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은 홍콩 ELS로 신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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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신뢰가 생명 아닌가요. 내가 맡긴 돈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으로 돈거래를 하는 것인데, 은행이 신뢰를 저버렸습니다."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에 투자한 투자자의 절반가량인 48%가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은 고령자, 은퇴자, 주부 등 금융취약계층에게 홍콩H지수 ELS 투자를 권유할 때 특히 주의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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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신뢰가 생명 아닌가요. 내가 맡긴 돈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으로 돈거래를 하는 것인데, 은행이 신뢰를 저버렸습니다.”
지난 15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집회에서 만난 한 투자자가 한 말이다. 은행 직원이 “원금 손실은 절대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다며, 수십 년간의 거래로 쌓인 신뢰 하나로 홍콩H지수 ELS에 투자했다고 했다. 이 ELS 상품은 홍콩H지수의 주가가 폭락한 탓에 원금이 반 토막 날 위기에 처했다.
투자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투자자 본인에게 있지만, 은행의 ELS 판매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분명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은행은 ELS를 팔 때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자필 서명을 받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절차를 모두 이행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식 행위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ELS 투자자 상당수는 고령자다.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에 투자한 투자자의 절반가량인 48%가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90대 이상에게도 91억원어치를 팔았다. 이들이 한두 번의 설명으로 ELS의 상품 구조와 위험성을 모두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은행도, ELS를 판 은행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은행은 고령자, 은퇴자, 주부 등 금융취약계층에게 홍콩H지수 ELS 투자를 권유할 때 특히 주의했어야 한다.
홍콩H지수가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계속 ELS를 판 것도 문제다. 시장 상황을 외면하고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한 것인데, 정직과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하는 은행원으로서의 직업윤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수익률은 높지만, 손실은 나지 않는다’는 식의 감언이설로 ELS 투자를 유인했다면 금소법에서 명시한 ‘부당권유행위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당권유행위란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단정적인 판단을 제공하거나 확실하다고 오인하게 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알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고과를 빌미로 직원들이 무리한 영업을 하게 만든 은행의 행태가 불완전판매 논란을 자초했다.
은행에 대한 신뢰는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 올해 은행은 역대 최대 규모의 이익을 냈지만, 수천억원대 횡령 사고에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논란 등으로 가장 큰 자산인 신뢰를 잃었다. 당장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수 있지만, 고객을 잃은 뼈아픈 실책은 초라한 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취임한 양종희 KB금융지주 신임 회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임직원에게 자주 한다고 한다. 고객에 대한 정의부터 금융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금융의 기본은 신뢰다. 상호 신뢰 하에 계약이 체결되는 것이 금융업의 본질이다. 내년에는 은행이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고객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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