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위기를 이겨내고 미래를 준비해야
'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 회복 저해'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 상황' '생계비 위기 (cost-of-living crisis)' '광범위하고 예상보다 급격한 경기둔화'.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5월 현 정부가 출범한 무렵부터 차례대로 내놓았던 세계 경제에 대한 우울한 진단들이다. IMF는 올해 4월 전망부터 조심스레 세계 경제 회복을 얘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속도가 완만하고 험난하며 불균등한 회복이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IMF의 경제 진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난 1년 8개월여 동안 정부는 코로나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촉발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와 글로벌 공급망 파동 등 전례 없는 복합위기 상황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과 수출을 회복시키고 금융·외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 왔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년간 근원물가, 성장, 고용 등의 주요 지표를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을 분석한 결과 한국을 두 번째로 높은 성과를 거둔 국가로 평가했다. 여전히 경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국민과 정부가 합심하여 대응해 온 데 대한 자그마한 위안이 되었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고민은 어느 정부에서도 쉼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경제는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사회 체질 개선 지연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민간의 성장기여율이 크게 감소하는 등 경제 활력이 낮아진 상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역동적 경제 구현이라는 국정목표하에 민간과 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마련하여 왔으며, 작년 12월에는 민간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자는 '신성장 4.0 전략'을 발표했다.
신성장 4.0 전략은 미래 첨단 분야의 기술 수준을 높이고, 디지털 서비스 기술의 활용을 확대하며, 반도체·이차전지·조선 등 주요 전략산업에서 격차를 확대함으로써 초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전략이다. 양자·우주·바이오 등 미래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선제적 대비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모빌리티 상용화, 스마트 물류, 인공지능(AI) 활용 확대 등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국민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프로젝트들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신성장 전략은 선진국들의 정책방향이나 주요 씽크탱크의 제안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유럽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일본의 문샷(Moonshot)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주요국들은 미래 기술과 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혁신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 'Korea's next S-curve'에서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과제로 고부가가치 경제로의 전환, 원천기술을 활용한 신산업 육성, 융복합 시대에 걸맞은 산업구조 개편과 AI 등 첨단분야 핵심 인력양성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올 한해 민·관이 함께 추진하는 신성장 프로젝트들이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였고, 9월에는 광주와 성남에 국산 AI 반도체를 활용한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지난달 전남 고흥군에서는 도심항공교통(UAM)의 2025년 상용화를 위한 실증이 있었고, 울산에서는 세계 최초로 육·해상 자율운항선박 테스트베드 구축을 위한 성능실증센터가 준공됐다. 정부도 40여건의 후속대책을 수립하고 14건의 관련 법안을 제개정하고 첨단분야별 인재양성방안을 발표하는 등 정책적·제도적 뒷받침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신성장 4.0 전략은 긴 시계를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전략이다. 정부는 조만간 내년도 추진계획을 마련해 프로젝트별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꾸준한 발걸음을 계속하는 한편, 가시적 성과 창출을 통해 국민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함께할 계획이다. 아울러 민간과 정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과제를 발굴하고 추진하기 위하여 민관 공동협의체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범부처 협업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지난 약 20년 간 우리 10대 수출품목에 디스플레이 단 하나만 새로이 추가됐다고 한다. 60년대 이후 고성장기에 20년마다 5개 내지 7개씩 추가됐던 데에 비하면 우리 경제와 산업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위기라는 말에는 기회라는 뜻이 들어 있다. 글로벌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통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해 나가면 우리가 처한 장기적·구조적 위기를 미래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신성장 4.0 전략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발판이 되고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
〈필자〉1971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행시 37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 종합정책과장, 혁신성장추진기획단장, 경제정책국장, 미주개발은행(IDB) 선임스페셜리스트,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 거시경제와 정책기획 분야 요직을 거쳐 지난 8월 기재부 제1차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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