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와 '코미디 로얄'은 대한민국을 웃길 수 있을까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20세기 초 무성영화 시대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몸만 쓰는 코미디의 제왕이 한 말치곤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이 말속에는 그가 '시티라이트'와 '모던 타임즈'에서 보여준 익살과 풍자가 숨어 있을 것이다. 채플린이 뒤뚱거리면서 자빠지는 건 괴롭고 슬픈 일이지만 이를 일정 거리에서 지켜보는 관객은 폭소하듯이, 인생의 다층적 면모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한 편의 코미디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문학과 철학에서 말하는 '관조(觀照)'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희극은 비극 못지않게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볍게 웃어넘긴다고 해서 그게 정말 가볍고 실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안에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충만한 메시지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이전부터 코미디 연기를 사랑하고 코미디언을 존경했다. 지질한 슬랩스틱이나 바보 연기를 보면서 박수를 쳤다.
따라서 약 3년 4개월 만에 돌아온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를 마주하며 가슴이 쿵쾅거렸다. 폐지되기 전, 매주 일요일 밤에 방영되며 '월요병'을 잊게 해줬던 고마운 프로그램. 1시간 남짓 혼자 낄낄거리다가 '봉숭아학당'의 엔딩을 봐야 비로소 일주일을 마감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힐링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지난 11월 12일 '개콘' 첫 방송은 이런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하게 했다. 전국 시청률 4.7%(닐슨코리아 집계). 2020년 6월 26일 마지막 방송(3.0%)보다 높았다. 오랜 축적의 시간만큼이나 새로운 코너들이 눈길을 끌었다. 새롭게 단장한 '봉숭아학당'을 비롯해 저출산으로 전교생이 2명인 '금쪽 유치원', 결혼하기 어려운 현실을 풍자한 '대한결혼만세', 소개팅 자리에서의 남녀간 '밀당' 연애를 다룬 '데프콘 어때요' 등 14개의 코너가 소개됐다.
그중에서도 '니퉁의 인간극장'이 단번에 뇌리에 남았다. 외국인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고부 갈등이 소재. E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다문화 고부열전'의 코미디 버전 같았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며느리를 연기하는 김지영의 연기가 매우 뛰어났다. 이에 맞서는 시어머니 역의 김영희와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남편 박형민 모두 연기 궁합이 딱 맞아 떨어졌다. 새 얼굴이 많고 첫선을 보이는 코너인데도 안정감이 컸던 것은 이 코너가 이미 유튜브 채널 '폭씨네'에서 검증됐기 때문이다. 약 1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폭씨네'의 김지영은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베트남 며느리 연기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너무 감쪽같아서 실제 베트남 며느리가 출연한 '몰래 카메라' 버전에서 출연자가 속을 정도였다. 희극도 연기력이 바탕이 되어야 설득력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상미 '개콘' CP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섭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첫 회 이후 '개콘'의 시청률은 3%대로 떨어져 횡보하고 있다. 지난 10일 시청률이 조금 회복된 3.9%였다. 첫회에 대한 기대감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니퉁'은 여전히 선전하고 있지만 다른 코너들은 서서히 3년여 전의 '기시감'에 갇히는 느낌이다. 드라마와 현실을 비교하는 '팩트라마'는 과거 '개콘'의 비슷한 코너를 연상시킨다. 남녀간 데이트가 소재인 '데프콘 어때요'도 외모에 집착하는 기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래도 1999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21년간 사랑받았고, 다시 시청자 앞에선 '개콘'의 저력을 믿고 싶다. 신인들의 활약은 물론 베테랑들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넷플릭스가 지난달 말부터 야심 차게 공개한 예능 '코미디 로얄'은 다소 실망스럽다.
고백했듯이 진정으로 코미디를 좋아하는 필자의 눈에도 거슬리는 구석이 너무 많다. 시작은 그럴듯해 보였다. 20명의 코미디언들이 5개의 팀으로 나뉘어 과연 누가 더 웃기는지를 겨루는 서바이벌 형식이 긴장감을 줬다. '개콘'이나 '코미디 빅리그'에서 활약했던 베테랑급 코미디언과 유튜브에서 이름을 얻은 인플루언서까지 합세해 양보 없는 경쟁을 예고했다. 이경규, 탁재훈, 문세윤, 이용진, 정영준 등이 마스터로 나서고 젊은 코미디언들이 이들 아래 팀을 꾸려 치열한 레이스를 펼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대는 첫 라운드만에 무너졌다. 황제성·이은지 등의 '뮤지컬 츄츄'는 너무 평이해 보였다. 기존 공개 코미디 속 코너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엄지윤·이창호 등의 '초장기 연애'는 기획이 기발해 보였으나 정작 웃음은 잘 터지지 않았다. 급기야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욕설을 남발했다. 김두영·박진호 등의 '요즘 넷플 뭐봄'은 넷플릭스에서 성공한 시리즈의 포스터를 패러디해 잠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속옷까지 드러내는 노출이 꽤 부담스러웠다. 하이라이트는 곽범·이선민·이재율 등이 선보인 '숭간 교미'였다. 대놓고 원초적인 콘셉트를 잡았다고는 하나 원숭이들의 교미를 표현하는 대목이 여과 없이 흐르자, 웃음보다는 거북함이 올라왔다. 이를 지켜보던 이경규는 "나라 망신"이라며 화를 냈다. 이게 연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강조한 'K-코미디'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여나 전 세계팬들이 이런 코미디를 한국형 코미디로 받아들일까봐 우려됐다.
두 번째 라운드 '로스팅 코미디'나 세 번째 '부캐릭터' 라운드는 빨리 감기로 돌려봤다. 첫 라운드의 실망감 탓에 끝까지 차분히 볼 엄두가 안 났다. 연출을 맡은 권해봄 PD는 "코미디언들이 검열 없이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을 드리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고 했으나 의도한 바대로 시청자에게 전달될지 걱정됐다. 또한 이게 아무리 번역이 된다고 해도 뉘앙스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는 '옹알스'라는 코너가 있다. 2013년 처음 소개될 때만 해도 회의적이었던 것이 어느새 페스티벌의 간판 코너로 자리를 잡았다. '옹알스'는 넌버벌(Non-Verbal) 코미디다. 조수원·채경선 등이 출연해 대사 없이 몸짓으로만 웃음의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지난 10여년간 전 세계 20여개 국에서 관객과 만났다. 당연히 한국어를 모르는 해외팬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디 랭귀지를 사용한 게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이외에도 흥행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옹알스'가 꼭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코미디는 다양해야 하고 제한도 없어야 한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되는 건 금물이다. 하지만 고민 없는 설정과 대사가 멋대로 허용된다는 의미 또한 아닐 것이다.
남을 웃게 하는 연기가 쉬울까, 아니면 울게 하는 게 쉬울까.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의 배우, 코미디언들을 인터뷰할 때 한 번쯤 물어봤던 질문이다. 연기 전공자가 아닌, 관찰자 혹은 평론가의 입장에서 관객을 웃고 울리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연기하기 힘든지 원초적인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답변은 얼추 비슷했던 것 같다. "그걸 어떻게 딱 잘라 말할 수 있겠나…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웃음을 자아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눈물 연기가 낫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그만큼 희극 연기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짐작된다. 채플린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극은 인생을 돌아보게 하지만, 희극은 인생을 내다보게 한다." K-코미디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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