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떠나더라도…이민청 포기하면 안되는 이유 [매경포럼]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3. 12. 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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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6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서 ‘출입국 이민관리청 신설 방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2023.12.6 [김호영기자]
1869년 완공된 미국 대륙횡단철도(2826km)는 중국 이주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건설됐다. 중국인은 힘들고 위험한 작업들을 불평없이 수행했고 미국인 노동자보다 훨씬 부지런했다. 금광 개발과 농작물 재배에 이어 철도 개통까지 미국 초기 산업 발전의 기초를 다진 것은 중국인이었다. 대륙 철도 사업에 투자했던 릴런드 스탠포드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본인 토지를 중국인 정착지로 기부한 것도 감사 표시였다. 그가 세운 스탠포드대학은 중국인 입학 쿼터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1882년 중국인 이민금지법을 제정해 유학생, 외교관, 상인을 제외한 노동자들 이민을 금지시켰다. 중국인들이 미 노동시장을 잠식할 우려에서였다. 이처럼 이민정책은 수용 국가의 정책 목표에 따라 고무줄처럼 바뀐다.

최근 국내 저출산이 심각해지자 대응책 중 하나로 이민자 확대와 가칭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취임 때부터 이민청 카드를 꺼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구 재앙의 근본 대책은 출산율 제고와 이민”이라고 했다. 출산율을 당장 높이기 힘드니 이민이 답이라는 얘기다. 이민청 취지 설명도 거기서 나온다. “이민자의 체계적 유입과 관리·통제를 더 잘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부족 인구를 메우려고 이민 수용을 장려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민청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전력이 있다. 당시엔 외국인 하면 불법 체류자라는 인식과 저출산에 대한 무관심, 일자리 논쟁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민청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저출산 극복에 지금껏 380조 원을 쓰고도 결과가 처참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놓고 해외 석학들이 ‘집단자살’, ‘국가 소멸’이라며 걱정해주지만 해결책은 이들도 모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올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에서 내년에는 0.68명으로 떨어진다. 수년 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숫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높은 사교육비 등 애 낳기 싫은 이유를 3~4개씩 내놓을 정도로 저출산 원인을 모르지 않는다. 대개는 이유를 알면 그에 맞는 해결책이 나오는데 이 문제는 묘안이 없다. 어떤 해법을 제시하면 거기에 따라붙는 제약 조건이나 반대 논리가 따라붙어 완성도 높은 답을 찾기 어렵다.

출산율이 증가한 프랑스 사례를 보면 소득 지원, 보육 체계 마련, 사실혼 커플에 결혼에 준한 혜택을 주는 ‘팍스(PACS)’ 등 다양하다. 보육 지원 및 세제 혜택은 우리도 비슷하게 시행중이고 팍스 같은 것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그대로 갖다쓰긴 힘들다. 완벽한 유아 보육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우리는 이후 초·중·고교 사교육비 부담이 커진다. 프랑스는 필요한 사람만 대학에 가지만 우리는 다수가 뛰어든다. 남보다 과외를 못 시키면 부모 노릇 못한 것처럼 되니 유아 보육 다음을 걱정해 출산을 꺼리게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교수 말대로 결혼도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문제다. 출산 시 1억원을 주고 혜택이 늘어도 결혼에 따른 비용이 더 크다면 비혼(非婚)의 편익을 넘기 힘들다.

따라서 인구 감소에 직면한 선진국들도 가장 쉽게 하는 것이 외국인 유입이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이민 정책은 장시간 소요되는 구조 개혁과 달리 즉각 쓸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만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수용은 인구 부족을 메우는데 쉬운 방법이지만 부작용도 많아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와 유럽 각국은 다양한 이름의 이민청을 2000년대 들어 설치했다. 일본도 2019년 법무성 산하에 출입국체류관리청을 두었다. 한 장관은 “필요한 외국인만 정교히 판단해 예측 가능성 있게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유능한 외국인이 다른 선진국을 놔두고 한국을 찾을지는 의문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한국은 무엇을 내세워 ‘우리나라에 오라’고 외칠 수 있을까”라며 북핵 위협과 천문학적 사교육비, 세계 최고 상속세율 등이 제약 요인이라고 했다. 캐나다만 해도 전통적으로 다원성과 포용성이 충만하고, 제로(0) 수준인 상속·증여 세율과 비교하면 K컬쳐 등 한국의 강점은 작아 보인다. 자칫하면 한국에는 부자나 숙련 기술자 대신 막노동꾼, 불량배만 몰려올지 모른다.

또한 이민의 빗장을 크게 풀면 증가하게 될 외국인과 내국인 간에 갈등도 덩달아 커진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사무엘 헌팅턴은 미국에 온 많은 멕시코인들이 미국 주류에 동화되지 못해 자기들만의 문화와 언어를 가진 별도 지역을 만들어 사회를 분열시킨다고 했다. 그는 멕시칸들이 미 남서부 지역이 원래 자기네 영토인 점을 들어 재탈환하려 한다는 전망도 내놨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슬라브계) 러시아인들의 낮은 출생률과 (이주한) 중앙아시아인들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러시아 정체성에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없는 러시아는 갈수록 덜 유럽적이고 아시아적인 나라로 변모해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내 중앙아시아계 무슬림의 출산율이 높아 장차 슬라브 백인 숫자를 넘어설 것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민자 증가로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총인구 대비 장단기 외국인 비중이 5%에 달해 OECD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다. 또 초저출산으로 인해 이민자를 계속 더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체계적인 외국인 유입 정책과 관리, 사회 통합을 위해 내실있는 이민청은 꼭 필요하다. 한 장관이 총선 출마로 떠나더라도 이민청 신설 동력이 약화돼선 안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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