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산법 개정, 철도산업 관계자들 "'민영화 수순' 주장은 억지"
마지막 교통소위도 철산법 개정안 상정 불발, 철산법 개정 물건너 가나
정치적 문제가 실무 개입하는 꼴…국회, 책임 공방서 자유로울 수 있나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정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하 철산법) 개정을 국회에 요청하면서 20년 동안 이어진 한국철도공사(코레일‧korail)에서 독점하고 있는 철도 유지보수 권한의 변화가 생길지 주목받고 있다.
다만 19일 열린 올해 마지막 국회 국토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교통소위)에 상정된 법안 37건 가운데 철산법 개정안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1월 초까지 교통소위가 다시 열리지 않는 이상 철산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코레일 노조는 개정안이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코레일 노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민영화 수순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다. 민영화를 핑계로 철산법 개정이 미뤄질 경우 정치적인 문제를 실무에 대입시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 철산법 개정과 코레일의 독점 지위 해제
철산법 개정안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에 이달 중 해당 법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자동 폐기된다.
국토부 측은 "철산법 개정(안)은 '코레일의 독점적인 유지보수를 보장한 단서조항'으로 인해 국가철도 중 진접선 등과 같이 코레일이 운영하지 않는 노선까지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안전과 효율성이 저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서를 삭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SR 수서고속선, 진접선, GTX-A 등 코레일이 운영하지 않음에도 유지보수를 수행하는 국가철도 구간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철산법 개정(단서삭제)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철산법 개정은 제38조(권한의 위임 및 위탁) 내용에 관한 것이다. 철산법 제38조를 보면 '국토교통부장관은 이 법에 따른 권한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지방 교통관서의 장에 위힘하거나 관계 행정기관‧국가철동공단‧철도공사‧정부출연연구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이어지는 단서 조항인 '다만,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내용으로 인해 현재 유지보수 업무를 코레일이 운영하지 않는 곳까지 독점하고 있다.
개정안은 해당 단서 조항을 삭제하고, 해당 내용을 '관계 행정기관‧국가철도공단‧정부출연 연구기관 또는 한국철도공사 등 철도사업자('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법'에 따른 지방 공기업으로 한정한다)에게 위탁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철산법 시행령 개정 검토(안)에는 제50조 2항 '국토교통부장관은 제38조 본문의 규정에 의하여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를 한국철도공사에 위탁한다. 다만,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지 않는 노선이나 구간은 위탁 기관 등을 따로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3항에 추가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제2항 단서에 따라 철도시설 유지보수의 노선, 구간, 위탁기관 등을 정한 때에는 그 사실을 관보에 고시한다'고 신설했다.
결국 개정안과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는 철도시설물의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도록 하는 내용이다.
◆ 철산법 개정 명분은 확실하지만 반대하는 코레일 노조
이와 관련해 코레일 노조와 국가철도공단(이하 철도공단)의 입장이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
철도공단은 21대 국회에서 처리를 약속했던 만큼 철산법 개정을 이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철도공단 측은 "지난 9월19일에 있었던 국회 교통소위에서 국토부가 시행 중인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 컨설팅 용역이 완료되면 교통법안 소위를 개최해 결론을 내기로 했다"며 "그러나 지난달 27일 컨설팅 용역이 완료됐음에도 지난 5일에 열린 교통소위에서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철도공단이 말하는 컨설팅 용역은 올해 초 국토부와 코레일, 철도공단의 의뢰로 보스톤컨설팅그룹(BCG)이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철도안전체계 심층지단 및 개선방안'에 관한 내용이다.
해당 컨설팅 용역은 조직혁신 및 안전관리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BCG는 보고서를 통해 안전체계 개선방안으로 "철도공단으로 관제‧유지보수의 이관이 바람직하나,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므로 현 체계의 조직혁신 및 안전관리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컨설팅은 또 현행 철산법이 시설관리 책임을 분산시켜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보수와 관제는 코레일이, 건설과 개량은 철도공단으로 위탁된 현 체계가 철도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업무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시스템 개선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사고 발생시 원인 해결보다 책임 공방에 치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컨설팅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조직 개선과 안전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안전체계 개선 방안은 2027년 제2관제센터가 들어선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소 2028년까지 진행되어야 하는 장기 과제로 분류된다. 역별로 분산된 운행선 관제(로컬, 222개)를 중앙집중화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코레일이 출자한 최소 265개 사업소, 773대 장비 환수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컨설팅의 지적대로 최근 철도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도별 코레일 탈선사고 발생 현황으로는 ▲2019년 5건 ▲2020년 2건 ▲2021년 9건 ▲2022년 15건 ▲2023년 9월 21일 기준 15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1월 발생한 경부선 KTX 산천 열차 탈선사고는 약 22억원의 물적 피해 및 영업 피해가 있었고, 같은 해 11월 발생한 경부선 무궁화호 탈선사고는 약 17억원의 영업 피해뿐만 아니라 승객 12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21년 9월26일 세종시 전의면 야간차단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공사는 코레일에서 직접발주한 유지보수 공사로, 코레일이 예산 절감을 위해 유지보수 공사를 직접발주로 맡기면서 불법하도급 문제까지 제기됐다. 이처럼 코레일이 유지보수 문제에서도 관리 및 안전은 뒷전으로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 효율 측면에서는 의견 엇갈려, 민영화 수순이라는 건 억지
이처럼 코레일의 미흡한 안전 관리 체계 개선을 위한 첫 번째 과정이 철산법 개정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일단 철산법 개정안이 지금 통과가 돼야 조직 혁신이든 안전 개선이든 필요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며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이 폐기되고 다시 처음부터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돼 준비 기간이 촉발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코레일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철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민간에도 위탁할 수 있게 되면서 '철도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개정안이 국회 교통소위에 상정될 경우 총파업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철도 시공 관계자 및 철도 관련 종사자들의 의견은 민영화의 수순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 체계대로 코레일이 유지보수와 관제를 독점해서 담당하는 것과 철도공단 및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 무엇이 더 장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렸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에도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에 한정한다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어떻게 민영화로 갈 수가 있나"며 "노조 입장에서는 코레일 노조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근거가 빈약한 상황에서 밀어붙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철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당장 유지보수와 관제가 이관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코레일 혁신부터 하자는 거고, 안전 강화를 위해 여객열차 충돌 및 탈선, 철도종사자 사상, 장시간 운행지연 등 항목들을 직년 3년 평균의 1.3배 이하로 유지하는 등 개선 상황을 향후에 지켜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철도업계 관계자도 "사실 노조 측에서 주장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개정안을 반대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정부에서도 부담이 있기 때문에 민영화를 고려할 상황도 아니고 코레일 노조도 이 같은 사실은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철도공사 시공 관련 관계자는 "운행을 하는 코레일이 철로 상황에 대해 좀 더 파악하기가 쉽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긴급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게 유지보수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철산법 개정이 민영화 수순이라고 주장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유지관리 업무의 효율성 부분을 따지는 게 아니라 민영화의 시작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건 오히려 스스로 명분이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철도 시공 관계자도 "유지관리 및 해당 공사 시공을 맡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철산법 개정이 불편한 상황"이라며 "만약에 발주를 하는 철도공단 측에 해당 업무가 이관되면, 보통 차단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사 진행을 위한 차단 시간 조율은 코레일과 하고 철도공단 측하고는 공사 진행 상황을 따로 또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입장 차가 발생되면 중간에서 조율해야 하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업무가 늘어나고 공사기간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긴급한 보수 공사의 경우 운영사가 유지보수 공사를 시행하는 장점들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다는 게 해당 관계자의 주장이다.
철도 시공 관계자는 "철도공단의 경우 원가적인 계산을 할 때 체계가 잘 잡혀 있기 때문에 어떤 자재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충분한 계산을 해주면서도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돈은 알아서 제외한다"며 "철도 건설 발주자가 운영 유지를 하게 되면 공사비용 등 관리 측면에서 좀 더 투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명성 부분과 공사비용 합리화를 생각하면 분명 공단이 하는 게 맞다"면서도 "솔직하게 말하면 시공사 입장에서는 철산법 개정이 반가울 순 없다고 보지만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 객관적인 의견을 낸다고 하면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영화 수순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예전부터 철산법 개정이 민영화 수순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근거로 제시하는 주장들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본지에서는 해당 내용과 관련해 코레일 측과 노조의 의견을 듣기 위해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으나, 코레일 측과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seongwan62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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