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부겸, 정태근과 회동…제3지대 모색?
'이낙연 신당' 등 야권 내 정계개편 상황의 키를 쥔 것으로 평가받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더라도 비대위원장을 맡는 등 정치 참여를 재개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지난달 초 이낙연 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당 창당을 시사한 이 전 총리는 동력 확보를 위해, 이재명 대표는 이 전 총리를 견제하고 '당의 단합'을 이루기 위해 각각 김 전 총리에게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김 전 총리와 오는 20일 회동을 앞두고 있지만, 김 전 총리가 이 대표의 '포섭'에 순순히 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안팎의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1월 초 김 전 총리는 이 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고, 정치를 재개할 뜻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전직 총리 간 회동 사실은 이 전 총리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전해졌지만, 당시 김 전 총리의 발언 내용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벗어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전 총리가 직접 비대위원장을 맡는 방안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설사 20일 회동에서 비대위원장직을 제안하더라도 거절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이 전 총리 측에서는 김 전 총리가 당시 회동에서 한 이야기에 대해 "(이재명 지도체제에) 부역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김 전 총리도 이재명 지도체제에 비판적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풀이했다. 다만 김 전 총리 측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그가 이 대표와 손잡고 비대위원장을 맡는 방향이든, 이낙연 신당에 참여하는 방향이든 어느 쪽으로도 적극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이같은 해석에 선을 그으며 당시 회동에서 이재명 지도부에 대한 평가 등 구체적 현안은 전혀 언급되지도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 전 총리 측은 회동을 먼저 제의한 것도 김 전 총리 쪽이었다고 전했지만, 김 전 총리 측은 '이 전 총리가 귀국 후 계속 회동 요청을 했고, 이같은 요청에 응하는 과정에서 한 차례 먼저 연락을 건네게 된 것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그간 정치적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아온 김 전 총리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이나 이 전 총리와의 회동에 나서게 된 상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김 전 총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민주당 의원은 "김 전 총리가 지금까지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 측면이 있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총리가 이른바 '제3지대' 인사와 접점을 형성한 것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김 전 총리는 최근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과 만나면서 정국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정 전 의원은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 등과 함께 정치혁신포럼 '당신과함께'를 창립해 대표를 맡고 있고, '당신과함께'는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이끄는 '새로운선택'과 연합 가능성을 열어놓고 꾸준하게 교류해 오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최근의 여러 회동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일정 부분 비판적 인식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제3지대 신당 경로를 포함한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고 좀 더 당 안팎의 상황을 지켜보는 게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20일로 예정된 이 대표와의 회동이 김 전 총리가 향후 행보를 정할 첫 번째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포함, 어떤 통합‧쇄신안을 들고 오는지 보고 판단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 전 총리는 20일 회동에 앞서 전날 영화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에서 이 대표와 만나 "야당의 물줄기들로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도록 대표께서 더 노력해달라"고 '큰 폭의 행보'를 주문하기도 했다.
2차 분수령은 민주당이 선거법 개편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총리 퇴임 후 정계를 떠나 있다가 최근 민주당이 병립형 비례제 회귀 조짐을 보이자 언론 인터뷰에 나서며 오랜만에 등판한 바 있다. 연동형 비례제는 김 전 총리의 평소 지론인데, 당이 현행 준연동형을 병립형으로 되돌린다면 당 내에 자신의 공간이 없다고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이재명 지도부의 판단, 이에 따른 김 전 총리의 판단에 따라 야권 내 정치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셈이다. 김 전 총리는 민주당 안팎에서 호감형 지도자로 거론되고, 그의 거취 결정에 따라 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등 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이나 제3지대 인사들의 움직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 제3지대 창당을 추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3당 성공 여부는 김 전 총리가 깃발을 드느냐 마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고 한다.
한편 이른바 '3총리 연대설'과 관련, 정세균 전 총리의 경우 다른 두 전직 총리와의 연대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는 전망이 대다수다. 오히려 정 전 총리는 당이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경우 이 대표의 자리를 대신할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다. 이낙연-김부겸 연대설도 현 시점에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양 측과 모두 소통하는 한 정치권 인사는 "이 전 총리가 너무 빠르게 신당 창당 선언으로 치고 나가면서 김 전 총리가 애매한 상황이 됐다. 두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선 이 전 총리가 템포 조절을 하고 김 전 총리가 들어올 만한 룸(공간)을 터줘야 한다"고 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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