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안녕하셨습니까] R&D 예산삭감 충격에… 과학계 `당혹`
내년 16.6% 삭감된 25조9000억
4대 과학기술원 사업비 12%↓
올해 과학계는 정부의 내년도 R&D 예산 삭감 발표로 메가톤급 후폭풍이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말 대통령의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시 이후 정부의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보다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줄지 않았던 R&D 예산이 단 3일 만에 대폭 삭감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가적 현안과 이슈 해결, 미래 원천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R&D 예산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채 주요 사업비의 25%가 일괄적으로 삭감됐다. 미래 연구자를 키우는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내년도 주요 사업비 역시 12% 가량 줄었다.
정부는 혁신성이 낮은 사업들을 구조조정하고, 그동안 누적된 R&D 비효율과 낭비 요인을 걷어내기 위한 미래 대한민국의 절박함에서 R&D 예산을 삭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정부의 느닷없는 R&D 예산 삭감 결정에 연구현장은 동요했고, 연구자들은 집단 행동을 통해 반발했다. 심지어 4대 과학기술원과 국립대, 사립대 등의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까지 나서 정부의 일방적인 R&D 예산 삭감을 성토했다. 이들 모두는 현장과 소통 없는 R&D 예산 삭감은 미래 대한민국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R&D 예산 증액을 정부에 요구했다.
특히 R&D 예산 삭감에 따른 연구비 부족으로 박사후연구원, 학생연구원 등 젊은 연구인력의 고용불안 우려가 제기되면서 연구현장은 크게 술렁였다.
그제서야 과기정통부는 젊은 연구인력의 신분 불안과 이탈을 막기 위해 고용 유지를 약속으로 내걸고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KAIST 등 4대 과기원도 내년 학생연구원 규모를 유지하고, 자체 재원 활용과 학생인건비통합관리제(풀링제) 도입을 통해 인건비를 보전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에도 연구현장의 반발이 잦아들지 않자, 과기정통부 장관과 차관이 직접 학생연구원 등과 뒤늦게 릴레이 현장소통 간담회를 갖고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달 27일에는 도전적·혁신적 연구는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지 않고, 향후 3년 간 글로벌 R&D에 5조4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R&D 혁신방안'과 '글로벌 R&D 추진 전략'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연구현장과 활발한 소통 없이 급조되고, 재탕·삼탕 정책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은 "R&D 예산 삭감과 R&D 혁신방안 등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이 연구현장의 연구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지 않고 관리자 중심의 일방적인 내용들만 담고 있어 연구 생태계에서 정작 실효성 있게 작동할 지 강한 의문이 든다"며 "그동안 정부가 마련한 정책들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현장에 착근되지 못한 이유를 되돌아 봐야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R&D 예산 삭감에 대한 우려는 미래 세대 연구자에게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KAIST 석·박사 과정생 가운에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고 자퇴하는 사례가 속속 감지되고 있다. 과학고·영재고에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들은 미래 진로를 생각할 때 이공계 진학이 올바른 선택인지 고심하고 있다.
이동헌 KAIST 대학원총학생회장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 발표 이후 우수한 선후배들이 미래 진로에 대한 불안감과 회의감으로 인해 의대 등 다른 진로를 찾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일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이럴 경우 우수한 미래 인재들이 이공계 진학을 꺼려 직업 안정성과 연봉, 처우가 좋은 의대로 진학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미래 대한민국의 과학은 희망이 없어지고, 연구생태계도 붕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이 20일로 다가오면서 R&D 예산 삭감 여부는 국회의 몫으로 던져졌다. 여야는 R&D 예산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증액과 감액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0일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28일 다시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연구현장에서 제기된 묵직한 요구사항들이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될 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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