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색하게 하는 수능 수석들의 공통 키워드 3가지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재수와 의대, 그리고 시대인재. 올해 수능 수석의 공통점을 뽑으라면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학부모 사이에선 교육비 부담에도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란 문구가 관용구처럼 쓰여 왔는데, 이는 이번에도 유효했다. 또 의대 정원 확대 정책으로 의료계가 뒤숭숭하지만 아직도 의대는 최고 인재들의 집결지임이 입증됐다. 시대인재는 대치동을 전례 없이 빨리 평정한 학원인데, 사교육 주범이란 비판 속에서도 '의대생 사관학원'으로 군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철폐를 공언한 '기득권 카르텔'의 뿌리가 여전히 깊다는 사실이 이번 수능에서 재확인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기 용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수생 유리아씨는 '불수능'으로 평가된 이번 수능에서 유일하게 원점수 만점을 기록했다. 또 원점수의 상대적 위치를 나타내는 표준점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최고득점자는 대구 경신고를 졸업한 이동건씨다. 이번 수능은 두 사람 모두에게 두 번째다.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유씨는 의대를 지망했지만 작년 점수가 미달이라 재수를 결심했다. 이씨의 경우 작년에 성균관대 의대에 합격했지만 서울대 의대에 가려고 재수했다고 한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시대인재 재수종합반에서 공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쟁 학원도 인정한 '시대인재 재종'의 위엄
"시대인재 재종(재수종합반)은 이제 의대 진학 필수 코스가 됐다." 시대인재의 경쟁 상대로 꼽히는 대형 학원 관계자가 시사저널에 한 말이다. 시대인재의 위엄이 경쟁자도 인정할 만큼 높은 반열에 올랐다는 걸 방증한다. 시대인재 역시 의대 합격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2022년 전국 의대 합격생(복수 합격자 포함)이 1127명이었다는 통계자료가 올라있다. 2021년 979명 대비 15% 늘었다. 학원업계 관계자는 "올해 수능 난도가 상당한 만큼 최상위권 변별력이 높아져 시대인재가 배출할 의대생 수가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시대인재는 윤 대통령이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하면서 주요 타깃으로 떠오른 학원이기 때문이다. 시대인재가 배포하는 모의고사는 킬러문항 적중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입시 거래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교육부는 수능 출제 또는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현직 교사 22명에게 수억원의 돈을 주고 문항을 사들인 사교육업체 21곳에 대해 지난 9월 수사를 의뢰했는데, 시대인재도 그중 한 곳이다.
그 밖에도 정부는 시대인재를 향해 여러 차원에서 압박을 가했다. 지난 6월에는 국세청이 시대인재를 비롯한 대형 학원에 대해 비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7월 현장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공정위는 '메이저 의대 정시정원 2명 중 1명은 시대인재'란 광고가 학원의 자체 추정치를 근거로 한 허위 광고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번 수능에서 수석들이 시대인재 출신임이 알려지며 학원의 주목도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킬러문항 배제의 근본 목표였던 사교육비 경감 효과도 미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올해 대치동 시대인재 재종의 월 학원비는 약 300만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는 수업비 170만원, 자습실 이용료 27만원, 모의고사 등 교재비 70만~80만원, 급식비 25만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은 여기에 학사(사설 기숙사) 비용 100만~150만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모두 합하면 월 400만원이 넘는다. 올해 3인 가구 중위소득인 443만원에 육박하는 데다 지난해 고등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46만원)의 8배가 넘는 수준이다.
비용 부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장학금 없이는 보내기 힘들다"는 우려도 자자하다. 시대인재는 성적 우수자에게 수업비의 30~100%를 감면해 주는 장학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선발 기준은 비공개인데 100% 장학금을 받으려면 '인서울 의대'에 갈 성적은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교육비를 향한 전방위 비판이 커지자 시대인재는 고개를 숙였다. 학원 측은 7월27일 "사교육비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대단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입장문을 냈다.
다만 시대인재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시대인재도 나름 연구와 투자를 통해 수능의 핵심 문제를 선제 공략했다는 주장이다. 또 애당초 시대인재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있기 때문에 학원의 역할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시대인재 재종 출신으로 지난해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이아무개씨는 유튜브를 통해 "시대인재에 오는 학생들 실력이 원래 뛰어나다 보니 자료만 참고하고 수업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카이스트 삼킨 '의대 광풍'…"국가로선 악재"
근본적으로 의대에 대한 열망이 꺾이지 않는 한 제2, 제3의 시대인재는 얼마든지 나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동아일보가 지난 2월 전국 14개 대학 의대생 24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의대 진학에 영향을 미친 이유'로 가장 많은 응답자(119명·48.4%)가 '높은 소득 수준'을 꼽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의사를 포함한 의료업 종사자의 연평균 소득은 2021년 기준 2억6900만원으로 나타났다. 국내 근로자 평균 임금의 7배다.
의사의 고소득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궁극적 목표는 의료 불균형 해소지만 인재 공급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측면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 소득이 1억원대로 내려가면 의대 쏠림 현상도 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계는 반발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12월4일 시론을 통해 "의사 소득 논란의 밑바탕에는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동력으로 하는 계급투쟁적 이념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당장 '의대 광풍'을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 카이스트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서 자퇴를 포함해 중도 탈락한 학생은 268명으로 집계됐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부분 의약학 계열 등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경기 안성의 한 대형 기숙학원 관계자는 "올해 카이스트 출신 학생이 의대를 가겠다며 들어왔다"며 "학원가로서는 호재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악재"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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