을 싣고 있다. 올해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연계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1월 아랍에미리트(UAE), 3월 일본, 4월 미국, 6월 베트남까지 숨 가쁘게 움직였다. 내년에도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역점을 두고 수출 활로를 모색할 예정이다.”
―최근 UAE 두바이에서 ‘2023 백두포럼’을 열었는데 의미와 성과는.
“백두포럼은 2010년부터 개최된 중소기업 대표 글로벌 정책포럼이다. 국내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열어 왔는데 올해 처음 중동 국가에서 개최했다. UAE는 중동 국가 중 한국 중소기업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중소기업이 UAE에 수출한 금액은 15억3000만달러(약 1조9950억원)에 달한다. 이번 포럼에서는 농기계, 제약, 의료기기 분야 중소기업인들이 나서서 UAE와 협력을 제안했다. 두바이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은 ‘현지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우리 중소기업이 UAE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게 후속 조치도 점검할 생각이다.”
●1955년 충북 증평 출생 ●로만손(현 제이에스티나) 창업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초대 회장 ●충북대 명예 경제학 박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제6대 관세행정발전심의위원장 ●제23·24·26대 중기중앙회장
대담=김기환 산업부장, 정리=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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