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이순신 3부작의 종지부… ‘서울의 봄’ 여세 이어갈 수 있을까 [엄형준의 씬세계]

‘명량’ 1761만, ‘한산’ 726만. 그리고 ‘노량.’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두 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2014)과 ‘한산: 용의 출현’(2022) 두편으로 2500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관객 동원력을 보여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20일 개봉한다.

‘임진왜란’이라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전세를 역전시키며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처럼, 그를 다룬 영화도 한국 영화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영화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모든 상업가 영화 그렇지만, 순제작비만 286억원이라는 한국영화 중 손 꼽히는 투자비가 들어간 이번 영화의 흥행이 화두인 건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올해 한국 영화 침체 우려와 김 감독의 이순신 시리즈 두편이 좋은 성적을 냈고 최근 개봉한 역사물인 ‘서울의 봄’이 천만관객 돌파를 바라보는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

영화 ‘노량’은 이순신 장군의 생의 마지막 전투이며, 임진왜란이 사실상 막을 내리는 전투인 ‘노량해전’을 다룬다. (이후 노량해전에서 도망친 일본군에 대한 소탕전이 벌어지긴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7년째인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왜군은 조선에서 퇴각하려 한다. 당시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함께 고니시 유키나카 군이 주둔한 순천 왜성을 봉쇄했고, 이에 고니시는 시마즈 요시히로 군에 전령을 보내 협공 작전을 펼치려 한다. 이를 눈치챈 이순신 장군이 먼저 노량으로 나아가 시마즈군을 격퇴했고, 협공을 벌이려던 고니시는 배를 돌려 일본으로 퇴각한다.

일본군이 후퇴하는 마지막 전투라고는 하지만 전장은 치열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싸우지 않은 고니시 군을 제외하고도 일본 군의 숫자는 2만여명, 배도 350척 이상이었다. 조선 수군은 병사 7000∼1만명에 배는 200척 내외, 명나라 수군은 1만8000여명에 300여척이 투입됐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대부분의 배를 잃고 1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조선 수군도 수백명이 죽는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이순신 장군과 수많은 무장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전투이기도 하다.

노량에 담고자 한 것은

김한민 감독의 발언을 빌리면, 앞선 ‘명량’은 모두가 패배감에 빠져 있을 때, 이에 굴하지 않고 불 같은 뜨거운 의지로 극복해내는 이순신의 모습을, ‘한산’은 철저한 대비와 전략으로 극심한 수세적 국면을 마침내 공세적 국면으로 뒤집어내는 냉철한 기운의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노량은 “그 길고 참혹했던 7년간의 전쟁을 어떻게 올바로 종결하려 죽음까지 불사하며 애쓰셨는지를,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과 같은 양면의 모습으로 그 분의 대의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게 김 감독의 변이다.

영화의 핵심은 노량해전 전투신으로 무려 전체 상영시간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대규모의 포격전과 선박 충돌이 박진감이 넘치고, 원테이크로 진행되는 백병전은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100여분간 길게 이어지는 전투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 치열한 전투 영화에 이순신 장군의 고뇌를 함께 녹여내려 했다. 이순신 장군은 ‘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워야만 하는가’에 대한 설명과 전쟁의 참상을 담아내려 애쓴다.

명나라 도독인 진린은 “그만하면 됐지않느냐. 이제 보내 주자”며 이순신 장군에게 일본군의 탈출을 용인하고 피해를 줄일 것을 설득한다. 이순신 장군은 이에 “이대로 전쟁을 끝낼 수 없다.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가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일본군은 일본군대로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순신이라는 후환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전투 백미, 내면 연기 아쉬움

시리즈 마지막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전투장면은 기술적으로나 연출로나 3편 중 가장 뛰어나다. 실제 비율의 판옥선과 안택선 2∼3척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초대형 실내세트와 야외세트를 조성해 촬영했고, 후보정에도 상당한 시간과 자본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명량을 하던 2013년과 그로부터 10년 후의 대한민국 영화 촬영 테크닉이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도 물과 관련된 작품에 있어서는 기술들이 계속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촬영 후기를 밝혔다. 

전투 장면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면, 영화 속 이순신의 깊은 내면과 고뇌의 깊이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김 감독은 ‘명량’의 이순신으로는 최민식, ‘한산’은 박해일, ‘노량’은 김윤석을 택했는데, 이순신의 연기로는 카리스마가 돋보인 명량을 여전히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한산은 젊은 이순신인 박해일의 차분한 연기 속에 시나리오가 돋보인 작품이다. 한산은 ‘용의 출현’이란 부재답게 등장인물만큼이나 전투선박인 거북선의 수훈이 도드라 지기도 했다.

이순신의 아내 방씨부인이 잠시 등장하는데, 편집에서 일부 장면이 삭제되며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연기자 중에선 일본 장수인 시마즈 역을 맡은 백윤식의 살기어린 연기가 돋보인다.

‘서울의 봄’과 흥행 대결

흥행을 위해선 개봉 초기 기세 등등한 ‘서울의 봄’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노량은 개봉 첫주 서울의 봄보다 더 많은 상영관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가진 높은 관심도와 화려한 전투신이 초기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같은 날 개봉하는 DC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흥행도 변수다.

극장가에선 두 영화가 모두 윈윈하며, 자연스럽게 노량으로 관객이 이동하길 바라고 있지만, 올해 극장가에선 대부분의 경우 1위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는 패턴이 이어져 왔다. 여름 휴가철 흥행 시즌에는 ‘밀수’가 초기 관객을 독점하며, ‘더 문’, ‘비공식작전’이 흥행에 실패했고, 이후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밀수’와 큰 차이로 관객을 흡수했다.

‘서울의 봄’ 입장에선 개봉 후 ‘노량’ 전까지 적수가 없는 상황으로 ‘노량’이라는 강적을 만난 셈이다. ‘서울의 봄’은 18일 누적관객 900만명을 돌파했다. 예매율은 ‘노량’이 이 19일 자정 기준 47.6%, 23만명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서울의 봄은 예매율 18.9%, 예매관객수는 9만1000명이다. 예매율은 전체 영화 중 단일 영화가 차지하는 예매 비율을 말한다. 노량의 손익분기점은 약 720만명이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