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 돕는 우리 몸속 여과기 신장은 안녕하신가요
건강검진에서 "신장(콩팥) 기능에 유의해야 한다"는 소견을 종종 듣는 수검자들이 있다. 하지만 자각증상이 없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어 대다수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장 건강은 수명에 직결된다며 자각증상이 없어도 빨리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생활습관 개선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성신장병(콩팥병) 치료 연구에 40년 이상 종사해온 일본 우에즈키 마사히로(上月正博) 도호쿠대 명예교수(야마가타현립 보건의료대학 이사장)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신장이 나빠지면 노폐물이 혈관을 손상시켜 혈관이 딱딱해지고 좁아지는 동맥경화가 진행된다. 게다가 당뇨병이나 고혈압으로 신장이 나빠진 경우 뇌나 심장혈관에서도 동맥경화가 진행되고 있어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등을 일으켜 사망으로 이어진다"며 "신장 기능=수명이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신장은 허리 부근에 좌우 대칭으로 2개 있다. 크기는 주먹만 한 장기로, 갈색콩(파바빈·Faba bean) 모양이다. 무게는 한 개당 100~130g 정도다. 신장에는 '사구체'나 '요세관' 같은 미세 여과장치가 빼곡히 모여 몸의 노폐물 제거와 함께 필요한 것을 흡수하고 혈압 조절에도 간여한다.
신장은 50대 이후 기능이 점점 떨어진다. 젊을 때는 이상이 없었지만 50·60대에 건강검진을 받고 '신기능' 항목에서 '요주의'라는 지적을 종종 받는 것도 바로 신장 기능 감소가 고령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신장은 70대가 되면 20대보다 기능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생활습관병이 있으면 기능 저하가 가속화된다.
신장 기능이 만성적으로 저하되면 '만성콩팥병(CKD·Chronic Kidney Disease)'이 된다. 만성콩팥병 환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1%(남자 10.4%·여자 11.8%)로 추정하고 있다. 만성콩팥병이 더욱 악화되면 체내에서 노폐물을 충분히 배설할 수 없게 되는 '신부전'으로 이행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말기 신부전'에 걸리면 회당 4~6시간, 주 2~3일 인공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상호 강동경희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정상인도 40대 이후부터는 매년 사구체여과율이 1㎖/분당/1.73㎡가량 노화로 인해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혈관에 손상을 유발하는 당뇨병, 고혈압을 오래 앓거나 콩팥에 손상을 유발하는 사구체신장염이 있으면 기능 저하가 더 빨리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또한 다낭성신증과 같은 유전질환, 특정 약물(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일부 항생제 등)이나 독성 물질(헤비메탈 등)에 오랜 시간 노출될 경우 콩팥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만성콩팥병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2년 13만7003명에서 2022년 29만6397명으로 10년간 2배 넘게 증가했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일본은 만성콩팥병 환자가 2005년 1330만명에서 2015년 1480만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우리나라도 만성콩팥병 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신장은 우리 몸에서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크게 '혈액 여과'와 '전신 조절·유지'로 요약할 수 있다.
신장의 주요 기능인 노폐물 제거는 '네프론'이라는 기관이 맡고 있다. 네프론은 신장 구조와 기능을 이루는 기본 단위로, 오줌을 생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프론은 신장 한 개당 약 100만개, 2개로 치면 우리 몸에 약 200만개가 있다. 네프론은 사구체와 요세관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털실 같은 모세혈관 덩어리인 사구체가 몸에 필요한 성분을 걸러내 노폐물을 배출한다. 배출된 여과액(원뇨) 안에는 수분이나 당, 염분 등 몸에 필요한 것이 섞여 있기 때문에 요세관이 거기에서 필요한 만큼 회수한다. 신장의 사구체에는 1분에 약 100㎖ 혈액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사구체에서 여과돼 생긴 원뇨 중 99%는 요세관에서 재흡수되고 약 1%가 소변이 된다. 즉 하루 24시간에 150~180ℓ, 드럼통 한 개 분량의 원뇨를 요세관이 구분해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몸 밖으로 배출되는 소변량은 약 1.8ℓ다. 우에즈키 교수는 "신장 기능 저하는 네프론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 일단 줄어든 네프론은 재생되거나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장은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조절 및 유지'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나트륨, 칼륨, 인,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성분 조절, 적혈구를 만들도록 지령을 내리는 조혈호르몬 생산, 혈압 조절 호르몬 생산, 뼈 대사에 관련된 비타민D를 활성화하는 것도 신장의 주된 일이다. 이 때문에 신장이 어느 정도 나빠지면 부종과 빈혈이 생기고 혈압이 오르고 뼈가 약해진다. 신장이 원활하게 작용하는 덕분에 항상 적절하게 통제된 혈액이 온몸을 돌고 장기가 유지되는 것이다.
부종이나 나른함과 같은 자각증상은 만성콩팥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나타난다. 그 이유는 신장이 2개 있기 때문이다. 신장은 2개 중 1개를 이식해도 건강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예비력이 있다. 따라서 건강검진이나 일반 진료 때 신장에 조금이라도 이상(요주의)이 발견되면 곧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장 기능 정도는 어떤 수치를 보면 알 수 있을까?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건강검진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다.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았다면 '요단백'과 '혈청 크레아티닌' 'eGFR' 등 3가지 항목에 주목해야 한다. eGFR은 정밀 측정을 요하는 사구체 여과량(GFR)을 간소화해 혈청 크레아티닌의 값과 나이, 성별로 산출된 '예상 사구체 여과량(estimated Glomerular Filtration Rate·eGFR)'을 말한다.
요단백과 혈뇨는 소변검사로 알 수 있다. 신장의 사구체는 본래 단백질처럼 큰 분자가 통과하지 못하지만, 사구체 여과 기능이 떨어지면 단백질이 소변 안으로 새어 나온다. 소변단백이 0.15(g/gCr) 미만이면 정상(-), 0.15~0.49(g/gCr)이면 경도단백뇨(±), 0.50(g/gCr) 이상이면 고도단백뇨(정도에 따라 1+, 2+, 3+ 등)로 표기된다. 또한 신장 기능이 악화되면 혈뇨가 나올 수도 있는데, 혈뇨가 나오면 '잠혈'항목이 '±' '+'(정도에 따라 1+, 2+ 등)로 표기된다. 약국에서 소변검사제를 구입해 간편하게 검사해볼 수도 있다. 시험지에 소변을 뿌리고 색의 농도로 요단백 유무와 함께 혈뇨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당뇨병이 있다면 요단백이 마이너스(-·정상 수치)라도 방심할 수 없다. 당뇨병은 신장 기능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악화 속도가 빨라 요단백이 플러스(+)가 됐을 때에는 이미 몇 년 내 혈액투석을 해야 할 정도로 악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 환자는 요단백보다 분자가 더 작은 요중알부민 수치를 의료기관에서 확인해야 한다. 크레아티닌은 근육에 들어 있는 크레아틴이라는 아미노산이 대사된 후 생기는 노폐물이다. 원래는 소변으로 배출되지만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여과가 잘 되지 않아 혈액 속에 쌓이게 된다. eGFR은 신장 여과 기능(분당 소변을 얼마나 배출하는 힘이 있는지)을 추산한 값이다.
만성콩팥병은 eGFR 수치에 따라 G1·G2·G3·G4·G5 등 1~5단계로 분류하며, G3~5단계가 만성콩팥병에 속한다. eGFR은 수치가 낮을수록 중증도를 의미한다. 단계별로 보면 △1단계(GFR≥90)는 정상 기능이지만, 다른 지표나 증상으로 손상의 징후가 나타남 △2단계(GFR 60~89)는 경도의 기능 저하·손상의 기타 징후와 함께 나타남 △3단계(GFR 30~59)는 중등도의 기능 저하·다양한 합병증 발생 시작 △4단계(GFR 15~29)는 중증의 기능 저하·빈혈, 뼈-미네랄 질환 등 합병증 악화 △5단계(GFR < 15)는 말기 질환·이 단계에서는 투석 또는 이식이 필요함 등이다. eGFR이 60(㎖/분당/1.73m) 미만(G3 이상)이면 신장 기능이 원래의 60% 미만인 것으로 간주돼 만성콩팥병이 의심된다. G3가 되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지고, 수치가 더 낮아져 G4가 되면 나른함이나 피로 증상을 느끼게 되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한층 높아지게 된다. G5가 되면 고도 저하 말기 신부전으로 간주돼 인공투석이나 신장이식이 검토된다.
G1은 '정상'이므로 우선 안심해도 좋다. G2는 '정상 또는 경도 저하'이며 자신이 G2라고 알면 당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장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떨어진다.
신장 기능 저하는 자기도 모르게 신장을 손상시키는 '식사' 영향도 크다. 우에즈키 교수는 "매일 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간다는 사람, 접대가 필수인 사람, 바빠서 컵라면이나 시판 스낵으로 배를 채울 때가 많은 사람은 신장 손상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매일 식사나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만성콩팥병 치료는 신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안정이 제일'로 여겨졌지만, 약물 치료, 식사 개선, 운동을 결합하는 '신장재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어느 정도 진행된 만성콩팥병도 신장 기능 개선이나 인공투석 없이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다. 만성콩팥병 치료는 규칙적인 검사와 전문가 상담이 가장 중요하다. 이상호 교수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약물은 콩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건강식품이나 보조제 역시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혈압과 혈당, 체중 관리도 중요하다. 고혈압은 콩팥의 추가 손상을 초래한다. 혈당을 정상 범위 내로 유지하면 신장 손상을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 체중은 혈압과 혈당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만큼 균형 잡힌 식단과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 콩팥 기능이 떨어지는 정도에 따라 단백질, 칼륨, 인 등의 특정 영양성분 섭취를 제한할 수 있다. 물은 하루 4~6잔 섭취가 중요하지만, 콩팥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면 너무 많은 물을 섭취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알코올은 적당히 섭취해야 하며 흡연은 손상된 콩팥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에 금연해야 한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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