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선거제 위선’ [김지현의 정치언락]
“만약에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지금 국회라는 공간에서 민주당이 어느 정도 막고 있긴 한데, 국회까지 집권여당으로 넘어가면 과거로의 퇴행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어요. (중략) 현실의 엄혹함이라고 하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죠. (중략) 선거라는 건 승부 아닙니까.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에요.”
사실 선거제 개편 이슈는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탓에 정치부 출입 기자들도 가장 골치 아파하는 뉴스 중 하나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선 ①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좀 더 보장하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되 ② 지난 총선처럼 소수정당을 빙자한 ‘위성정당’이 난립하지 못하도록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2월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비례대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은 금지하겠다”라고 공약했던 것을 지키자는 거죠.
반면 국민의힘은,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됐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자는 입장입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따로 뽑는 방식이라 애초에 위성정당 자체가 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요구하는 위성정당 방지법 자체가 필요가 없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죠. 다만 소수정당에는 진입장벽이 그만큼 높아져 거대 양당에 더 유리하게 되고요. 국민의힘은 여야가 선거제 합의에 실패해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제가 내년 총선에서 유지될 경우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대놓고 벼르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일단 이기고 보자는 건 결국 ①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국민의힘처럼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들거나 ② 아예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병립형으로 돌아가자 둘 중 하나를 택하자는 걸 겁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선 어떤 선택을 해도 딜레마”라며 “병립형으로 회귀하면 ‘퇴행’이라고 욕먹을 것이고, 준연동형제를 유지하게 되면 솔직히 무조건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위성정당도 엄밀히 따지면 ‘남’이죠. 언제든 ‘신뢰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사법리스크가 산적해 있다 보니 유독 ‘1당’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재명 대표로선 민주당의 ‘자매정당’을 참칭하는 ‘송영길 신당’ ‘조국 신당’ 등 비례용 위성정당을 100% 믿지는 못할 겁니다. 당장 선거 때야 급한 마음에 서로 연대해서 ‘거야(巨野)’를 재창출한다고 하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진 빚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트러블이 생길 수 있죠. 민주당으로선 자력으로 단독 다수당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실제 최근 당 지도부는 연일 병립형 회귀 시사 방침에 힘을 보태고 있고요.
“(대선 때 연동형 비례제와 위성정당 방지를 공약했지만) 때로는 약속을 못 지키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당당하게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 (12월 5일 홍익표 원내대표, CBS라디오)
“연동형 비례제는 내각제와 같이 가는 다당제 구조이지 대통령제와 같이 가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 (12월 5일 김영진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YTN 라디오)
“선거제는 수적 우위로 관철할 수 없는 만큼 병립형 논의도 하나의 옵션이다.” (12월 11일 홍 원내대표, 김어준 유튜브)
“(연동형 비례제는) 현실적으로 작동이 어렵다.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불가능하게 돼 있다.”(12월 13일 홍 원내대표, YTN 라디오)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지도부 내에선 사실상 병립형 회귀로 가는 분위기”라며 “다만 아직 시간이 좀 많이 남았으니 내년 1~2월이나 돼야 최종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자 도리어 송영길, 조국 등은 “준연동형이 나쁘고, 병립형이 옳은 건 아니다”라며 준연동형 유지를 촉구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죠. “8년 전 선거제인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것은 퇴행”이라는 비판에 더해, 이재명 특유의 ‘말바꾸기’가 지긋지긋하다는 비명계 목소리가 거셉니다.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 14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병립형 회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죠. 그 전날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탄희 의원은 눈물까지 흘리며 위성정당 방지법 채택을 촉구했다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대표는 이날 의총에 불참했고요. 차라리 ‘안보고 말겠다’는 심보일까요.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당내에선 “병립형으로 돌아갈 바엔 아예 위성정당을 만들자”는 얘기까지 본격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14일 페이스북에 “병립형 회귀를 반대한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을 지키되 ‘범민주연석회의’에 민주당이 참여해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지금의 준연동형 비례제가 유지될 경우 위성정당이 난립할 수 있으니 민주당도 시민사회 등과 함께 하는 비례연합정당을 결선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김민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의총에서 한 발언을 공개하며 “국민의힘이 (위성정당 방지법을) 거부하면 불가피하게 현 연동제도에 민주당이 참여하는 개혁비례연합(위성연합, 국민연합, 자매정당 등 비슷한 취지의 다양한 명칭)을 할 수밖에 없음을 국민께 이해를 구하고 추진하자”고 썼습니다. 국민의힘이 위성정당 방지법에 동의하지 않을 테니 민주당도 연합형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결국 4년 전과 똑같은 패턴을 되풀이하겠다는 겁니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도 “위성정당은 안 된다” “꼼수”라고 반발하더니,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기어이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하자 ‘못 이기는 척’, ‘어쩔 수 없는 척’ 부랴부랴 위성정당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당원들께서 연합정당 참여에 압도적인 찬성을 보내준 건 미래통합당의 페이퍼 위성정당을 만든 반칙과 탈법을 응지하고 개혁과 변화의 국정을 책임지라는 뜻”이라며 “연합 정당에 참여하면서 통합당을 응징하고 본래의 선거법 취지를 살리기 위한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스스로 위성정당을 “편법과 반칙”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반칙과 탈법을 보면서 제 몸 건사하자고 그냥 두고 보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그 뒤로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말 그대로 졸속 창당과 공천 과정을 거쳐 등판했고, 선거운동 첫날부터 우스꽝스러운 ‘꼼수 선거운동’이 이어졌죠. 국회의원 후보란 사람들이 선거법 단속을 피해 보겠다고 선거 운동복을 앞뒤로 뒤집어 입고 다니는가 하면, ‘쌍둥이 버스’를 이용한 노골적 ‘기생 선거운동’도 펼쳐졌습니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야당 탓을 하며 총선판을 희화화해놓고는, 이제와서 또 필요하면 위성정당을 만들자는 겁니다.
“민주당은 다중인격이라 믿을 수가 없다. 어제 한 공약 오늘 뒤집고, 오늘 한 공약을 내일 유지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이 마지막 선거처럼 오늘만 넘기면 다음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대근 우석대 교수가 최근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 의원 모임인 민주주의 4.0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면전에서 민주당을 비판한 내용입니다. 4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국민의힘이 한다고 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대는 민주당은 전혀 반성이나 발전이 없는 듯 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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