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 믿은 내가 죄인” 분양되고도 눈물…1년째 헛도는 ‘실거주 의무 폐지’ [부동산 이기자]
1·3 대책으로 부동산 규제 푼다던 정부
전매제한 완화됐지만 실거주 의무 여전
야당 “갭투기 부추길수도” 법개정 반대
오는 21일 재논의…사실상 마지막 기회
당시 상당한 기대를 모았지만 청약은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초기 계약률이 저조하자 분양 시장 침체가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쏟아졌죠. 실제 비슷한 시기 분양한 다른 단지들의 청약 실적도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자 정부는 올해 1월 3일 부동산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고 나섰습니다. 이른바 1.3대책입니다.
일각에선 ‘둔촌주공 살리기 대책’이란 얘기도 나왔습니다. 1.3대책에 ‘전매제한을 완화하고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규제는 제대로 풀렸을까요? 약 1년이 지났지만 답은 반반입니다. 전매제한 규제는 풀렸는데 실거주 의무는 그대로거든요. 이로 인한 시장 혼란이 계속되는 만큼 관련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3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전매제한 규제가 최대 10년까지 적용됐습니다. 서울 강남3구 같은 투기과열지구인데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단지는 10년 동안 사고 팔 수 없었던 겁니다. 부동산 상승기였던 2019년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기간을 이처럼 연장했어요.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규제 기간이 너무 길다는 반발이 계속 됐습니다. 마침 작년 들어 부동산 하락장이 시작되자 윤석열 정부는 1.3대책을 통해 이 규제기간을 줄이고 나섰습니다. 수도권은 최대 3년, 비수도권은 최대 1년으로 완화하겠다고 했어요.
덕분에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의 분양 단지거나 수도권 공공택지에 지어진 아파트만 전매제한 기간이 3년 적용되게 됐습니다.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의 분양 단지나 지방의 공공택지에 지어진 아파트는 전매제한 기간이 1년으로 짧아졌습니다. 지역에 따라 전매제한 기간이 6개월로 더욱 줄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 정부는 1.3대책을 발표하며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한다”고 했습니다. 설핏 보면 실거주 의무도 조만간 폐지되겠구나 생각하기 쉽죠. 실제 올해 상반기에 청약에 나선 사람들 중에선 실거주 의무가 곧 사라질 거로 믿은 이들이 꽤 있었어요. 당장 자금이 부족하지만 일단 분양받아 전세를 주고, 돈이 좀 모이면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여당보다 야당 의원이 훨씬 많은 현재 국회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개정안이 정말 통과될 수 있을까를 고려하지 않고 섣부르게 발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민 혼란만 키웠단 지적입니다.
당장 현장에선 정부의 규제 완화 약속을 믿고 청약을 넣었다가 낭패를 보게 된 예비 입주자들의 불만이 쏟아집니다. 한 수분양자는 “올해 초 모델하우스에서 상담 받을 때 실거주 의무가 풀릴 것이라는 안내 포스터를 봤다”며 “정부를 믿고 계약했는데 국회가 이를 막으면 어떡하느냐”고 토로했습니다.
만약 실거주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현행법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실거주를 못할 경우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환매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은 “실거주 의무 주택은 일반 분양 주택이 아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는 주택”이라며 “저렴하게 공급한 공공주택을 투기꾼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만든 게 실거주 의무 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아예 제도를 폐지하기보다 시행령을 만들어 도저히 들어갈 사정이 안 되는 경우 이를 봐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다양한 사정을 일일이 일반화 시켜서 시행령에 담기가 어렵다”며 재차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여당 측도 “수억원 현금 들고 분양을 신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장은 못 들어가도 전월세를 주면서 돈을 모으고 적당한 시점에 들어가서 사는 게 보통 방법”이라며 폐지에 힘을 실었습니다.
조만간 열릴 소위원회에서도 여야 의견이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으면 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을 고려해 법안 통과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찌됐던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법안 처리 기회로 여겨집니다.
내년 초부터는 양당이 총선모드에 돌입해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게다가 현재 21대 국회가 끝나면 남아있는 법안들도 자동 폐기됩니다. 22대 국회에서 누군가 같은 내용을 다시 발의하면 되긴 합니다. 그러나 새로 뽑힌 의원들이 현황을 파악하고 논의를 재차 이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 이를 고려하면 오랜 기간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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