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 믿은 내가 죄인” 분양되고도 눈물…1년째 헛도는 ‘실거주 의무 폐지’ [부동산 이기자]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3. 12. 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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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기자-18]
1·3 대책으로 부동산 규제 푼다던 정부
전매제한 완화됐지만 실거주 의무 여전
야당 “갭투기 부추길수도” 법개정 반대
오는 21일 재논의…사실상 마지막 기회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전경
작년 이맘때 부동산 시장의 화두는 단연 ‘둔촌주공아파트’였습니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둔촌주공아파트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힙니다. 재건축을 통해 약 1만 2000가구 규모의 대단지(올림픽 파크포레온)로 탈바꿈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지는 딱 1년 전인 지난해 12월 일반분양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상당한 기대를 모았지만 청약은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초기 계약률이 저조하자 분양 시장 침체가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쏟아졌죠. 실제 비슷한 시기 분양한 다른 단지들의 청약 실적도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자 정부는 올해 1월 3일 부동산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고 나섰습니다. 이른바 1.3대책입니다.

일각에선 ‘둔촌주공 살리기 대책’이란 얘기도 나왔습니다. 1.3대책에 ‘전매제한을 완화하고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규제는 제대로 풀렸을까요? 약 1년이 지났지만 답은 반반입니다. 전매제한 규제는 풀렸는데 실거주 의무는 그대로거든요. 이로 인한 시장 혼란이 계속되는 만큼 관련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전경.
전매제한 기간은 최대 10년→3년으로 완화
전매는 ‘되팔기’입니다. 산 물건을 도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다는 뜻입니다. 전매제한은 이런 되팔기를 못하게 한다는 거겠죠. 다시 말해 분양받은 주택을 일정 기간 동안 사고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입니다. 시세차익만을 노린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1.3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전매제한 규제가 최대 10년까지 적용됐습니다. 서울 강남3구 같은 투기과열지구인데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단지는 10년 동안 사고 팔 수 없었던 겁니다. 부동산 상승기였던 2019년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기간을 이처럼 연장했어요.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규제 기간이 너무 길다는 반발이 계속 됐습니다. 마침 작년 들어 부동산 하락장이 시작되자 윤석열 정부는 1.3대책을 통해 이 규제기간을 줄이고 나섰습니다. 수도권은 최대 3년, 비수도권은 최대 1년으로 완화하겠다고 했어요.

[사진출처=국토교통부]
전매제한 완화는 ‘주택법 시행령’을 바꾸면 가능한 사항입니다. 법이 아닌 시행령은 정부 차원에서 바꿀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전매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주택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덕분에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의 분양 단지거나 수도권 공공택지에 지어진 아파트만 전매제한 기간이 3년 적용되게 됐습니다.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의 분양 단지나 지방의 공공택지에 지어진 아파트는 전매제한 기간이 1년으로 짧아졌습니다. 지역에 따라 전매제한 기간이 6개월로 더욱 줄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패키지 격인 실거주 의무 규제는 그대로 남아
전매제한과 ‘패키지 격’인 규제는 바로 실거주 의무입니다. 실거주 의무는 말 그대로 실제 살아야 하는 의무 기간을 뜻합니다. 2021년 이 규제가 생겨났는데요. 수도권에 공급된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규제가 적용됐습니다.
[사진출처=국토교통부]
당시만 해도 수도권 상당수 지역이 규제지역이라 분양가상한제가 많이 적용됐는데요. 이때 분양 받은 사람들은 입주 가능일로부터 바로 들어가 2~5년 동안 해당 주택에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2월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해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전국 66개 단지, 약 4만 4000가구에 달한다고 해요.

현 정부는 1.3대책을 발표하며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한다”고 했습니다. 설핏 보면 실거주 의무도 조만간 폐지되겠구나 생각하기 쉽죠. 실제 올해 상반기에 청약에 나선 사람들 중에선 실거주 의무가 곧 사라질 거로 믿은 이들이 꽤 있었어요. 당장 자금이 부족하지만 일단 분양받아 전세를 주고, 돈이 좀 모이면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부만 믿었는데”···멘붕 빠진 수분양자들
하지만 전매제한과 달리 실거주 의무 규제는 ‘주택법’을 바꿔야 하는 사항입니다. 정부가 아닌 국회가 키를 쥐고 있단 뜻입니다. 그런데 여야 간 의견 차이 때문에 관련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 거죠.

여당보다 야당 의원이 훨씬 많은 현재 국회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개정안이 정말 통과될 수 있을까를 고려하지 않고 섣부르게 발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민 혼란만 키웠단 지적입니다.

당장 현장에선 정부의 규제 완화 약속을 믿고 청약을 넣었다가 낭패를 보게 된 예비 입주자들의 불만이 쏟아집니다. 한 수분양자는 “올해 초 모델하우스에서 상담 받을 때 실거주 의무가 풀릴 것이라는 안내 포스터를 봤다”며 “정부를 믿고 계약했는데 국회가 이를 막으면 어떡하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장위자이 레디언트 조감도
분양권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이달 들어 대단지 아파트들의 전매제한이 줄줄이 풀리지만 시장은 잠잠합니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 2032가구), 강동구 강동헤리티지자이(1299가구),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2840가구) 등이 대표적입니다. 실거주 의무가 남아있으면 전매제한이 풀려도 분양권 거래를 아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실거주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현행법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실거주를 못할 경우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환매를 할 수 있습니다.

“갭투자 우려” vs “시장 혼선 방지”
12월 초에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선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국토교통부는 “남은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오는 21일 열리는 소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이 한차례 더 다뤄질 예정입니다.
지난 6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의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일단 야당은 이 제도가 없어지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 야당 의원은 “갭투기 때문에 올해 온 나라가 깡통전세, 전세사기에 내몰렸다. 이런 정세도 봐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전세를 의미합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은 “실거주 의무 주택은 일반 분양 주택이 아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는 주택”이라며 “저렴하게 공급한 공공주택을 투기꾼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만든 게 실거주 의무 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아예 제도를 폐지하기보다 시행령을 만들어 도저히 들어갈 사정이 안 되는 경우 이를 봐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다양한 사정을 일일이 일반화 시켜서 시행령에 담기가 어렵다”며 재차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여당 측도 “수억원 현금 들고 분양을 신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장은 못 들어가도 전월세를 주면서 돈을 모으고 적당한 시점에 들어가서 사는 게 보통 방법”이라며 폐지에 힘을 실었습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여당 일각에선 폐지가 어렵다면 제도를 좀 탄력적으로 운영하잔 중재안도 나왔습니다. 한 여당 의원은 “초기 자본이 부족하거나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사정 변경이 생긴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면 바로 못 들어가고 한 1~3년 더 늦게 들어가도 좀 허가를 해주자. 실거주 의무를 집을 팔기 전까지만 채우게 하는 건 어떠냐”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조만간 열릴 소위원회에서도 여야 의견이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으면 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을 고려해 법안 통과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찌됐던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법안 처리 기회로 여겨집니다.

내년 초부터는 양당이 총선모드에 돌입해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게다가 현재 21대 국회가 끝나면 남아있는 법안들도 자동 폐기됩니다. 22대 국회에서 누군가 같은 내용을 다시 발의하면 되긴 합니다. 그러나 새로 뽑힌 의원들이 현황을 파악하고 논의를 재차 이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 이를 고려하면 오랜 기간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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