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표정·연기까지…‘고음악의 디바’ 임선혜, 성악계 ‘일타강사’가 되다

2023. 12. 19. 14: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비 성악가 지원 프로젝트 ‘성악예찬’
12월 24일·경기 고양아람누리 콘서트
공연 전 마지막 마스터클래스 가보니
소프라노 임선혜의 ‘성악예찬’ 마스터클래스에서 새싹 성악가 남궁형은 멘토의 지도에 따라 어색했던 부분을 하나씩 다듬어 나갔다. [성악예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노래할 때 상대를 미리 보고, 그 사람에게 친밀감이 느껴지도록 해야 해. 액센트 주기 전에 몸이 먼저 준비하고.”

서울 서초구 음악플러스 아트홀에서 열린 ‘고음악의 디바’ 소프라노 임선혜의 ‘성악예찬’ 마스터클래스. 새싹 성악가 남궁형이 멘토 임선혜의 지도에 따라 어색했던 부분을 하나씩 다듬어 나간다. 말투, 표정, 행동, 발음까지.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매의 눈’으로 수업을 이어간다.

노래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무대 위 성악가에게 쉼이란 없다. 임선혜는 “간주는 다 생각이다. 간주 때 걸어가는 건 그냥 가는 게 아니라 생각이 있어서 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멘토의 조언이 이어지자, 남궁형의 얼굴엔 금세 고뇌가 내려앉더니, 다시 ‘오페라의 이야기’를 더듬는다. 다음 노랫말이 나오기에 앞서 추임새를 넣듯 임선혜가 “헤이, 무슨~”이라고 반응하자, 남궁형은 감정을 실어 노래를 시작한다. 지난 8월부터 4개월 간 이어온 마지막 수업은 미래의 K-클래식 스타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소프라노 임선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이경재 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새싹 성악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성악예찬’(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을 위해 뭉쳤다. 오디션을 통해 소프라노 장지혜·박희경·신채림·이수아, 테너 도윤상·박상진, 바리톤 남궁형, 베이스 노민형 등 8명의 성악가를 선발, 오랜 시간 마스터클래스를 이어왔고 마지막 자리로 갈라 콘서트(12월 24일, 경기 고양아람누리)를 연다.

넉 달간 이어진 멘토들의 수업에는 무대에서 갖춰야 할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담겼다. 세계적인 성악가 선배들의 수업은 ‘일타강사’의 명강의와 다르지 않았다. 특히 무대에서 더 단련된 프로 성악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이면서, 성악가로의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임선혜를 포함한 멘토들은 자기만의 해석, 정확한 발음,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노래는 소리만 잘 낸다고 되는 건 아니다”라며 “성악은 음악하는 악기들 중 유일하게 관객과 얼굴을 마주해야 하기에,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악예찬 제공]

임선혜는 “성악은 문학, 언어, 연기, 해부학을 다루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이라고 했다. 다른 언어로 적힌 음악의 세계를 원어민처럼 들리도록 발음하면서도, 온전히 그 이야기의 정서를 ‘나만의 표현’으로 전달하고, 성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악기인 몸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의 첫 단계는 마치 외국어를 공부하는 과정과 같다.

그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기에 쉽게 잊어버리게 되고,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노래를 허공에 흩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런 이유로 레슨 전 모든 단어를 찾아와 문장을 해석하고 그 뜻을 이해하고 올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수업에선 학생들의 잘못된 발음을 일러주고, 발음의 차이로 언어의 의미와 국적이 달라지는 상황들을 일일이 설명해줬다.

단지 노래를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수업이 아니라, 성악가로서 예술의 경지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자세와 무대 위에서의 노하우까지 담겼다. 무대 경험이 없으면 익히기 힘든 훈련을 지난 4개월 간 이어온 셈이다.

임선혜는 “노래는 소리만 잘 낸다고 되는 건 아니다”며 “성악은 음악하는 악기들 중 유일하게 관객과 얼굴을 마주해야 하기에,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혜의 이러한 수업 방식은 학생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임선혜와 휴고 볼프( H.Wolf)의 ‘그 나라를 아시나요?(Kennst du das land)’를 공부한 장지혜는 “노래 안에서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조금 소극적인 면이 있었고, 너무 일차원적인 표현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에너지를 단 한순간이라도 놓치거나 나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끌어내지 못하면 관객들도 절대 느낄 수 없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멘토 임선혜와 멘티 남궁형 [성악예찬 제공]

‘성악예찬’은 예비 성악가들에겐 오아시스처럼 귀한 프로젝트다. 현재 국내에선 다른 음악가와 달리 성악가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극히 적다. 큰 재단 중 성악가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는 곳은 현대차 정몽구 재단 정도만 있다. 전 세계 유수 오페라 극장은 한국인 성악가들이 장악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성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찾기 힘들다.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은 “우리나라 성악가들은 음대를 졸업해도 음악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경우가 20%도 되지 않는다”며 “모두들 각개전투를 하고 있는데, (서울대 재직 시절) 어렵게 졸업한 제자들을 불모지에 보낸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컸다”고 말했다. 사무엘 윤 역시 “독일의 경우 학생들이 다양한 루트로 다른 학교 교수들의 마스터클래스를 들을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마련돼있고, 1년에 2번 정도 학교에 온 극장장으로부터 직접 평가 오디션을 받는다”며 “한국에선 이런 기회가 전무하다”고 했다.

실제로 ‘성악예찬’에 함께 한 학생들 역시 아쉬움이 컸다. 테너 박상진(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은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과 달리 학교를 졸업해도 설 수 있는 무대가 없고, 영 아티스트도 제도 역시 별로 없다”며 “선후배, 친구들도 음악 활동을 하는 데에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어 이런 프로젝트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길을 먼저 간 선배들의 마음도 같다. 사무엘 윤은 “지금 학생들은 누구를 만나 어떤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성악가로서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시기”라며 “단발성 이벤트로 마스터 클래스가 이뤄지기도 하는데 한계가 있다. 학생들에게 좋은 이런 기회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좋겠다”고 했다. 임선혜도 “성악가들은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면 교류할 자리가 적은데,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적 동료가 될 수 있는 만큼 꾸준한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