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좋은 경로 추천해줘"…'바퀴달린 스마트폰' 시장 열린다
AI비서로 길안내·쇼핑·예약·뉴스검색 고도화
정비소 가지 않고도 무선으로 수리·업데이트 가능
BMW·벤츠, 내년부터 '레벨3' 자율주행 구독 서비스
"현 위치에서 여수까지 경치가 아름다운 경로로 추천해줘. 가는 길에 전주를 경유지에 추가하고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을 알려줘."
"가을 하늘 아래 황금빛 들판과 반짝이는 바다가 어우러지는 서해안고속도로로 경로를 안내해드릴게요. 1시쯤 도착 가능한 케어키즈존 식당인 전주의 OOOO을 경유지에 추가해드릴게요. 식당 인근 300m 지점에는 전기차 충전소도 있어요. 이 여행의 일정표를 아내 분에게도 전달해놓을게요."
기아가 내년 출시할 소형 전기 SUV 'EV3'에 처음으로 탑재할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운전자가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이다. 기아는 지난 10월 'EV 데이'에서 내년에 출시하는 전기차에 이같은 'AI 어시스턴트'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를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처럼 쓸 수 있는 이른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 시장이 내년부터 본격화한다.
차량 안에서 결제·통신·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를 누릴 수 있고, 제조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간단한 업데이트만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진화하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SDV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830억달러(약 112조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SDV는 소프트웨어(SW)를 바탕으로 차량 안에서 장치를 제어하고 주행 성능과 편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자동차를 뜻한다. 산길을 주행할 때 자동차의 높낮이를 내부의 버튼으로 조절하거나 '스포츠' '에코'와 같은 주행 성능 정도를 조절하는 게 현재도 일부의 차량에서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대부분의 차에서 훨씬 정밀하게 이 같은 기능을 운전자 취향대로 바꿀 수 있다. AI비서를 통해 차 안에서 쇼핑·영화·진료예약을 이용할 수 있고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원격으로 차량수리도 가능해진다.
자동차 SDV 시장은 테슬라가 전기차에 SW를 적용하면서 태동했다. 기존 완성차 제조사가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테슬라는 SW로 재편해 판도를 바꿨다. 전기차 성능을 제조사에서 제공한 SW로 업데이트(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하고 카메라, 레이더 등 전장 부품으로 고도화했다.
이후 내연기관차 시장이 정점에 이르고 전기차 등 자동차에 통신 기능이 강화된 차량이 늘면서 제조사들은 SDV 시장을 새 먹거리로 보고 있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의 SDV화'를 선언한 현대차그룹은 내년 1월 열리는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SDV 모빌리티 초기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다. SDV에서는 차량 내에서 쓸 수 있는 자체 개발 운영체제(OS)가 중요한데, 현대차그룹은 CES를 통해 OS의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차량 내부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결제, 음악 재생, OTA 등이 확대되고, 지도 서비스 등이 더 입체화 될 계획이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이 부분에만 18조원을 투입한다.
볼보는 티맵모빌리티와 공동개발한 AI 기반 2세대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내년에 선보인다. 현재는 AI비서를 통해 길 안내, 음악 재생, 뉴스 탐색 등이 가능한데 이를 확대해 전화·문자 송수신 자동 기능, 실시간 충전소 이미지 확인 등을 추가한다. 볼보는 이와 별도로 지난달 스웨덴 예테보리에 369억원을 투자해 SDV 연구개발센터를 열어 SDV 소프트웨어 신규 개발에 돌입했다. 스웨덴 볼보에서 분사한 전기차 업체 폴스타는 '폴스타 2'에 아마존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프라임 비디오'를 탑재할 예정이다.
혼다는 소니와 합작으로 운전석 앞쪽에 5~6개의 화면을 띄울 수 있는 터치 디스플레이로 영화·음악을 감상하고, 소니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도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을 개발 중이다. 빠르면 2025년 선보인다.
SDV의 종착점은 자율주행차다. 벤츠, BMW 등 독일 전통 업체들은 이 부분에서 적극적이다. BMW는 내년 1월부터 독일에서 신형 7시리즈를 구입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유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자율주행 레벨 3는 조건부 자율주행을 뜻하는 것으로, 고속도로 같은 일부 조건에서 자동차가 주도권을 갖는 수준의 운행 단계다. 벤츠 역시 내년 미국 일부 주(州)에서 S클래스 구매자를 대상으로 구독료를 받고 레벨 3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작한다.
업계 관계자는 "마치 스마트폰에서 수시로 SW를 업데이트해 새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것처럼 애플리케이션만 내려받으면 내 전기차를 전설적인 카레이서 '미하엘 슈마허'가 만들어놓은 세팅으로 달려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SW 탑재가 쉬운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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