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보다 무서운 응시료 인상 … 취준생·직장인 '한숨'
올해 8% 올려 8만원대 중반
소비자물가상승률 2배 웃돌아
한국사능력시험도 22% 상승
대체 시험없어 울며 겨자먹기
취준생 "일상지출 더 줄일판"
직장인 김 모씨(33)는 최근 어학 성적이 필요해 토익스피킹 시험을 신청하다가 깜짝 놀랐다. 시험 한 번 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8만4000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인사고과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어학 시험을 보고 높은 점수를 꾸준히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을 안 볼 수도 없었다. 결국 시험을 치른 김씨는 돈을 아끼기 위해 지인과의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그는 "승진을 위해서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어학 성적을 받아야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다"면서 "정작 시험 시간은 30분도 채 안 되는데 9만원 가까이 써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물가 상승으로 서민 고통이 심화되는 가운데 커리어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주요 시험 응시료마저 일제히 오르면서 직장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또 다른 직장인 김 모씨(29)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최근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을 보기 위해 6만원 가까이 지출했다. 오픽 공식 응시료는 8만4000원인데 회사에서 응시료를 일부 지원해줘 그나마 아낀 것이다.
오픽은 성적 유효기간이 2년밖에 안 돼 인사고과 관리를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시험을 쳐야 한다. 응시료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성적을 필요로 하는 직장인들은 부담을 느낀다.
주요 시험 응시료는 꾸준히 인상되는 추세다.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어학 시험 중 하나인 토익 응시료는 2021년 4만4500원에서 4만8000원으로 상승했다.
토익스피킹은 지난해 7만7000원에서 그해 7월 8만4000원으로, 오픽은 지난해 7만8100원에서 올해 8만4000원으로 인상됐다. 올해 11월 기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3%를 기록할 때 토익스피킹과 오픽 응시료는 이를 약 3배 웃도는 8~9% 올랐다. 일반 물가 상승보다 '시험플레이션(시험+인플레이션)'이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다.
'영어 실력 가늠 척도'로 불리는 토플은 이보다 더하다. 한국에서 토플 1회 응시료는 지난해 200달러(약 26만원)에서 220달러(약 28만원)로 올랐다. '응시료가 가장 비싼 시험' 중 하나에 들어간다. 환율에 따라 응시료 가격 변동이 심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올해부터는 한화로도 계산이 가능해졌다.
어학 시험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 시험도 응시료가 이미 올랐거나 상승을 앞두고 있어 취업준비생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올해 10월 21일 치러진 67회부터 기본과정 기준 1만8000원에서 2만2000원으로, 심화과정 기준 2만2000원에서 2만7000원으로 4000~5000원씩 응시료가 상승했다.
자격증 시험은 취업 준비에 꼭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정기적 수입이 없는 취준생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된다. 세무사 자격시험은 내년부터 1·2차 응시료가 각각 3만원에서 6만원으로 2배 뛸 예정이다.
여기에 시험 준비를 위해 필요한 교재비까지 고려하면 실제 응시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더 늘어난다. 올해 기준 토익 교재 가격은 리딩·리스닝을 포함해 5만원에 달한다. 토플 교재 역시 2만~3만원 수준인데, 난도에 따라 여러 교재를 풀어봐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비용은 더 증가한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직장인과 취준생 등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국민내일배움카드'를 통해 학원 수강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토익·오픽 등 어학이나 한국사 등 일부 자격증 시험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용정보원 관계자는 "직업훈련포털 홈페이지에서 검색이 안 되는 시험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며 "어학 시험은 예전부터 국비 지원이 안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김 모씨(27)는 "요즘 대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영어나 자격증 시험 성적을 안 보는 곳이 없는데 국가 지원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응시료는 계속 오르기만 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작 이들 시험을 대체할 다른 시험도 없어서 취준생 입장에서는 시험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는 것과 먹는 것 등 일상생활에서 지출을 더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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