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감사 대상인지도 모르는데”…감사인 선임부터 하라는 외감법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cap@mk.co.kr) 2023. 12. 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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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감사인 선임 계약 시기 늘려 달라”
사업연도 개시일부터 45일 규정 “촉박”
경영권에 대한 중대 침해로 여기면서도
“꼬투리 잡힐까” 감사인 교체도 어려워
중소기업 지원책 경청하는 중기 관계자들.[사진 제공 = 연합뉴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이른바 외감법 때문에 외부감사 대상이 되는 스타트업, 중소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외부 감사인을 선임하는 기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다.

19일 스타트업,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외감법을 두고 현장에서는 외부감사 계약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외부감사 대상인지 여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이 감사인을 선임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외부감사 대상 기업인데 기간 내 감사인을 선임하지 않으면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회계감사 결과에서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당초 외감법은 사업연도 개시 후 4개월 이내에 그 대상 기업이 감사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했다. 사업연도 개시일(12월말 결산 법인은 1월 1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감사인을 선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감사계약 재계약을 놓고 감사인들의 ‘독립성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전년도 감사의견이 표명되기 전에 차년도 감사계약 체결 시기를 45일 이내로 대폭 앞당겼다. 12월말 결산 법인은 차년도 1월 1일부터 45일(2024년 2월 14일) 이내에 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는 셈이다. 지난 2018년 11월부터 이같이 시행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0월말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은 4만1274곳이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은 자산 증가, 유한회사 편입 증가 등의 영향으로 2020년 3만1744곳, 2021년 3만3250곳 지난해 3만7519곳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외부감사 계약 시기를 45일 이내로 대폭 앞당긴 데 대해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감사업무란 것이 여차하면 갑질로 변질될 수 있는 우려가 높은 데도 전년도 감사업무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계약부터 먼저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하는 사람들을 다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외부감사를 강제로 받는 것도 모자라 감사인 선임 계약 시기까지 앞당긴 것은 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외부감사 대상이 되려면 직전연도 자산, 매출, 부채 등의 규모가 특정 규모 이상인 경우에 해당하는데, 회계연도 종료 후 45일까지 이를 파악하는데 실무적으로 어렵고 법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료 제공 =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상법에 따라 주주총회 가능 기한과 법인세법에 따라 법인세 신고기한이 90일인 점 등을 들어 회계연도 종료 후 45일까지는 결산이 전혀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감사 대상인지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감사계약부터 먼저 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외부감사 대상이 되지 않으면 4월 이내에 외감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을 들어 나중에 외감계약을 해지해도 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은 “법논리상 정상적인 상황을 먼저 규정하고 예외적인 상황을 단서로 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감사계약을 체결하고 해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도 꼬집는다. 기업 입장에서 감사 착수금은 물론, 감사업체 선정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감사업무 종료 전 기존 감사업체 변경이 쉽게 가능하겠냐고 되묻는다.

감사인의 조기 선임은 감사업체 변경을 어렵게 해서 감사인에 힘을 실어주자는 의도가 담겼다. 외감법 취지에 따라 내부 감시인과 독립된 감사인이 회계 등에 대한 감사의견을 독립적으로 행사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자는 취지다. 그래야 투자자 등 이해당사자를 비롯해 기업의 건전한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런 구조에서 기업과 생각이 다른 감사인을 선임하게 되면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는 매우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한다. 회계성과가 기업의 신용평가나 영업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대손충당금 문제나 재고자산 평가 등은 감사인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감사인이 기업과 입장차가 크더라도 다른 감사인을 선임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이에 외감계약 체결 시기를 원래대로 충분한 기한을 제공하거나 기업이 필요할 때 계약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런 민원은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정부 측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회계업계 관계자는 “외부감사 대상 여부가 정해져야 하는 ‘초도감사’의 경우 4개월 이내 선임으로 그 기한을 여유 있게 두고 있다”며 “45일 이내는 계속감사 기업에 한정해 제도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과 생각이 다른 감사인을 선임하게 될 경우를 걱정하는 것은 사전에 적정의견을 준다고 하는 전제로 감사인을 선임하는 ‘감사의견 구매 행위’를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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