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경호원 쓰던 ‘휴대용 해시계’ 복원

유병훈 기자 2023. 12. 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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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해시계 원구일영’ 작동 원리도 규명
조선후기에 휴대가 가능했던 원구형 해시계 ‘원구일영(圓球日影)’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원구일영은 조선시대 과학문화재로 처음 보고된 구 형태의 해시계다. 두 개의 반구 중 하나에는 1890년 고종 재위 당시 고종의 경호원이던 중추원 1등의관 ‘상직현’이란 인물이 제작했다고 적혀있다. 미국을 떠돌던 원구일영은 지난해 3월 경매에 나왔다가 국외소재문화재 재단에서 낙찰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과학관은 19일 조선후기에 휴대가 가능했던 원구형 해시계 ‘원구일영(圓球日影)’을 복원하고 133년 만에 독창적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원구일영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원구형 해시계라는 점,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도 시간 측정이 가능했다는 점, 시각 표기에서 앙부일구와 혼천시계의 전통을 따랐다는 점에서 독특한 과학문화 유산이며 과학기술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외형상 구조는 동 재질의 원구영 해시계 일영(日影), 황동으로 만든 북극고도 조정장치와 받침기둥, 철·상감 등을 이용한 받침대로 구성된다. 일영은 남북의 극축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고, 지름 9cm크기의 원구(圓球)는 상단 반구와 하단 반구인 2개의 반구(半球)를 조립해 하나의 원구가 된다.

원구일영의 표면에는 시보장치와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시각표기인 시각선(時刻線)은 상단 반구 둘레에 표기돼 있다. 하루를 96각분으로 나눴는데, 우선 12시간의 12지(十二支)에 매시를 초(初)·정(正)으로 2등분한 뒤, 초와 정을 다시 4등분했다. 한 시를 모두 8개의 각(刻)으로 나타낸 셈이다. 96각은 1654년부터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도입으로 사용됐다.

상단 반구에 음각으로 12지 중 인(寅)~술(戌) 9개만 표기되고 해(亥)·자(子)·축(丑)은 표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12지 오정(午正) 아래 둥근 시보 창에 표시되는 시패도 인(寅)부터 술(戌)까지 9개만 있다. 해·자·축이 표기되지 않은 점은 해시계라서 밤 시간인 해당 시간에는 시간 측정이 어려운 점을 반영한 것으로 고정형 해시계인 앙부일구의 전통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구일영의 표면 일부가 유실되거나 고장이 나 시간 측정이나 작동 방법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중앙과학관 연구진은 물음표로 남아있던 원구일영의 작동과 과학원리를 규명했다.

연구진은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과 협력해 원구일영이 기존의 해시계와 달리 관측지점에 따라 위도가 달라지더라도 수평을 맞추고, 그 지점의 북극고도를 조정해 사용했다는 점을 알아냈다. 휴대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복원된 원구일영의 디지털화 시보창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연구진은 원구일영 작동 원리를 규명하고자 제주별빛누리공원과 대전 유성 한국천문연구원, 서울 종로구 경복궁 등 세 지역을 차례로 선정해 복원 모델로 시간을 측정했다. 남중시각으로 남북선을 구한 뒤 시간을 측정하자 ±7.5분 이내의 오차의 시간이 나왔다. 영침과 태양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시각선 눈금보다 긴 직사각형 영역으로 그림자를 집어넣는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연구진은 위도조절장치에 표시된 2개의 선을 분석한 결과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된 지역인 서울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해 그림자를 만드는 T자형 영침의 그림자가 남반구의 긴 홈 안으로 들어가게 맞추면 영침 끝이 북반구 시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원구일영을 복원하면서 해를 추적하는 장치와 디지털화한 시보장치(시각을 나타내는 장치), 위도 조절장치, 수평다림줄(수평을 맞추는 장치) 등 독창적 해시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립중앙과학관이 주축이 돼 한국천문연구원, 문화유산연구소 길, 충북대 이용삼 전 교수 등이 모인 ‘융합 연구’로 진행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에서도 유물의 3D 스캔, X-ray와 성분분석 자료를 제공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원구일영을 오는 2024년 6월 개관하는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관 시계특화코너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복궁에서 ‘원구일영(圓球日影)’의 시간측정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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