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기득권 포기’ 없인 백약이 무효다[시평]

2023. 12. 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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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비대위長 인선으로 관심 이동
국민 입장에선 본말전도 행태
중요한 것은 쇄신 비전과 의지
저성장 저출산 해법 제시하고
고통분담도 호소할 수 있어야
웰빙黨 탈피 위한 물갈이 중요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또다시 대혼란에 빠졌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13일 국민의힘 대표직을 사퇴함에 따라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번에도 비대위가 꾸려지게 되면 2년 만에 벌써 3번째 비대위가 구성된다. 국민의힘 안팎에서 자신만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용산 대통령실에 끌려가는 모습만 보여준 김 전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비대위의 인선과 방향을 두고 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대통령실과 수평적 관계를 정립하고 여당으로서 할 말은 하는 비대위원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용산’과 호흡을 맞추며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진력할 사람이 적격이라는 입장도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힘 내부 문제일 뿐이다. 일반 국민으로서 중요한 것은, 비대위가 추진할 쇄신의 방향과 내용의 진정성이다. 국민은 그에 따라 내년 총선에서 정부·여당을 지지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윤 정부는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과의 대립으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비롯해 시급한 국정 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대한민국헌법 정신에 따르면 행정부와 국회가 서로 견제해, 국정 운영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이 행정부와 국회를 주도하며 경쟁하고 균형을 이룬다면 헌법의 논리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정의 현실은 거대 야당의 무리한 입법과 탄핵소추, 이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같이 끝없는 여야 간의 대립으로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서로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양당의 상호 설득과 타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설득과 타협에 앞서 여야는 각자의 분명한 정책 구상과 추진 방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대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는, 대전환 시대를 헤쳐갈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이 뚜렷한 정책 구상과 이를 추진할 계획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국민의 표심(票心)에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밋빛 청사진으로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인기 영합주의로 나아가선 안 된다. 여당은 쉽지 않은 선택이더라도 필요하다면 대통령에게 당당히 요구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단호함을 가져야 한다. 특히 곧 저출산·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경제의 성장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출산율을 제고(提高)하기 위해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육아휴직을 줘야 하고 휴직 후 불이익 없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 기업 시각에서 보면 이는 모두가 비용이고 비효율이다. 특히, 중소기업에는 더욱 큰 부담이다. 그렇지만 나라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기업에 희생을 요구하고 설득할 정책적 의지가 있는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국민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과 근로자들의 고통 분담이 불가피하다면 이들을 설득할 용기를 보여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인간이 수행하던 많은 일자리는 인공지능(AI) 로봇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로봇의 역할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로 인한 실업과 재고용 문제를 관리하려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도 해결해야만 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기득권을 가진 정규직의 양보와 희생은 필수다. 국민의힘은 민주노총·한국노총과 부딪쳐 노동시장 개혁을 완수할 용기와 끈기가 있는가?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자리와 위세만을 추구하는 ‘웰빙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다.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널리 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전환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정책 구상으로 경제적 번영과 사회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희망이 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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